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11) 그리스도인의 자유
하느님 자녀 됨으로써 얻는 신앙인의 자유
'자유!' 하면 떠오르는 분이 있다. 일본 제국주의 시절 식민지 정부 심장 한복판에 권총을 발사했던 안중근(토마스). 안 의사는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내던진 영웅이었지만, 그 진정한 가치가 점점 잊혀 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2월 14일 발렌타인 데이를 모르는 젊은이는 없다. 하지만 104년 전 같은 날 안중근 의사가 사형 선고를 받은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리고 얼마 뒤인 3월 26일 안 의사가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란 유언을 남기고 차디찬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갔다는 사실도 잊혀 가는 것 같다.
무슨 이유로 안중근 의사는 목숨을 내어놓으면서까지 거사를 실행했을까? 아마도 진정한 자유가 주는 의미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힘에 눌려 나라를 빼앗긴 힘없는 나라의 백성으로 태어났지만, 청년 안중근은 목숨을 바쳐서까지 나라의 독립과 국권 회복을 꿈꿨다. 또한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이 믿었던 천주교 신앙 안에서 자신의 행동이 정당한 전쟁에 의한 정당방위 행위였음을 주장한 안중근은 시대의 선각자요 실천하는 신앙인의 모범이다.
지난해 하얼빈교구에서 본당 사목을 하는 제자 신부를 방문하러 간 적이 있었다. 하얼빈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바로 안중근 의사와 이토 히로부미였고, 그 역사적 현장에 꼭 가보고 싶었다. 하얼빈에 도착하자마자 제자 신부에게 역사적 저격 장소에 데려가 달라고 청했지만, 안 의사가 이토에게 총탄을 발사했던 하얼빈 역사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기차 여행객만 역사 안으로 들어갈 수 있고 관광객은 입장할 수 없었다.
아쉬움을 달래며 안 의사 의거를 기념해 건립된 기념관을 방문했다. 작은 2층 건물로 된 기념관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안 의사의 청동상과 전시실 한편에 보관된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이라고 쓰인 안 의사의 글귀였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군인의 본분이다'란 말 속에서 안중근이란 독립군 대장의 의연한 기개가 살아 숨 쉬는 것 같았다.
안 의사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나라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순국선열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리고 지금 내가 누리는 자유로운 삶과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생각하며, 진정한 의미의 자유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했다.
"나에게 자유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참된 의미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 나 역시 모든 것을 내어 놓을 수 있을까. 만일 나에게도 같은 상황이 닥친다면 나라를 위해, 내 신앙을 위해 목숨을 내 놓을 수 있을까."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기념관을 떠나면서 참된 자유의 의미와 그 가치를 깨닫게 해 준 순국선열과 신앙선조에게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가톨릭 신앙 안에서는 '자유'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흔히 '자유'는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어떠한 강박을 받고 있지 않은 상태를 뜻하거나, 인간이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인 우리 신앙인들이 이야기하는 자유의 의미는 조금 다르게 해석된다. 가톨릭 신앙에 따르면, 인간은 자유 안에서만 선을 지향할 수 있으며, 이 자유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습을 보여 주는 탁월한 표징의 하나로서 인간에게 선사된 것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705항 참조).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해방과 구원을 선사하는 자유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고 고백함으로써 죄와 율법, 죽음으로부터 해방된 자유로운 존재가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자녀가 됨으로써 얻게 된 이 자유로 말미암아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할 책임을 지는 자유로운 존재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적극적인 의미의 자유를 뜻한다. 하느님을 섬기는 가운데, 진리를 따라 살아가는 가운데 누리게 되는 이 자유는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자유이며, 더 완성된 의미의 자유라고 말할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자유 의지를 선물하셨으며, 인간이 스스로 창조주를 찾아 따르며 자유로이 완전하고 행복한 완성에 이르기를 원하셨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하느님 안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될 수 있는 것이다(「간추린 사회교리」 135항 참조).
안중근 토마스! 그분은 나라의 독립과 자유를 갈망했던 분으로 하느님 안에서 진정 자유로운 분이셨다. 그분이 얻고자 했던 독립과 자유의 정신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 신앙인들이 다시 한 번 되새겨야 할 정신이다.
[평화신문, 2014년 4월 13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