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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회교리80: 핵무기와 핵발전은 교회의 길이 아니다 (5)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11-23 조회수1,607 추천수0

[박동호 신부의 생생 사회교리] (80) 핵무기와 핵발전은 교회의 길이 아니다 (5)
 
핵산업, 미래세대에게 불의



한 때 '정의'(正義)와 관련한 책이 거의 필독서가 되다시피한 때가 있었다. 교회는 정의를 "마땅히 하느님께 드릴 것을 드리고 이웃에게 주어야 할 것을 주려는 지속적이고 확고한 의지"라고 정의(定意)한다.

그리고 교회는 "정의의 고전적 형태인 교환 정의, 분배 정의, 그리고 법적 정의에 대한 존중을 끊임없이 요구"한다.한 걸음 더 나아가 교회는 '사회 정의'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음을 강조한다. "오늘날 전 세계적 차원의 사회 문제와 관련하여 요청되는 사회 정의는 사회 정치 경제적 측면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불의의 구조적 차원과 그 해결책과 관련된다"(「간추린 사회교리」 201항).
 

국민의 권리 충돌, 국가가 합리적으로 조정해야
 
핵발전은 겉으로는 정의를 실현하는 구조로 보인다. 핵에너지의 소비자들은 '계약'에 따라 소비하는 에너지에 대해 사용료를 낸다. 이는 교환 정의를 실현하는 것처럼 보인다.

핵관련 지역 주민, 핵발전소 지역 주민, 송전탑 지역 주민,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지역 주민에게도 보상과 정부 교부금 지원 등으로 분배 정의를 실현하는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한국수력원자력과 한전은 법률에 따라 핵발전소를 짓고 송전탑을 건설하니 법적 정의를 실현하는 것처럼 비친다.

그러나 이는 핵심을 간과한 것이다. 한쪽의 편리함과 풍요로움을 위해 다른 한쪽의 희생을 강요한다는 점에서, 교환 정의는 형식에 불과하다. 게다가 핵발전은 "이웃에게 주어야 할 것을 주려는 지속적이고 확고한 의지"로서의 정의를 부정한다. 핵발전은 구조적으로 핵발전으로 생산되는 전력의 소비자를 위해 이웃인 전력 생산지 및 송전탑 지역 주민의 권리를 제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생산지 주민과 소비지 주민의 권리가 충돌할 때, 그 권리를 보호할 의무는 국가에 있다. 국가가 생산지 주민에게 보상하고, 정부 교부금을 지원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 보상이 지역 주민의 의사와 반한다면 어떡할까. 그리고 권리의 충돌을 극복할 대안 마련이 가능한 데도 한쪽의 권리를 보호하느라 다른 쪽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권리보호의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다. 더 나아가 보상과 정부 교부금 지원을 강제하는 것은 경제적 약자의 약점을 이용한 것에 불과하다.
 

이웃의 것은 이웃에게 돌려줘야
 
국책사업이란 이름으로 관련법에 따라서, 특히 전원(電源)개발촉진법에 따라 공사를 강행하는 것은 지난 호(79회)에서 이미 이야기했다. 이 법은 전원개발사업을 효율적으로 추진함으로써 전력수급의 안정을 도모하고, 국민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런 공사 강행은 '확고한 법적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 하기도 어렵다. 핵발전이 법적 정의를 실현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핵발전은 치명적이며 처분 불가능한 핵폐기물을 남김으로써 현 세대의 이익을 위해 미래 세대에 희생과 부담을 강요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사회 정의를 실현할 수 없다. 사회적으로 정의를 실현하려면 이익과 피해, 권리와 의무를 공정하게 분배해야 하는데, 미래 세대는 고스란히 피해와 의무만 짊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를 어떻게 사회적으로 정의롭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핵산업은 현재의 생산지 주민은 물론 미래 세대에게 주어야 할 것을 주지 않으며, 줄 수도 없다.

마지막으로 교회는 정의를 단순한 '인간의 협약'으로 환원시키는 것을 경계한다. 옳은 것은 단순히 법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며, 효용성과 소유의 기준에 따라 배타적으로 결정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202항).

우리의 경우 핵발전과 관련해 도덕적 윤리적 합의를 찾아보기 어렵고, 대부분 경제성과 효용성에 관한 논란만 무성하다. 소유와 효용성만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정의에 대한 성찰은 비경제적 비효율적 낭비쯤으로, 거추장스러운 것쯤으로 치부한다.

그동안 사회 전 분야에서 이웃에게 주어야 할 것을 주지 않고, 오히려 이웃의 것을 내 것으로 취하는 것을 능력이라고 여기고, 그 능력을 발휘하는 것을 발전이라고 믿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웃 나라에서 핵참사가 났는데도, 우리의 핵발전의 불의한 구조에 둔감한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평화신문, 2013년 11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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