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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YOUCAT 제3권 그리스도를 통해 어떻게 생명을 얻는가?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4-04-07 조회수2,492 추천수0

[젊은이여, 신앙의 근본을 재발견하라!] YOUCAT으로 묻고 답하기 (37)

제3권 그리스도를 통해 어떻게 생명을 얻는가?



121. 양심이란 무엇인가요?

양심은 인간 내면에 있는 내적 소리로, 무조건 선을 행하고 악을 피하도록 인간을 설득합니다. 그와 더불어 양심은 한 가지 일을 다른 일과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은 양심을 통해 인간에게 말씀하십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776-1779항). 하느님은 양심을 통해 당신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게 하십니다. 양심을 따르느라 이미 많은 사람이 감옥에 가기도 하고 처형당했습니다.


122. 우리는 우리의 양심을 올바르게 형성할 수 있나요?

그렇습니다. 더구나 그것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양심이 올바른 행동을 가려내는 도구가 되도록 형성해야 합니다(1783-1788항). 양심을 올바로 형성하는 첫 번째 방법은 자기비판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다른 이들의 선한 행동을 본받는 일입니다.


123. 양심에 따라 한 행동이 그릇된 경우 하느님 앞에 죄가 되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철저하게 검토하고 확실하게 판단했다면, 설령 그릇된 일을 행할 위험이 있을지라도 무조건 양심의 소리를 따라야 합니다(1790-1794항). 그러나 우리는 자신의 양심을 따랐다고 잘못 생각한 것에 근거해서 다른 사람을 속이고 죽이고 고문하며 배반하는 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124. '덕행'이란 말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나요?

덕행은 내적 태도요, 유익한 습관이며 선행에 필요한 열정입니다(1803, 1833항). 하느님은 당신의 은총으로 인간의 덕행을 지원하시고, 나아가 우리에게 이른바 신적 덕행을 선사하셨습니다.


125. '현명'을 어떻게 얻을 수 있나요?

우리는 본질적인 것을 본질적이지 않은 것과 구별하고 올바른 목표를 설정하며,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가장 좋은 수단을 선택하는 것을 배움으로써 현명을 얻게 됩니다(1806항). 현명은 올바른 것을 식별하는 능력이기 때문에 다른 모든 덕행의 근본이 됩니다. 선한 삶을 살려면 먼저 '선'이 무엇이며 선의 가치는 어떤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126. 정의롭게 행동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요?

우리가 하느님과 이웃에게 속한 것을 본래의 주인에게 되돌려 주는 일에 언제나 주의를 기울인다면 그것은 정의로운 행동이 됩니다(1807항). 정의의 요지는 '각자의 것을 각자에게 주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에 대해서도 정의롭게 행동해야 하므로, 본래 그분의 것인 우리의 사랑과 흠숭을 그분에게 돌려드려야 합니다. [평화신문, 2014년 4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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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권 그리스도를 통해 어떻게 생명을 얻는가?



127. ‘향주삼덕(向主三德)’이란 무엇인가요?

신적인 덕행에는 믿음, 희망, 사랑이 있습니다. 이 세 덕행은 하느님에게 근거를 두고 있고 하느님과 직접 관계하며, 우리 인간에게는 하느님에게 가는 길이 되기 때문에 향주삼덕이라고 부릅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812-1813항, 1840항).


128. 믿음이란 무엇인가요?

믿음은 우리가 하느님에게 동의하고 그분의 진실함을 인정하며, 그분과 개인적인 가약(佳約)을 맺는 힘입니다(1814-1816항). 이러한 믿음은 단순히 어떤 태도나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신뢰’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감성과 이성 그리고 모든 정서적 능력을 동원해 하느님을 신뢰하는 관계를 말합니다. 믿음은 사랑을 통해 그 진실함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갈라 5,6 참조).


129. 희망이란 무엇인가요?

희망은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목적을 끊임없이 굳건하게 열망하도록 만드는 힘입니다. 그 목적이란 하느님을 찬양하고 그분을 섬기는 일이며, 하느님 안에서 우리의 참된 행복을 성취하는 것이고, 또한 우리의 최종 고향인 하느님 안에 있는 것입니다(1817-1821항).


130. 사랑이란 무엇인가요?

사랑은 하느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가 하느님에게 헌신하는 힘입니다. 그로써 우리는 하느님과 하나가 되고 하느님에 대한 사랑으로 이웃을 자신처럼 무조건 마음을 다해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1822-1829항). 사랑은 결국 다른 모든 힘에 혼을 불어넣으며 하느님의 생명을 채우는 가장 큰 동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131. ‘성령의 일곱 은사’란 무엇인가요?

성령의 일곱 은사에는 ‘지혜, 통찰, 의견, 용기, 지식, 공경, 하느님에 대한 경외’가 있습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은사들을 베푸십니다. 다시 말해 성령은 그들에게 그들의 천부적 소질을 뛰어넘는 특별한 능력을 선물하시고,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특별한 도구가 될 기회도 주십니다(1830-1831항).


132. ‘성령의 열매’란 무엇인가요?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입니다(갈라 5,22-23 참조)(1832항). 성령의 열매는 하느님이 자신을 택해 이끌어 주시고 양육해 주시도록 전적으로 그분에게 자신을 내어드리는 사람들이 어떤 결실을 보는지를 세상에 보여줍니다. 또한 하느님이 그리스도인들의 삶에서 실제로 역할을 하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평화신문, 2014년 4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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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죄란 무엇이고, 인간이 죄를 지었다는 것을 어떻게 깨닫나요?

죄란 인간이 뚜렷한 의식 상태에서 의지를 지닌 채 하느님이 사랑으로 계획했던 일들의 참된 질서를 깨뜨리려는 의도나 말 또는 행동을 말합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849-1851항, 1871-1872항). 죄란 결국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말처럼 “하느님을 경멸하는 데까지 이르게 되는 자기애”라고 할 수 있으며, 극단에까지 이르면 이 죄짓는 피조물을 “나는 하느님처럼 될 거야”라고 말합니다(창세 3,5 참조). 인간은 양심을 통해 자기의 죄를 깨닫습니다. 양심 덕분에 자신의 잘못을 비난하고, 이를 하느님 앞에서 시인합니다(1797-1848항).


134. 죄를 지은 사람이 하느님에게 도움을 구하고 용서를 청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하느님이 자비로운 분이심을 어떻게 알 수 있나요?

하느님은 전적으로 선한 분이시며, 선의 근원이십니다. 따라서 모든 죄는 하느님을 거스르는 것이며, 그분과 맺는 관계를 통해 다시 원상태를 회복해야 합니다(1847항). 수많은 성경 구절이 하늰ㅁ을 자비로운 분으로 묘사합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잃었던 아들을 반갑게 맞이해 아무 조건 없이 그를 받아들이고 잔치를 열어 아들의 귀환과 화해의 기쁨을 나누는 아버지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루카 15장 참조, 1846 · 1870항). 그분은 이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세리들,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신 후에 “이는 죄를 용서해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마태 26,28) 하고 자기 죽음을 하느님의 자비로우며 주도적인 사랑의 표현으로 해석하셨습니다.


135. 대죄(죽을죄)와 소죄(용서받을 죄)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나요?

대죄는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사랑이라는 신성한 힘을 파괴하는데, 그 힘이 없으면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없게 됩니다. 그런 까닭에 대죄를 사죄(죽을죄)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소죄는 그저 하느님과 맺은 관계에 해를 끼치는 데 그치지만, 대죄는 그 관계를 끊어 버립니다(1852-1861항, 1874항). 대죄는 생명이나 하느님과 직접 관련된 매우 중요한 가치에 맞서는 죄, 즉 살인, 신성 모독, 간음 등입니다. 또한, 이를 온전한 의식 상태에서 완전한 동의로 행했을 경우에 대죄입니다. 소죄는 명예나 진실, 재산과 같은 하위 가치들과 관련된 것이든지, 죄의 결과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거나 완전한 동의가 없는 상태에서 지은 죄를 말합니다.


136. 우리에게 다른 이의 죄에 대한 책임이 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죄는 개인적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다른 사람이 죄를 짓도록 유혹하거나 그의 죄에 동참했다면, 또한 다른 사람이 죄를 짓도록 부추기거나 제때에 경고하지 않아 도와주는 일을 게을리했다면, 우리도 다른 이들이 지은 죄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1868항).


137. 대죄에서 벗어나 하느님과 다시 결합할 방법은 무엇인가요?

가톨릭 신자는 고해성사를 통해 대죄로 끊긴 하느님과 우리 자신의 관계를 회복하고, 하느님과 화해해야 합니다(1856항). [평화신문, 2014년 5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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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 그리스도인이 완벽한 개인주의자가 될 수 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공동체를 지향하도록 창조됐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결코 완벽한 개인주의자가 될 수 없습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1877-1880항)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을 따라 창조됐으므로 어느 정도 하느님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하느님은 본래 혼자가 아니라 삼위일체이시므로 생명과 사랑, 대화와 나눔을 이루십니다.


139. 개인과 사회 중에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요?

하느님 앞에서는 무엇보다 각 개인이 인격체로서 의미가 있으며, 공동체는 그다음 자리를 차지합니다. (1881, 1892항) 사회는 개인보다 더 중요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어떤 경우에도 인간은 사회적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없습니다.


140. 개인이 자유롭게 발전할 수 있으려면 어떤 방식으로 사회에 통합돼야 하나요?

‘보조성의 원리’를 지킬 때 개인은 사회에서 자유롭게 발전할 수 있습니다.(1883-1885항). 가톨릭 사회 교리의 네 가지 주요 원리(인간 존엄성의 원리, 공동선의 원리, 연대성의 원리, 보조성의 원리) 가운데 하나인 보조성의 원리는 ‘개인이 자신을 위해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상위 기관이 빼앗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상위 기관은 개인이나 하위 기관이 어떤 임무가 과중하다고 느낄 때 지원하려고 존재합니다.


141. 공동선은 어떤 방식으로 신장하며, 개인은 어떤 방식으로 공동선에 이바지할 수 있나요?

공동선은 개인의 기본권이 존중되고 인간이 정신적으로나 종교적으로 마음껏 발전할 수 있는 곳에서 형성됩니다.(1907-1912항) 공동선은 사회가 개인의 안녕에 주목하고 가정처럼 작은 사회 집단의 복지가 관심의 초점이 될 때 신장할 수 있습니다. 공동선을 위해 일한다는 것은 다른 이들에 대한 책임을 떠맡는 것을 의미합니다.(1913-1917항) 공동선은 무엇보다 사람들이 가정과 이웃, 직장과 같은 자신의 주변 환경에서 책임을 지고 힘껏 노력함으로써 실현됩니다.


142. 모든 인간은 하느님 앞에서 평등한데도 사람들 사이에 불평등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모든 인간은 같은 존엄성을 지녔지만, 그렇다고 모두 같은 삶의 조건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서로 다른 천성과 재능을 주심으로서 우리가 서로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사랑으로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줘야 합니다.(1936-1938항) [평화신문, 2014년 6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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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 모든 인간에게 천부적인 도덕률이 존재하나요?

인간이 선을 행하고 악을 피해야 한다고 할 때, 무엇이 선하고 악한지를 알 수 있는 확신이 인간의 마음에 새겨져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처럼 사람이면 누구나 자신의 지성을 통해 기본적으로 알 수 있는 것, 즉 어떤 의미로 인간의 ‘천부적인’ 도덕률이 실제로 존재합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949~1960항).


144. ‘천부적인 도덕률’과 구약의 율법은 어떤 관계가 있으며, 구약시대 율법은 어떤 의미를 지니나요?

구약 시대의 율법은 본래 인간의 지성을 통해 파악된 것이지만, 이제는 하느님의 법이라고 공표되고 확인된 진실들을 표현합니다(1961~1963항).

‘율법’과 율법의 핵심인 ‘십계명’을 통해 하느님의 뜻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알려졌습니다. 이스라엘에게는 율법을 지키는 것이 구원에 이르는 근본적인 수단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을 통해 무엇을 행해야 하는지 알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은 ‘율법’이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1963~1964항).


145. 예수님은 구약 시대의 ‘율법’에 대해 어떤 입장이셨나요?

예수님은 산상 설교를 통해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1965~1972항). 이처럼 예수님은 율법을 글자 그대로, 순전히 형식적으로만 해석하는 일련의 견해들과는 거리를 두셨습니다.


146. 우리는 어떻게 구원되나요?

자기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당신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셨고, 그분에 의해 자신들이 구원받는다고 믿습니다. 우리에게 구원은 성령을 통해 우리가 죄의 권세에서 해방되고 죽음의 영역에서 벗어나, 다시 하느님을 마주할 수 있는 영원한 생명에 이른 것을 의미합니다(1987~1995항). [평화신문, 2014년 7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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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 은총은 무엇인가요?

은총은 하느님의 사랑이 넘치는 관심이자 우리를 도우려는 그분의 호의이며, 그분에게서 나오는 생명력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996~1998항).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은총은 하느님의 눈길을 받고, 그분의 사랑으로 어루만져지는 것”이라 말했습니다. 하느님은 어떤 경우에라도 당신 자신보다 못한 것을 주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은총을 통해 하느님 안에 있게 됩니다.


148. 하느님의 은총을 통해 우리는 어떤 일을 할 수 있나요?

하느님의 은총은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 안에 살면서 그분의 사랑으로 행동할 수 있게 합니다(1999~2000항). 은총은 위로부터 우리에게 내려오는 것이며, 자연적 용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것입니다.

은총은 무엇보다 세례를 통해 우리를 하느님의 자녀이자 하늘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합니다. 또 은총은 우리에게 지속해서 선을 지향하는 마음을 선물합니다.


149. 하느님의 은총은 우리의 자유와 어떤 관계에 있나요?

하느님의 은총은 자유로이 인간을 찾고 그에게 다가가며, 그가 온전한 자유 속에 있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의 자유로운 동의를 원합니다(2001~2002항). 사람들은 은총 받는 것을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은총은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의 자유가 본래 원하는 것입니다.


150. 우리는 선행을 통해 하늘나라에 갈 수 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도 자신의 힘으로만 하늘나라에 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은총 덕분이지만 하느님의 은총은 인간의 자발적 참여를 요구합니다(2006~2011항).
 

151. 우리는 모두 성인(聖人)이 되어야 하나요?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의 의미는 사랑으로 하느님과 하나가 되며 하느님의 소망을 전적으로 따르는 것입니다. 즉, 넓은 의미의 성인이 되는 길입니다(2012~2016항). [평화신문, 2014년 8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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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권 그리스도를 통해 어떻게 생명을 얻는가?



152. 교회는 우리가 선하고 책임감 있는 삶을 살도록 어떻게 돕나요?

우리는 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2000년 가까이 교회가 온전하게 보전해 온 신앙을 교회 안에서 받아들입니다. 또한 우리는 교회에서 하느님의 살아 있는 말씀을 듣고, 하느님 마음에 들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배웁니다. 교회 안에서는 거룩한 성체성사가 거행되며, 그것을 통해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우리는 그분 몸이 되고 그분의 힘으로 살게 됩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2030~2031항).


153. 교회가 윤리적 문제나 개인의 생활 태도에 관한 문제에 의견을 표명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신앙은 하나의 길입니다. 우리가 이 길에 어떻게 머물지, 다시 말해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고 착하게 살지를 복음의 가르침을 통해서만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적으로 옳은 일이라면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 보아도 그릇된 일일 수 없습니다. 반대로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 옳은 일은 인간적으로 보아도 그릇된 일일 수 없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윤리 문제에 관해서도 폭넓게 의견을 제시해야 합니다(2032~2040항).


154. 교회가 정한 다섯 가지 법규는 무엇인가요?

△ 주일과 의무 대축일에는 미사에 참례하고, 육체노동을 삼가야 한다. △ 최소한 일 년에 한 번은 자기의 죄를 고백해야 한다. △ 적어도 한 번 부활 시기에 성체를 받아 모셔야 한다. △ 교회가 정한 날에 금식재와 금육재를 지켜야 한다. △ 교회의 필요를 지원해야 한다(2042~2043항).


155. 교회가 정한 법규는 무엇을 위한 것이고, 어떤 구속력을 지니나요?

‘교회의 다섯 가지 법규’는 신자들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사항입니다. 도덕적인 노력을 하지 않고 교회의 성사나 교회와 관련된 삶에 구체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등 교회와 연대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인이라 말할 수 없음을 일깨우기 위한 것입니다. 가톨릭 신자라면 누구나 이 법규들을 지킬 의무가 있습니다(2014, 2048항) [평화신문, 2014년 8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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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하나요?” (마태 19,16)

예수님은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켜라”(마태 19,17)라고 말씀하시며, “와서 나를 따라라”(마태 19,21) 하고 덧붙이셨습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2052~2054항, 2075~2076항).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계명을 지키는 올바른 삶을 산다는 것 이상을 의미합니다. 우리를 부르신 주님께서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자신을 거룩하게 하여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레위 11,44)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과 깊이 하나가 되며, 참 생명으로 이끄는 길을 그분과 함께 걷습니다.


157. 십계명은 무작위로 만든 목록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십계명은 전체가 같은 맥락에서 파악되는 통일성이 있으며, 하나의 계명은 다른 계명들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십계명은 인간의 삶 전체를 포괄한다는 점에서 특별합니다. 우리 인간은 하느님(1~3계명)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4~10계명) 관계를 맺고 있으므로, 종교적이며 사회적인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십계명의 본문은 두 가지 성경 원전에 근거합니다. 하나는 탈출기(20,2-17)이고 다른 하나는 신명기(5,6-21) 내용입니다. 예로부터 이 두 원전에서 십계명이 교훈적 목적으로 요약됐고, 전통적인 교리 문답의 형태로 신자들에게 제시됐습니다.


158. 십계명이 시대에 뒤떨어진 것은 아닌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십계명은 결코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십계명은 하느님과 이웃에 대해, 언제 어디서나 유효하고 변함없는 인간의 기본 의무들을 담고 있습니다(2070~2072항). 십계명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인간 행위에 관한 기본 법규들의 핵심적 요약입니다.

십계명은 하느님의 계시의 한 부분이며, 근본적인 구속력을 지니므로, 누구나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십계명은 결코 임의로 부과된 의무가 아니며, 이기주의와 증오와 거짓의 파괴적 힘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해준다”고 말했습니다. [평화신문, 2014년 9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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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계명  한 분이신 하느님을 흠숭하여라

159. 우리가 하느님을 흠숭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하느님이 현존하시고, 흠숭과 경외만이 그분의 현존에 합당한 응답이 되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을 흠숭해야 합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2083~2094, 2133~2134항). 우리가 하느님을 더 이상 흠숭하지 않고 생명과 죽음을 주재하시는 분으로 섬기지 않는다면, 다른 것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고 인간의 존엄성은 상실될 위기에 처할 것입니다.


160. 하느님을 믿도록 누구에게 강요할 수 있나요?

그럴 수 없습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우리는 아무에게도 우리의 신앙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형태의 개종 활동은 그리스도교다운 모습에 어긋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인간은 오로지 온전한 자유 의지로 신앙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말과 모범을 통해 다른 이들이 신앙에 이르는 길을 발견하도록 도우라는 소명을 받았습니다(2104~2109, 2137항).


161. “너희는 나 말고 다른 신을 알아서는 안 된다”(호세 13,4)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이는 십계명의 첫째 계명과 관련된 말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일들을 금해야 합니다. △ 다른 신이나 우상을 섬기거나 돈과 권력, 성공, 아름다움, 젊음과 같은 현세적 숭배 대상을 받들고, 재산 증식에 몰두하는 일 △ 하느님의 권능과 인도와 축복을 믿는 대신, 미신을 믿거나 밀교적ㆍ마술적ㆍ신비적 처방에 매달리거나 점이나 심령론과 관련을 맺는 일 △ 말이나 행위로 하느님을 시험하는 것 △ 신성모독을 범하는 것 △ 매수를 통해 영적인 힘을 얻거나, 성직이나 성물을 사고파는 등 거래를 통해 신성한 것을 모독하는 것(2110~2128, 2138~2140항). [평화신문, 2014년 9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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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계명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

162. 하느님이 우리가 당신의 이름을 거룩하게 받들기를 바라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하느님은 진리 그 자체이십니다. 하느님을 통해 진리를 불러야 하는데, 만약 거짓을 증언하기 위해 그 이름을 이용하는 사람은 대죄를 범하는 것입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2160~2162항). 따라서 하느님을 모독하고 하느님의 이름으로 저주하거나 거짓 맹세를 하는 것은 심각한 위법 행위입니다.

또한 이 둘째 계명은 ‘거룩한 것’ 전체를 지키기 위한 보호 규정입니다. 하느님의 손길이 닿은 장소나 사물, 이름, 사람은 ‘거룩합니다’. 거룩한 것에 대한 마음을 우리는 경외심이라고 부릅니다.


163. 십자 성호는 무엇을 의미하나요?

십자 성호를 통해 우리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보호에 우리 자신을 맡깁니다(2157, 2166항). 하루를 시작하거나 기도를 시작할 때, 또는 중요한 일을 시작할 때, 그리스도교 신자는 십자 성호를 그음으로써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그 일을 시작합니다. 우리 전체를 감싸고 있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우리는 우리가 하려는 일을 거룩하게 만듭니다. 십자 성호는 우리에게 축복을 주며, 어려움과 유혹에서 우리를 굳건하게 해줍니다.


164. 세례성사 때 받는 세례명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우리는 어떤 이름 하에 세례를 받습니다(2158항). 예로부터 그리스도인들은 성인들의 명부에서 자녀의 이름을 찾아 정했습니다. 그들은 수호성인이 자녀에게 모범이 되어 주고, 자녀를 위해 하느님에게 특별히 기도드려 줄 것을 믿습니다. [평화신문, 2014년 10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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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권 그리스도를 통해 어떻게 생명을 얻는가?



제3계명  주일을 거룩히 지내라

165. 이스라엘 사람들이 안식일을 지키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식일은 창조주이자 해방자이신 하느님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기억하게 하는 위대한 표징입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2168~2172, 2189항). 안식일은 한편으로 창조의 일곱째 날을 상기시킵니다. 안식일은 또한 이집트 종살이에서 해방된 것을 기억하게 합니다. 따라서 안식일은 인간의 자유를 축하하는 잔칫날입니다.


166.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안식일을 주일로 대체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안식일 다음날인 주간 첫날 곧 주일에 죽은 이들로부터 부활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안식일을 주일로 대체했습니다(2174~2179항).

그리스도교의 주일은 세 가지 필수 요소를 지닙니다. ▲ 주일은 천지 창조를 기억하게 하며, 하느님의 빛나는 자비를 시간 속에 끌어들입니다 ▲ 주일은 그리스도를 통해 세상이 새롭게 된 ‘여덟 번째 창조의 날’을 기억하게 합니다 ▲ 주일은 그저 일을 쉬는 것을 거룩하게 하려고 있는 것만이 아니라, 인간이 하느님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되리라는 것을 미리 알려주기 위한 것입니다.


167.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날’인 주일을 어떻게 지내나요?

가톨릭 신자는 주일이나 토요일 저녁에 미사에 참례합니다. 이날에는 하느님을 흠숭하는 일을 방해하거나 주일이 지닌 축제와 기쁨, 휴식, 원기 회복의 속성을 훼손하는 모든 일을 하지 않습니다(2177~2186, 2192~2193항).

주일 미사 참례는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근간을 이루는 일이므로, 교회는 긴급한 이유 없이 주일 미사를 거르는 것은 중대한 죄라고 분명하게 선언합니다. [평화신문, 2014년 10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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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권 그리스도를 통해 어떻게 생명을 얻는가?



제4계명 부모에게 효도하라

168. 넷째 계명은 누구와 관련된 것이며,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나요?


넷째 계명은 누구보다 부모와 관련한 것이지만, 우리의 생명과 행복, 안전, 신앙에 대해 감사해야 할 사람들도 그 대상이 됩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2196~2200, 2247~2248항).

우리가 가장 먼저 부모에게 돌려 드려야 하는 사랑과 감사, 존경은 우리를 이끌어 주고 우리를 위해 애쓰시는 분들에게도 마땅히 돌려 드려야 합니다. 예를 들면 양부모나 계부모, 연세가 높은 친척들과 선조들, 스승, 고용주나 직장 상사 등이 바로 그들입니다.


169. 자녀는 어떻게 부모를 공경할 수 있나요?

자녀는 사랑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부모를 대함으로써 그분들을 공경합니다(2214~2220, 2251항). 자녀는 부모의 사랑을 통해 생명을 얻었다는 이유만으로도 부모에게 마땅히 감사해야 합니다. “마음을 다해 네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고 어머니의 산고를 잊지 마라. …그들이 네게 베푼 것을 어떻게 그대로 되갚겠느냐?”(집회 7,27-28)

특히 부모가 환난과 질병에 시달리거나 고령에 이르렀을 때 자녀는 정성과 신의를 다해 그분들을 보살펴야 합니다.


170. 부모는 어떻게 자녀를 존중할 수 있나요?

하느님은 부모에게 자녀를 맡기셨습니다. 그래서 부모가 자녀에게 올바르고 건실한 모범이 되며, 자녀를 사랑하고 존중할 뿐만 아니라 자녀의 몸과 마음이 성장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이게 하셨습니다(2221~2231항).

자녀는 하느님의 선물이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자녀는 부모의 자녀이기 이전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부모의 가장 고결한 의무는 자녀에게 복음을 선물하고 그리스도교의 신앙을 전하는 일입니다. [평화신문, 2014년 10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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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계명 사람을 죽이지 마라 (1)

171. 우리가 자기 자신이나 다른 이들의 목숨을 빼앗을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오로지 하느님만이 생명과 죽음을 주재하는 주인이십니다. 정당방위나 긴급 구조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사람을 죽여서는 안됩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2258~2262, 2318~2320항)

생명을 훼손하는 일은 하느님을 모독하는 행위입니다. 인간의 생명은 하느님에게 속해 있으며 그분의 것입니다. 하느님이 몸소 우리에게 생명을 선물하셨기에, 오로지 그분만이 우리에게서 다시 가져가실 수 있습니다.


172. 다섯째 계명은 어떤 행위들을 금하나요?

이 계명은 살인과 살인 방조, 전쟁으로 인한 살인, 임신 이후에 행해지는 모든 낙태, 자살과 자해 및 자기 파괴 행위, 장애인과 병자와 임종을 앞둔 이에 대한 안락사 등을 금하고 있습니다(2268~2283, 2322~2325항).

교회는 이런 문제들에 대해 매우 단호한 태도를 보입니다. 낙태에 관여하거나 낙태하도록 남에게 강요하거나 부추기는 사람은 누구나, 생명을 거스르는 다른 위법 행위와 마찬가지로 자동 파문됩니다.


173. 교회가 사형제도에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사형은 잔혹할 뿐만 아니라 불필요하기 때문에 교회는 사형제도를 적극적으로 반대합니다(2266~2267항).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회칙 「생명의 복음」에서 말한 것은, 사형이 모든 관점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불법적인 형벌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범죄자의 목숨을 빼앗는 일은 국가가 오로지 ‘사형 집행 외에 사회를 보호할 다른 방도가 없는 때’에만 취할 수 있는 극단적 조치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경우에 대해 교황은 ‘실제로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극히 드물다’고 말합니다.


174. 살아 있는 배아나 배아 줄기세포를 연구해도 되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의 생명은 정자와 난자의 결합으로 시작되기 때문에 배아도 인간입니다(2275, 2323항). 배아를 생물학적 물질로 여겨 그것을 ‘제조하고’ 그렇게 얻은 배아 줄기세포를 연구 목적으로 ‘사용하는’ 행위는 전적으로 비윤리적이며 다섯째 계명에 저촉됩니다. 그러나 성체 줄기세포는 인체로 자랄 수 없으므로 그것에 대한 연구는 다르게 평가할 수 있습니다. [평화신문, 2014년 11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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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권 그리스도를 통해 어떻게 생명을 얻는가?



제5계명 사람을 죽이지 마라 (2)

174. 안락사가 허용되나요?


적극적으로 죽음을 초래하는 행위는 모두 “살인해서는 안 된다”(탈출 20,13)라는 계명을 어기는 것입니다. 그와는 반대로, 임종 직전에 있는 사람을 돕는 것은 인간애에 관한 계명이기도 합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2278~2279항).

환자의 생명이 단축될 위험이 있더라도 통증을 덜어 주기 위한 약물 투여는 정당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약물을 이용하여 죽음을 목표로 하거나 죽음의 수단으로 꾀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175. 그리스도인들은 임종하는 사람을 어떻게 돕나요?

그리스도인들은 임종하는 사람이 충만한 신앙 속에서 품위 있고 평화롭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와 함께 기도하고, 그를 돌보며, 그가 성사를 제때에 받을 수 있도록 주선합니다(2299항).


176.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떠난 이의 시신을 어떻게 대하나요?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이 죽은 이를 육신의 부활로 부르셨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시신을 경건하고 성의 있게 대합니다(2300~2301항).

세상을 떠난 이의 시신을 품위 있게 땅속에 매장하고 묘지를 꾸미고 돌보는 것은 그리스도교적인 장례 문화에 속하는 일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육신의 부활에 대한 믿음을 반대하는 표징으로 해석되지만 않는다면 화장 등의 다른 장례 방식들도 허용합니다. [평화신문, 2014년 11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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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계명 간음하지 마라

178. ‘간음’이란 말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나요?


‘간음’은 본래 이교적 성 풍습을 의미했습니다. 나중에 이 단어는 혼인 관계 밖에서 하는 모든 형태의 성행위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습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2353항).

간음은 사랑을 거스르는 중대한 잘못이며,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고 인간의 성이 지닌 의미를 잘못 이해한 행위입니다.


179. 교회가 ‘교회 밖의 혼인’을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가톨릭 신자에게 교회혼 이외의 혼인은 없습니다(2390~2391항). 오늘날 많은 이들이 책임 없는 혼전 성관계나 혼외 성관계를 가져도 아무렇지 않다고 이야기하지만, 교회는 그러한 사회적 압력에 저항하라고 충고합니다.


180. 외설 동영상을 제작하고 구매하는 것이 사랑을 거스르는 죄가 되나요?

사랑을 오용하는 사람은 중대한 죄를 짓는 것입니다. 외설 동영상을 제작해서 사고파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죄로 끌어들이는 것입니다(2523항).

외설 동영상은 돈으로 ‘사랑’을 살 수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매춘의 또 다른 형태라 할 수 있습니다. 외설 동영상의 출연자나 제작자, 판매자는 사랑과 인간의 존엄성을 거스르는 심각한 잘못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제7계명 도둑질을 하지 마라

181.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탈출 20,15)라는 일곱째 계명은 무엇을 규정하나요?


일곱째 계명은 남에게서 무엇을 빼앗는 행위를 금할 뿐 아니라, 지구상의 재화를 공정하게 관리하고 배분하라고 요구합니다(2401항).


182. 도둑질에 해당하는 일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도둑질은 남의 재화를 불법적으로 탈취하는 행위를 말합니다(2408~2410항). 물론 이 계명은 정당한 임금을 부당하게 지급하거나, 돌려줄 수 있는데 습득물을 지니고 있는 일 등 모든 사기에 적용됩니다.

또 공공 재산을 낭비하거나 소홀하게 관리하는 일, 돈과 청구서 결산을 위조하거나 세금을 횡령하는 일 등이 해당합니다. [평화신문, 2014년 11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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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계명 거짓 증언을 하지 마라

183. 거짓말을 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진리와 정의를 거스르는 모든 행위는 용서를 받았다 하더라도 그 잘못에 대해서는 배상해야 합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2487항). 특히 ‘거짓 맹세’는 의도적으로 하느님을 거짓 진술의 증인으로 내세우는 것으로 대죄에 속합니다.


184. 고해성사의 비밀은 얼마나 지켜지나요?

고해성사의 비밀은 신성한 것이므로, 어떤 중요한 이유가 있더라도 결코 누설할 수 없습니다(2490항). 사제는 고해자에게 매우 중대한 범죄 내용을 들었더라도 고발할 수 없습니다.


제9계명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마라

185. 아홉째 계명이 성욕을 비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계명은 성욕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무질서한 성욕을 비판합니다(2514~2515항). 남녀 간의 성적 매력은 하느님이 만드셨기 때문에 유익하지만, 경솔하게 성적 충동을 행동으로 옮겨 가정에 피해를 주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186. 마음의 정화는 어떻게 얻을 수 있나요?

사랑에 요구되는 마음의 정화는 무엇보다 기도를 통해 하느님과 하나가 될 때 얻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이 우리를 매만질 때 순수하고 완전하게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2517~2520항).


제10계명 남의 재물을 탐내지 마라

187. 그리스도인은 다른 이의 재산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하나요?


그리스도인은 부당한 욕구와 합당한 욕구를 구분하는 법을 배우고, 남의 재산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야 합니다(2534~2537, 2552항).


188. 예수님이 우리에게 마음의 가난을 요구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마음의 가난은 나쁘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빈 마음을 채워 주고, 가난을 풍요로움으로 바꿔줄 수 있는 분을 마음을 다해 찾기만 하면 됩니다. [평화신문, 2014년 12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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