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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10: 인간 안에서 하느님의 모습을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4-04-08 조회수1,784 추천수0

[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10) 인간 안에서 하느님의 모습을

"아니 어떻게 그런 사람이 신자입니까"



신앙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유아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해 온 나는 운 좋게도 좋은 사람들을 성당에서 많이 만났다. 함께 자랐고, 함께 기도했으며, 함께 뛰놀았던 친구들이 다 성당에서 만난 친구들이었다.
 
가진 것도 별로 없었고 서로의 형편은 달랐지만, 그래도 성당 친구들이 있어서 큰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내 어린 시절의 중심이며, 성장 과정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가장 소중한 곳 중의 하나가 바로 성당이었다.
 
이처럼 좋은 사람이 많은 곳이 본당이지만, 한편으론 그 안에서 큰 실망을 하거나 상처받는 경우도 흔하다. 가장 믿었던 교우로부터 상처받고 신앙을 잃을 정도로 상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신자 간의 다툼은 금전적 문제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서로 호형호제 하거나 대부대자 하며 친하게 지내다가도 결국엔 금전 문제 때문에 다툼이 시작되곤 한다.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이었기에 금전적 도움을 요청하지만, 마지막은 상처로 남게 되는 경우가 많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6ㆍ25전쟁으로 고향을 떠나 어렵게 타지 생활을 하셨다. 그런 아버지에게 가톨릭 신앙은 어둠 속의 한 줄기 빛과 같았다. 아무것에도 의지할 데 없던 시절, 아버지는 신앙생활 안에서 모든 것을 극복할 힘을 얻곤 하셨다. 어린 시절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 모습은 성당에 필요한 소소한 일들을 하시거나 미사 중에 전례 봉사를 하시는 모습이었고, 집에서는 전기ㆍ물ㆍ기름 절약하시는 검소한 분이셨다.
 
다들 어려운 시절이었고 물자가 풍족하지 않은 시절이었기에 우리 가족 역시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했다. 그러던 중 부모님이 크게 싸우는 걸 본 적이 있다. 금전 문제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사업이 잘 됐을 때 약국을 운영하는 대자에게 거금을 빌려 주었는데 그분 사업이 악화됐고 결국엔 단 한 푼도 되돌려 받지 못했다. 이후 아버지 사업이 점점 어려워지자 어머니는 대자에게 돈을 빌려 준 사실로 잔소리를 하셨다.
 
어머니의 말씀은 '평상시 절약하고 아껴 모은 돈으로 아내나 자식에게는 그렇게 인색하더니 남 좋은 일을 했다'는 것, '그 돈이 있었다면 이렇게 힘들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잔소리에 의외로 덤덤하게 대답하셨다.
 
"여보, 오죽하면 그 친구가 그렇게 하겠소. 그 친구를 너무 미워하지 마시오! 형편이 나아지면 반드시 갚을 것이요. 나는 그 친구를 믿소."
 
사실 가장 가까운 사람도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한순간에 가장 미워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부부 사이에, 형제 사이에, 친구들 사이에 그리고 같은 신앙을 고백하는 교우들 사이에서처럼 서로 믿고 의지하는 것이 더 많았기에 그들로부터 배신을 당하게 되면 그 상처는 더 크게 남는다.
 
어찌 보면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도 이러한 믿음과 배신의 관계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구약성경 안에 나타난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는 일방적 짝사랑의 모습이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허락하셨고, 모든 것을 인간에게 믿고 맡기셨지만, 교만하고 죄 많은 인간은 하느님의 뜻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자꾸 하느님으로부터 떠나려고만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교회는 모든 인간 안에서 하느님의 생생한 모습을 본다는 사실을 강조해 왔다(「간추린 사회교리」 105항 참조). 아무리 우리 마음에 상처를 준 사람들이라도 그 사람들 역시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이며, 그 피조물인 인간 안에는 하느님 모습이 살아 있다. 단지 인간들은 자신의 죄 때문에 자신이 하느님의 피조물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잊고 살아간다. 세상 안에 살면서 인간들에게 잊혀 가는 하느님의 모습을 다시 일깨워 주는 것, 그것이 바로 세상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오늘날 교회의 역할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에게 금전적 손해를 끼친 사람도,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도, 분명 하느님의 피조물이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됐기에 그 자체로 사랑받을 존재며, 존중받을 만한 존재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아버지께서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셨지만, 아버지의 대자는 아버지 빈소에도 찾아오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우리 가족의 눈에 띄는 것이 미안하고 부끄러워 말없이 왔다 갔을지 모르겠다. 끝까지 대자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서 나는 자비로운 하느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느님께서는 그처럼 죄인의 회개를 기다리며 무조건 용서해 주시는 자비로우신 분이시다.

[평화신문, 2014년 4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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