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추린 가톨릭 교회 교리서 (67)
72. 넷째 계명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러면 너는 주 너의 하느님이 너에게 주는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탈출 20,12).
1) 넷째 계명의 중요성
십계명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1-3 계명은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합당한 자세를 가르치는 것이고, 4-10 계명은 타인과의 관계, 사회적인 관계에서의 올바른 태도를 권고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웃 사랑과 관련된 십계명의 둘째 부분 공부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런데 4-10 계명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계명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넷째 계명입니다. 인간은 사회 안에서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 갑니다. 인간이 맺게 되는 사회 관계의 출발점은 바로 부모와 자녀와 형제자매가 함께 살아가는 가정입니다. 인간 관계를 맺는 법을 가정에서부터 배우게 됩니다. 따라서 가정이 흔들리면 모든 사회적 관계가 흔들리게 됩니다.
이 계명은 생명과 혼인과 세상의 재화와 사람의 말 등을 특별히 존중하는 것과 연관되는 그 다음의 계명들을 예고한다. 이 계명은 교회의 사회 교리의 한 기초를 이룬다(가톨릭교회교리서 2198항).
“부모가 자식을 낳아 주고 길러 주었으니, 자식은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 유교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우리 나라 사람들은 넷째 계명을 이런 식으로 이해하기 쉽습니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넷째 계명의 근본 정신에는 못 미치는 부족한 이해방식입니다. 넷째 계명은 십계명 전체가 의도하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가정 안에서 교육되고 실천되기를 권고하는 것입니다.
가정은 사람들이 어릴 적부터 도덕적 가치를 깨닫고, 하느님을 공경하기 시작하며, 자유의 선용을 배울 수 있는 공동체이다. 가정 생활은 사회 생활의 입문이다(가톨릭교회교리서 2207항).
2) 그리스도인의 가정
가정의 중요성은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들의 가정은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3쌍 중 1쌍이 이혼을 하고, 청소년 문제가 심각합니다. 가족들간에 대화가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가정이 하숙집으로 전락한지 오랩니다.
가난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식들에게 가난을 물려 주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남편은 작은 가게를 운영하면서 하루 종일 일했고, 부인도 화장품 판매를 했습니다. 마침내 이런 고생 끝에 자기 집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이 부부는 땅을 치고 후회를 했습니다. 집은 마련했는데 그 집에 살 식구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부부가 돈을 버는 데에 몰두하는 동안 자녀들과 제대로 된 대화 한 번 못해 봤고, 아이들은 방황하고 가출해 버렸습니다. 부부 사이에도 불화가 심각해져 있었습니다. 무엇을 위해 악착같이 돈을 벌었나 알 수 없었습니다.
경제적 문제나 건강도 중요하지만 가정의 성화가 무엇보다도 소중합니다. 가톨릭 신자가 된다는 것은 세상의 가치관을 버리고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르게 표현하면 ‘재산이나 건강(=세상의 가치관)보다 가정의 성화를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여기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신앙을 중심으로 해야 합니다. 부모는 자녀들을 양육하고 교육시킬 뿐만 아니라, 신앙적으로도 올바로 교육시킬 의무가 있습니다. 자녀가 태어나면 가능한 한 빨리 유아세례를 주고, 주일학교에 보내서 신앙 교육을 받게 하고, 첫영성체를 받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부모가 가정에서 자녀들과 함께 기도하는 생활로써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그리스도인 가정은 교회적 친교의 특수한 표출이고 실현이기 때문에, 이것은 ‘가정 교회’라고 불릴 수도 있고 불려야 한다. … 일상적 기도와 하느님 말씀을 읽는 것은 가정 안에서 사랑을 강화시켜 준다.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복음의 전파자이며 선교사이다 (가톨릭교회교리서 2204-2205항).
3) 가정과 사회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자기 가정”만 챙기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주변의 다른 가정들도 돌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우리의 아버지”로 부르고 있기에 우리 모두가 한 가족이고, 따라서 다른 가정들에 대한 존중과 돌봄은 마땅한 의무입니다.
가정에서 그 구성원들은 청소년이나 노인, 병자, 장애인과 가난한 이들을 돌보고 책임을 지는 일을 배울 수 있도록 살아야 한다. 그러나 때로는, 이러한 도움을 베풀지 못할 처지에 있는 가정들도 많이 있다. 그럴 때에는 다른 사람들과 다른 가정들, 그리고 이차적으로는 그 사회에 그들의 어려움을 보살펴 줄 의무가 돌아간다(가톨릭교회교리서 2208항).
[2014년 3월 30일 사순 제4주일 의정부주보 6-7면, 강신모 프란치스코 신부(선교사목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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