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 주교에게 듣는 신앙과 경제 (132) 의료 민영화 문제점
서민층은 의료 혜택 받지 말라는 것인가?
원격 진료와 의료법인의 영리 자회사 허용 등을 주요 골자로 하는 의료 영리화가 우리 사회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어 의료 민영화 문제를 함께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돈이 세상을 움직이는 듯한 자본주의에 젖어 살다보니 종합병원을 영리기관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종합병원들은 주식회사가 아닌 법인이라는 형태로 운영됩니다. 건강보험이라는 큰 틀에서 보면 우리나라 의료체계에서는 영리병원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통해 공공보험으로 의료서비스를 받고, 병원은 공공보험을 통해 의료수가를 정하고 수익을 올리는 구조입니다. 이런 의료시스템 때문에 의료행위의 범위와 가격은 공공보험을 통해 통제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리병원은 이러한 공공의료보험보다는 사기업이 운영하는 사설 민영의료보험을 통해 의료행위를 하게 됩니다. 보험회사들은 각종 의료보험 상품을 만들어 제공하고 이러한 의료보험 상품에 가입한 사람들에게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수익을 올리게 됩니다.
보험회사가 운영하는 민영의료보험을 통해 소비자에게 의료행위를 하게 될 경우 의료서비스 가격이 비싸지는 것은 당연한 귀결입니다. 소비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다양한 의료상품을 만드는 데도 돈이 들지만 영리병원에서 높은 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명분으로 고가의 의료장비 등을 경쟁적으로 도입하게 되면 의료비도 올라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별다른 통제를 받지 않는 민영 의료서비스는 고가의 의료행위로 이어지고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못하는 서민층은 병원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생길 수밖에 없게 됩니다.
바로 이런 의료체계를 갖고 있는 나라가 미국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첫 번째 공약 가운데 하나가 민영의료보험 중심의 의료체계를 바꾸는 것이었음을 떠올려보면 의료 민영화가 지닌 문제점이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단적으로 미국의 치과 진료비를 비롯하여 일반 의료수가는 매우 높으며 저소득층과 소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보험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의료 체계는 낮은 수준이지만 공공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IT 기술을 활용한 원격 의료나 의료법인의 영리 자회사 허용 등으로 의료의 산업화를 추진하면 이 공공성은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돈 있는 사람들은 많은 비용을 지불하면서 높은 질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 좋을지 모르지만, 가난한 이들은 상대적으로 낙후된 의료서비스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치료비가 없어 병원을 전전하다 목숨을 잃는 가난한 이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종종 접하게 됩니다. 만약 의료 민영화가 전면적으로 시행된다면 공공의료 서비스의 질이 떨어질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고, 이로 인해 가난한 이들의 고통은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보듬어 안고 이들을 치유하기 위해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음을 떠올린다면 그리스도인들이 취해야 될 자세는 어렵지 않게 떠오를 것입니다.
의료를 자본의 투자처 정도로 생각하는 관점을 버리는 것이 그리스도인다운 선택일 것입니다. 일자리 창출과 경쟁력 제고라는 경제적 논리에만 매몰돼 몇 푼의 돈에 인간의 생명이 좌우되는 상황에 애써 눈감아 버린다면 지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맛보고 살아가는 것은 요원한 일이 될 것입니다.
[가톨릭신문, 2014년 3월 9일, 이용훈 주교(수원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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