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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15: 사회교리와 보조성의 원리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4-05-12 조회수2,016 추천수0

[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15) 사회교리와 보조성의 원리

부족한 것 채워주되 간섭하지 말아야



‘보조성의 원리’는 ‘공동선의 원리’와 함께 사회교리의 기본 원리가 된다. 그렇다면 ‘보조성의 원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보조성’은 영어로 ‘Subsidiarity’로 표현되는데, 본래 의미는 ‘예비’ 또는 ‘보조’를 뜻하는 라틴어 ‘subsidium’에서 유래한다. 이 단어는 로마 시대의 군사 용어로서 전방에서 싸우는 부대를 지원하기 위한 후방 예비 부대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고대 국가 시절의 전쟁 개념에서 이러한 예비 부대는 여러모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아무리 강한 전투력을 지닌 군대라 하더라도, 군수물자의 보급이나 예비 병력의 보충은 전투에 승리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였다.

이러한 ‘보조성’의 개념을 사회문제에 적용한 것이 바로 ‘보조성의 원리’이다. 이 원리를 사회생활에 적용하면, 더 큰 사회단체가 개인 혹은 더 작은 사회단체를 위해 취하는 보충적이고 응급적 조치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개념은 사회교리 측면에서 볼 때, 어떤 것에 대한 보조적인 개념보다는 보완적인 개념이 더욱 강하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보조성의 원리’보다는 ‘보완성의 원리’로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보조성’이란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협조와 조력의 피동적 의미보다는 보완과 완성이란 능동적 의미가 ‘보조성의 원리’에 더 포함돼 있어서다.

사실 인간은 공동체 안에서 개인, 소집단, 대집단의 구성원으로 살아간다. 예를 들어 ‘나’란 존재는 한 개인으로서 인격성을 지니고 살아가는 고유한 존재인 동시에 인천이란 지역 사회 안에서 인천시민으로서 살아가고 있으며, 동시에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살아간다. ‘나’ 개인은 장소와 시간과 상관없이 같은 존재이지만, 시대와 환경과 상황 안에서 다른 상위 집단과 유기적 인과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나’ 개인은 소집단, 대집단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면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가치 혼란과 충돌을 일으키게 된다. 이때 이러한 가치혼란과 충돌을 피하고 더 완성된 ‘나’를 형성하는 데 필요한 원칙이 바로 이 ‘보조성의 원리’이다.

가톨릭교회는 여러 사회 회칙들을 통해 ‘보조성의 원리’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해 왔다. ‘보조성의 원리’에 따르면 모든 상위 질서의 사회는 하위 질서의 사회들에 대해 도움의 자세, 즉 ‘보조성의 원리’에 입각해 움직여야 한다. ‘보조성의 원리’에 따라 움직일 때, 사회 중간 단체들은 자신의 고유한 임무를 다른 상위 단체들로부터 부당하게 양도하도록 강요받지 않고, 제 임무를 적절히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간추린 사회교리」 186항 참조).

그렇다면 가톨릭교회는 왜 ‘보조성의 원리’를 주장하는가? 그 이유는 첫째로, 더 큰 상위 집단의 지나친 개입을 반대하고 개인의 권리와 능력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이처럼 개인이나 작은 소집단 사회를 우선시하는 이유는 공동선의 촉진을 위해서이다. 만일 큰 집단이 개인이나 보다 작은 소집단 사회를 우선시하지 않는다면 국가주의(nationalism)나 전체주의(totalism) 같은 이념적 사고 안에서 개인이나 소집단의 권리가 침탈될 수 있으며, 공공의 이익보다는 특정 집단의 이익을 추구하게 될 위험성이 크다. 둘째로, 더 큰 집단이 개인 및 작은 집단을 보조하고 도와줄 의무와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때 큰 집단의 보조는 개인 또는 작은 집단의 역량이나 의지가 약하면 약할수록 그 보조의 폭과 정도가 커지기도 한다.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은 그러한 보조가 제한적이고 일시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더 큰 상위의 집단이 취하는 보조, 보완의 역할에는 필연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가톨릭교회는 레오 13세 교황의 첫 사회 회칙 「새로운 사태」에서 빈부 격차와 노동 문제 해결을 위한 국가 개입을 말하면서 처음으로 이 ‘보조성의 원리’를 간접적으로 언급했다(「새로운 사태」 26항 참조). 그리고 비오 11세 교황은 「사십주년」에서 ‘보조성의 원리’에 대해 직접 언급했다(「사십주년」 35항 참조). 그는 당시 시대 상황 안에서 공산주의의 팽창과 우익독재의 등장으로 인해 국가 권력이 지나치기 확대됐기에 정치적 독재에 반대해 인간 존엄성과 인권을 보호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보조성의 원리’를 강조했다. 이러한 ‘보조성의 원리’는 이후 후임 교황들을 통해 지속해서 재확인됐다(「어머니요 스승」 53, 117항; 「백주년」 14, 48항 참조).

정리하면, ‘보조성의 원리’는 사회의 고위 권력의 남용에서 사람들을 보호하고, 개인과 중간 단체들이 자신의 의무를 완수할 수 있도록 고위 권력들이 도와주기를 요구한다. 따라서 ‘보조성의 원리’는 특정 형태의 중앙집권화와 관료화와 복지지원을 반대하고 있다. 또한, 공적 기능에 대한 국가의 부당하고 과도한 개입을 반대하고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187항 참조).

‘보조성의 원리’의 실현! 어쩌면 오늘날과 같이 복잡 다양한 민주주의 국가 안에서 가장 절실하게 실현돼야 할 원리가 바로 이 원리일 것이다.

[평화신문, 2014년 5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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