이용훈 주교에게 듣는 신앙과 경제 (117) 효율에만 몰두하는 ‘경제현실’
'사람' 위한 경제 우선돼야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인류공동체가 오랜 세월 함께 만들어온 경제라는 제도와 흐름의 거대한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이 경제라는 인간의 발명품은 때로는 역사를 움직여 나가는 수레바퀴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죽음보다도 더한 고통을 안겨주는 굴레가 되기도 합니다. 가까이는 20세기에 겪었던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비롯해 현재도 무수히 벌어지는 전쟁과 살육들의 이면에는 어김없이 경제를 둘러싼 문제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의 가르침들을 통해 인간의 경제활동이 인류공동체를 풍요롭게 만드는 다양한 모습의 선익을 안겨줄 뿐 아니라 하느님 창조사업에 동참하는 도구이며, 하느님 나라를 완성으로 이끌어가는 거룩한 행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간에게 효용을 주는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하고 분배하고 소비하는 모든 과정을 포괄하는 경제활동은, 하느님 모상대로 지어져 당신의 창조성을 선물로 받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지상의 나그네인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삶과 끈끈하게 연결되어 뗄래야 뗄 수 없는 경제활동 속에서 하느님의 뜻이 올바로 실현되는지, 나아가 하느님의 뜻에 맞는 경제활동의 모습과 방법이 무엇인지를 찾는 일에 늘 깨어있어야 합니다. 이 때문에 인간이 영위하는 경제활동에는 스스로의 선택을 돌아보며 행위에 대한 선악(善惡)과 진위(眞僞)를 식별하고 판단할 수 있는 잣대가 필요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잣대를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인 사회교리에서 찾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삶 곳곳에 깊숙이 파고든 경제활동들의 궤적들을 좇다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적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예 가운데 하나가 노동유연화정책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 비정규직 문제입니다. 지난 1997년 IMF사태로 외환위기를 겪은 후 국가적 위기상황을 극복해나가기 위한 방안으로 도입된 노동유연화정책은 1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에 많은 아픔을 낳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굳이 여러 통계를 들지 않더라도 비정규직으로 인한 문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심각한 사안입니다. 어디서든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패스트푸드점이나 편의점, 대형할인마트 등에서 일하는 이들 대부분이 비정규직 노동자로 채워진 지 이미 오래전입니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과반수를 넘어선 지도 오래되었습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감내해내야 하는 노동 환경과 조건입니다.
통계청이 지난 10월 24일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자료에 따르면, 정규직 노동자의 월평균 임금은 254만6000원으로 1년간 8만6000원(3.5%) 인상된데 비해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은 142만8000원으로 3만5000원(2.5%) 늘어나는데 그쳤습니다. 특히 성별과 연령, 교육수준, 근속기간, 직업, 산업 등 모든 조건이 동일할 때, 달리 말해 같은 사람이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신분이 나뉠 때 임금 격차는 11.8%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모든 것이 ‘나눔’ 대신 ‘효율성’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제 현실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위한 경제가 아니라, 경제를 위한 사람에 중점을 두는 한 서민들과 소외계층의 아픔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누구나가 영육간 행복하고 안락하게 살기를 바라셨던 예수님의 뜻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이라면 경제활동의 불균형과 비인간화를 극복하는 노력과 실천에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가톨릭신문, 2013년 11월 17일, 이용훈 주교(수원교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