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23) 인간 노동의 존엄성
일하는 게 고통스러우신가요?
얼마 전 어린 조카에게 장래 희망을 물은 적이 있다. 조카는 평범한 회사원이 되고 싶다고 대답했다. 중학생인 조카는 아침에 출근해 저녁에 퇴근하는 대기업 회사원이 평범하게 보였나 보다. 그런 조카에게 나는 이 세상에 평범한 회사원은 없다고 말해버렸다. 아이들은 대기업 회사원이 되기 전 어린 시절부터 무한 경쟁의 구도 속에 내몰린다. 6년간의 기초 교육과 6년간의 중·고등 교육, 그리고 4년간의 대학 과정을 거치면서 남들과 비교당한다. 남들을 이기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들을 터득하며 성공을 위해 끊임없이 경쟁에 내몰리는 게 현실이다. 어렵사리 취업문을 통과해도 또 다른 경쟁 구도 속에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노동하며 불행을 느끼는 사회
명문 대학을 나와 국가기관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는 고등학교 동창이 한번은 나에게 삶의 의미에 대해 물은 적이 있었다. 그 친구는 학창 시절부터 머리가 명석해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았다. 그는 모두가 원하던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친구의 이런 모습은 모든 사람에게 부러움을 받을 만했지만, 그 친구는 삶이 너무 고달프다고 내게 푸념 아닌 푸념을 하고 있었다. 그에게 나는 신앙생활을 권유했다. 더 기쁜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는 일에 의미를 찾아야 하며, 그런 모든 일 중심에 하느님과 함께할 수 있다면 분명 그 일에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해 주었다.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여러 가지 다양한 직업을 택해 살지만, 막상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실제로 그런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을 거의 만나보지 못한 것 같다. 이름난 대기업의 부장으로 근무하는 어린 시절 친구는 자신의 미래를 걱정한다. 성공을 위해 달려온 그 친구는 아직 어린 자녀를 보면서 언제 회사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떤다. 이러한 불안감은 직장인으로 근무하는 한국 사회 사람들 대부분의 공통된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이 세상에서 일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그것은 진정한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 일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꿈꿔온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서 우리는 열심히 일한다. 따라서 노동으로 초대된 우리 인간은 모두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으며, 그러한 노동을 통해 존중받으며 살 권리가 있다. 하는 일이 짐이나 고통으로 다가온다면 그런 일은 자신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서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노동의 존엄성, 인간에게 비롯된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인간 노동을 그 자체로 존엄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노동의 존엄성은 과연 어디에서 비롯하는 것일까?
가톨릭 사회교리는 이러한 인간 노동의 존엄성이 노동에 대한 의미에서부터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사회교리에서는 우선 인간 노동이 객관적인 의미와 주관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본다. 객관적 의미의 노동은 창세기에서 말하는 것처럼 땅을 다스리고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는 데 사용하는 모든 활동과 자원, 도구와 기술의 총체를 뜻한다. 한편, 주관적 의미의 노동은 노동 과정 일부로서 자신의 개인적 소명에 부합하는 다양한 활동을 수행할 수 있는 역동적 존재인 개인의 활동을 뜻한다. 사실 객관적 의미의 노동은 인간 활동의 부수적인 측면을 이루고 있으며, 기술과 문화, 사회 정치적 환경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그 표현을 달리하며 나타난다. 이에 반해 주관적 의미에서의 노동은 안정된 차원을 보여주는데, 노동은 사람들이 생산해 내는 것, 또는 그들이 하는 일의 유형에 따라 좌지우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들의 인간적 존엄에 좌우되기 때문에 변화되지 않는 것이다(「간추린 사회교리」 270항 참조).
가톨릭교회는 노동의 이런 주관적 의미에 주목한다. 주관적 의미의 노동은 노동 그 자체에 특별한 존엄을 부여하며, 인간의 노동을 단순한 상품이나 비인격적인 생산 도구로 간주할 수 없게 만든다. 노동을 그 객관적 가치의 크고 적음과는 별도로 개인의 본질적이고 인격적인 행위로 이해한다.
가톨릭교회는 노동자를 단순한 생산 도구, 물질적 가치만을 지닌 단순한 노동력으로 격하시키려 하는 모든 시도를 거부한다. 그 이유는 모든 인간 노동을 인간에서 비롯하며, 인간을 지향하며, 인간을 최종 목적으로 삼는 것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간추린 사회교리」 271~272항 참조).
오늘날을 살아가는 모든 노동자가 자신의 직업과 일의 종류에 상관없이 존중받기 위해서는 노동의 존엄성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자기 가족을 위해 땀 흘리며 일하는 모든 노동자를 인격적으로 대해야 하는 이유 역시 바로 이러한 노동의 존엄성에 근거하는 것이다. 자신의 직업 속에서 행복을 느끼며 일하는 사람들이 주인이 되는 세상이 우리 한국 사회였으면 좋겠다!
[평화신문, 2014년 7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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