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추린 가톨릭 교회 교리서 (54)
59. 혼인성사
1) 하느님의 계획과 혼인
하느님께서 혼인 생활의 제정자이십니다. 혼인의 소명은 창조주의 손으로 지으신 남자와 여자의 본성에 새겨져 있습니다. 인간은 바로 “사랑이신”(1요한 4,8.16) 하느님과 닮은 모습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여러 가지 문화와 사회 구조와 사고 방식으로 수많은 변화를 겪었다 하더라도, 혼인은 단순히 인간적인 제도가 아닙니다.
그러나 죄의 영향 아래에서 놓여 있는 인간들은 남녀간의 사랑과 혼인 역시 왜곡된 형태로 살아갈 위험성이 크고, 실제로도 그러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주변에서 또 자신 안에서 악을 체험한다. 이러한 체험은 남자와 여자의 관계에서도 겪는 것이다. 예로부터 어느 시대에나 부부의 일치는 불화와 지배욕, 부정과 질투, 증오와 결별에까지 이를 수 있는 갈등의 위협을 받아 왔다(가톨릭교회교리서 1606항).
죄로 어지러워진 원래의 창조 질서를 회복시키려고 오신 예수님께서는 창조주께서 처음부터 원하신 부부 결합의 본래 의미를 분명하게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니 하느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마태 19,6).
그러므로 예수님의 사명을 이어받은 교회는 혼인과 가정의 거룩함을 수호하는 일을 그 어떤 소명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혼인에 대한 다음과 같은 기본 원칙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2) 가톨릭 교회의 혼인에 관한 기본 원칙들
① 단일성
혼인은 한 남자와 한 여자만의 결합(일부일처제)이어야 합니다. 너무나 당연한 원칙이지만 현실에서는 이 원칙에 어긋나는 사례가 많습니다. 중동이나 아프리카에서는 일부다처제가 횡행하고, 서구 국가들에서는 동성간의 결혼을 인정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또한 결혼을 하지 않고 동거만 하는 경우나 아예 혼인을 하지 않고 혼자 사는 이들도 점점 늘고 있습니다. 교회는 이 모든 경향에 대해서 단일성의 원칙을 수호하고자 노력합니다.
그러나 원칙을 수호하는 것과 적절치 못한 혼인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돌보는 문제는 구별해야 합니다. 특히 그런 혼인에서 태어난 자녀들에 대해서 교회는 사목적으로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② 불가해소성
일단 맺어진 혼인은 하느님 앞에서 이루어진 서약이므로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기 이전에는 결코 취소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회법적으로 이혼을 해서 남남이 되었다고 해도, 교회에서는 이 사람들을 여전히 부부로 인정합니다.
그러나 매우 다양한 이유로 혼인에 따른 동거가 거의 불가능해지는 상황이 있다. 이 경우 교회는 부부의 실질적 별거와 동거의 종식을 인정한다. 이 부부는 하느님 앞에서 계속 남편이고 아내이다. 그들은 새로 혼인할 자유가 없다(가톨릭교회교리서 1649항).
③ 신자들 안에서의 혼인
가톨릭 교회 신자들은 원칙적으로 신자들끼리만 혼인할 수 있습니다(성사혼). 신자 아닌 사람과 혼인할 경우 가톨릭 신앙을 저버리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신자들의 비율이 적은 국가에서는 예외적으로 신자 아닌 사람과 혼인할 수 있습니다(관면혼). 그 경우에도 당사자들은 사제 앞에서 특별한 서약(비신자가 신자 배우자의 신앙 생활을 방해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고 혼인 예식을 해야 합니다.
④ 교회법에 따른 혼인
신자가 신자와 결혼하든지, 비신자와 결혼하든지, 반드시 교회법에 따라서 교회 예식으로 혼인을 해야 합니다.
3) 혼인 장애와 그것을 해소시키는 방법
혼인과 관련해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를 혼인 장애(예전에는 혼인 조당이라고 함)라고 하고 두 가지 경우에 발생합니다. 혼인 장애 상태에 있는 신자는 영성체와 고해성사를 비롯해서 모든 성사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① 신자가 교회법에 따른 혼인예식을 하지 않고 사회적으로만 결혼했을 경우, 그 배우자가 신자이건 아니건 간에 혼인 장애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② 교회는 어떠한 형태로든 이혼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혼한 후에 재혼을 했을 경우에 혼인 장애가 됩니다. 그렇지만 이혼을 하고 재혼을 하지 않은 상태는 아직 혼인 장애 상태가 아닙니다.
혼인 장애 상태라고 해서 절망적인 것은 아닙니다. 혼인 장애를 해소시킬 방법도 있습니다.
① 교회법에 따른 혼인예식을 하지 않아서 생긴 혼인 장애는 뒤늦게라도 본당의 사제들과 상의하여 정식 절차를 밟아 혼인 예식을 거행하게 되면 그 순간 해소됩니다.
② 이혼 및 재혼과 관련된 혼인 장애는 풀기 힘듭니다. 그러나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그 결혼 생활이 지속할 수 없을 정도로 곤란한 것이었다면 본당 주임신부님과 상의하여 교회 법원에 혼인무효소송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이전의 혼인이 원래부터 불가능한 것이었음을 밝히는 소송을 하는 것입니다(사회에서 하는 재판처럼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이 아니므로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소송에서 인정받게 되면 그 신자의 이전 혼인은 무효가 되고, 따라서 그 사람은 다른 배우자와 다시 혼인할 수 있습니다.
4) 가정 교회
혼인의 출발점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사랑이지만, 그 목표점은 신앙의 공동체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남녀가 아무리 깊은 사랑을 나눈다고 하더라도, 자녀와 더불어 신앙의 삶을 살지 않고 세속적인 가치관으로만 살아간다면, 이것은 그리스도교적인 가정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혼인은 그 자체로 이 세상에 교회를 탄생시키는 거룩한 부르심에 대한 응답인 것입니다.
흔히 신앙에 대해 무관심하며 적의까지도 품는 이 세상에서, 이 시대의 신앙인들의 가정은 활력이 넘치고 빛을 발하는 신앙의 요람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가정을 오래된 표현에 따라 “가정 교회”라고 부른다. 가정에서 부모들은 “말과 모범으로 자기 자녀들을 위하여 최초의 신앙 선포자가 되어야 하며, 각자의 고유한 소명을 특별한 배려로 육성하여야 한다”(가톨릭교회교리서 1656항).
[2013년 11월 24일 그리스도 왕 대축일(성서주간) 의정부주보 5-7면, 강신모 프란치스코 신부(선교사목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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