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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앙과 경제142: 인간의 얼굴을 한 적정기술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4-05-17 조회수1,723 추천수0

이용훈 주교에게 듣는 신앙과 경제 (142) 인간의 얼굴을 한 ‘적정기술’

인간 삶의 질 궁극적으로 향상시켜



가난한 제3세계 나라나 오지 마을을 돕는 국제개발협력에서 이용되고 있는 ‘적정기술(適正技術, appropriate technology)’이 우리나라에서도 새롭게 주목받고 있습니다.

‘적정기술’이란 그 기술이 사용되는 사회 공동체의 정치적 · 문화적 · 환경적 조건 등을 고려해 해당 지역에서 지속적인 생산과 소비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진 기술로, 인간 삶의 질을 궁극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기술을 말합니다.

적정기술은 마하트마 간디를 존경했던 1960년대 영국의 경제학자 슈마허(E. F. Schumacher, 1911~1977)가 ‘중간기술(intermediate technology)’이란 개념으로 시작한 기술철학에서 유래합니다. 당시 슈마허는 선진국과 제3세계의 빈부 격차와 양극화 문제에 대해 고민하던 중 간디의 자립 경제 운동과 불교 철학에서 영감을 얻어 올바른 개발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중간 규모의 기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슈마허가 창안한 중간기술은 과거의 원시적인 기술보다는 훨씬 우수하지만 선진국의 거대 기술(super technology)에 비하면 소박한 기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자본을 기반으로 대량의 제품을 생산하는 거대 기술과 달리 중간기술은 현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와 적은 자본, 비교적 간단한 기술을 활용하여 그 지역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소규모의 생산 활동을 지향합니다. 따라서 중간기술은 대자본을 바탕으로 한 첨단기술에 비해 훨씬 값싸고 제약이 적은 기술이며, 기술이 사용되는 과정에서 인간이 소외되지 않고 노동을 통해 기쁨과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인간의 얼굴을 한 기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슈마허는 이러한 중간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제3세계의 빈곤 문제는 물론 자기 파괴적인 거대 기술로부터 야기된 여러 문제들을 해결해줄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후 전문가들 사이에서 ‘중간(intermediate)’이라는 용어가 자칫 기술적으로 미완의 단계를 의미하거나 첨단 기술보다 열등하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는 의견이 반영되어 ‘적정기술’이라는 용어가 더 널리 쓰이게 되었습니다.

적정기술은 그것을 생산하고 사용하는 과정에서 최소한의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이용하게 한다는 면에서 생태적인 기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제3세계와 선진국 사이의 기술적·경제적 격차를 가장 바람직한 방식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도움으로써 기술을 사용하는 궁극적인 목표가 인간의 발전에 맞춰진 기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정신을 반영한 대표적인 적정기술 제품으로는 주로 식수시설이 없는 아프리카지역에 많이 보급된 휴대용 빨대 정수기인 라이프스트로(LifeStraw)와 같은 구호 제품, 수동식 물 공급펌프(Super MoneyMaker Pump)와 같은 농업 관련 기술, OLPC(One Laptop Per Child)사의 XO-1 컴퓨터와 같은 교육용 제품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개발되어온 적정기술들은 가난으로 인해 고통 받는 이웃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나눔’에서 비롯된 것이 대부분이어서 그리스도교적인 형제애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효율만이 지상최대의 목표가 되어 인간이 만들어낸 기술 가운데서 인간이 사라져가고 있는 오늘날의 생산 활동 속에서 적정기술은 기술과 인간이 맺는 관계를 되돌아보고 창조 때부터 하느님께서 몸소 보여주신 노동의 참된 의미를 깨닫게 해주고 있습니다.

[가톨릭신문, 2014년 5월 18일,
이용훈 주교(수원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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