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호 신부의 생생 사회교리] (82) 사회교리 - 그리스도인의 삶 (1)
가톨릭 신앙의 골다공증
종교와 정치, 그 관계에 대해 할 말이 참 많을 것이다. 최근에는 종교가 정치에 개입할 수 있다느니 없다느니, 해야 한다느니 하지 말아야 한다느니, 할 수도 있다느니…. 끝이 없을 것이며, 그 이유도 무수할 것이다. 다만 우리 사회의 경우 합리적이며 생산적인 대화와 토론이 없으며, 일방적인 윽박지르기만 난무한다. 두세 마디 지나고 나면 화내기 일쑤다. 거의 '폭력' 수준이다.
믿음과 신앙은 분리될 수밖에 없는가
그리스도 신앙인으로서는 참담하다. 논쟁(?)에서 '신앙' 특히 '그리스도 신앙', 더 더욱 '가톨릭신앙'을 찾아볼 수 없어서다. 종교(religion)는 영어식으로 하면 '일반명사'로 분류된다. 그러나 그리스도교(Christianity)는 엄연히 고유명사다. 그래서 영어에서는 대문자로 쓴다. 그리스도교는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그 어떤 고유함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불교도 마찬가지고, 유다교도 마찬가지고, 힌두교도 마찬가지다.
종교와 정치, 종교와 세상을 이야기하는 것은 일반론이라 할 수 있다. 누구나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그리스도 신앙인은 (고유한) 그리스도교와 정치, 그리스도교와 세상을 성찰하고 토론하고 논쟁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 그리스도교 가운데 가톨릭이 있고, 그 가톨릭 가운데 로마 전례를 따르는 로마 가톨릭이 있다.
그렇다면 가톨릭 신자라면 가톨릭교회 혹은 가톨릭 신앙과 정치, 가톨릭교회 혹은 가톨릭 신앙과 세상을 성찰하고 토론하고 논쟁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지만 현실은, 적어도 필자가 만난 거의 대부분의 가톨릭 교우들은 그렇지 않았다. 어느 대중매체를 접했는지, 어느 정치적 성향을 가졌는지, 어느 경제적 이념을 따르는지, 그 기준과 잣대로만 바라보고 판단하고 주장할 뿐이었다.
필자는 이런 현상을 두고 심각한 골다공증이라 말하고 싶다. 그것도 뼈에서 칼슘 성분이 모조리 빠져나간 완전한 골다공증, 그래서 겉으로는 뼈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조그만 충격에도 쉽게 부러질 위험이 있는 상태 말이다. 성경과 가톨릭 신앙과 교리와 제도와 가르침 같은 것이 철저하게 빠져나가고 겉으로 드러나는 조직 형태만 유지하고 있는 것만 같다.
교우들 가운데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바탕으로, 교회가 고백하는 신앙을 바탕으로, 그리고 교회가 가르치는 교리를 바탕으로 교회의 현실 참여의 찬반 입장을 말씀하시는 분들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
세상 앞에 하나가 된 교회
필자의 생각이 막연하고 근거 없는 억지였으면 좋겠다. 그러나 나라를 걱정하는 분들의 말씀처럼 정치참여 문제 때문에 천주교회가 분열했다면 앞으로 경제 문제 때문에, 문화 문제 때문에, 국가 문제 등 무수히 많은 문제들 때문에 그렇게 분열하지 않을 것이라 장담할 수 있을까? 분열로 그칠까? 상호 단죄로 이어질 것이다. 그렇게 단죄하면 가톨릭 좌익교회, 가톨릭 우익교회, 가톨릭 보수교회, 가톨릭 진보교회, 그렇게 돼야 하나?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온 교회'는 어디에 있을까?
우리 가톨릭교회가 그렇게 심각한 골다공증의 증세를 보이고 있다면 그 원인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 필자 개인으로는 몇 가지 원인을 꼽고 싶다. 우선 성경의 철저한 사유(私有)에서 찾을 수 있다. 성경은 이스라엘 공동체, 첫 그리스도 신앙 공동체가 구체적인 역사에서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한 것을 신앙으로 고백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성경을 공동체 대신 '나', 구체적인 역사 대신에 '마음'의 영역으로 환원시켰다.
둘째, '신앙'과 '삶'의 철저한 이질적 구별을 꼽을 수 있다. 이는 개인으로서 마음으로 믿고 성당에 가서 성사생활 하면 하느님께 은총을 받아 구원을 받는다는 정도로 신앙을 제한하고, 가정과 문화, 경제와 정치, 사회와 환경, 곧 구체적인 삶을 신앙과 무관한 것으로 만들었다. 셋째, 그리스도교의 성경과 그에 바탕을 둔 고유의 신앙체계와 교리와 교회제도에 대한 무관심이다. 신앙의 해를 기념했지만 고유의 신앙과 그에 따른 삶을 찾아보기 어렵다. 직설적으로 이야기해서 경제영역에서, 정치영역에서, 교육영역에서, 곧 삶의 모든 영역에서 가톨릭 신앙인이 다른 사람과 다른 점이 무엇인지 찾아보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리고 교회의 책임, 특히 성직자의 책임이 크다. 「가톨릭교회 교리서」에 '그리스도인의 삶'(제3편)이, 그리고 좀 더 구체적으로 가톨릭교회에는 사회교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가톨릭 신자는 얼마나 될까? 있다는 것을 아는 분들 가운데 그 내용을 아시는 분은 또 얼마나 될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로마 10,14).
[평화신문, 2013년 12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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