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교리서 DOCTRINE

교리 자료실

제목 신앙과 경제146: 관피아, 오늘의 사두가이가 지배하는 세상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4-06-14 조회수1,883 추천수0

이용훈 주교에게 듣는 신앙과 경제 (146) 관피아, 오늘의 사두가이가 지배하는 세상

법과 도덕 위에 군림하는 ‘그들’



300명이 넘는 무고한 생명을 한꺼번에 앗아간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후 우리나라 역사는 사고가 일어난 4·16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고 새롭게 달라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돌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그렇게 될까 하는 의구심을 품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시대의 최대 화두로 떠오른 ‘관피아’ 문제 때문입니다.

관료 출신 공무원들이 퇴직 후 공공기관이나 관련기관 등에 재취업하여 요직을 두루 독점하는 것을 비하하여 이르는 이 말은 관료와 마피아의 합성어입니다.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을 근거지로 한 범죄조직 마피아에 빗대어 학연과 지연, 관연 등으로 얽힌 비리의 난맥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현재 세간에 오르내리는 관피아만 보더라도, 옛 재정경제부(MOFE)와 금융 및 재정기관이 합성된 모피아를 시작으로 세월호 참사를 초래한 해양수산부와 해운업계의 해피아, 국토해양부와 건설업계의 국피아, 산업통상자원부와 산업계의 산피아, 법무부와 법조계 및 로펌 등 법피아, 교육부와 학계의 교피아, 여의도 정치인과 정부 산하기관의 여피아, 원자력 전문학과 출신이 뭉친 원피아, 철도고·철도대학 출신이 철도공사와 철도시설공단을 장악한 뒤 유착고리를 형성한 철피아 등 일일이 손으로 꼽기도 힘들 정도입니다.

이처럼 관피아 문화는 우리 사회 일부에 국한되지 않고 전반에 이미 뿌리를 깊게 내려 관행으로 굳어져 있습니다. 이름이야 어떻든 법과 사회의 도덕규범을 무력화시키고 사사로운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거나 대변한다는 점에서는 매한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관피아의 공통적 특질은 겉으로는 국민과 공익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지난 시절 자신들이 관에서 누렸던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 사리사욕을 채우면서도 국민들로부터 사회지도층이라는 찬사를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관피아를 보며 예수님 시대 사두가이파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유다교 대사제와 고위 성직 계층의 직책을 독점하고 있던 사두가이들은 율법을 글자 그대로 해석해 당대 사회에서 자신들이 누리는 부와 지위를 하느님께서 내려주신 축복의 표시로 여기고 체제 유지를 옹호했습니다. 이 때문에 굳이 자신들이 받은 주님의 은총을 이웃과 나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오늘날 타락의 길을 걷고 있는 사이비종교들에서 이러한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사두가이들은 율법을 통해 기득권을 누리고 있던 자신들의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백성을 율법의 노예로 만드는 일에 앞장섭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과는 정반대 입장이 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기까지 합니다.

오늘의 우리 교회는 이러한 사두가이나 관피아의 모습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가톨릭교회가 여전히 다른 종교에 비해 국민들이나 사회로부터 존경과 신망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예전만큼은 아닌 듯합니다. 이는 교회가 중산층화의 길을 걸으면서 교회 안에서 가난한 이들을 진정으로 배려하지 않는데 그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부유하고 힘 있는 이들로 채워진다고 해서 영향력이 더 커진다고 여기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주님은 가난한 이들 가운데 가난한 모습으로 사셨을 뿐 아니라 가난한 이들을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고 「복음의 기쁨」(186~216항)은 가난한 이들의 울부짖음을 귀담아 듣고 도와주라고 절절히 호소하고 있습니다.

[가톨릭신문, 2014년 6월 15일, 이
용훈 주교(수원교구장)]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