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추린 가톨릭 교회 교리서 (81)
86. 일곱 가지 청원 II (마지막 회)
1)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의 명언이지만,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 신자들에게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무언가를 추구하고, 무언가를 기도하기에 앞서서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하느님으로부터 창조된 존엄한 존재이지만, 동시에 연약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인간에게는 하느님의 도우심이 필요하고, 그분께 의탁해야 합니다. 주님의 기도의 이 구절은 끊임없이 하느님의 은혜를 필요로 하는 우리의 본모습을 일깨워 줍니다.
또한 이 청원 기도는 우리에게 이웃과의 관계도 생각하게 해 줍니다.
양식이 없어서 굶주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이 청원의 또 다른 깊은 의미를 일깨워 준다. 세상에 굶주림의 비극이 있다는 것은, 진실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개인적인 처신에서나 인류 가족인 그들과의 연대에서나, 자기 형제들에 대한 실질적 책임을 다하라고 호소하는 것이다(가톨릭교회교리서 2831항).
이 청원은 사람들이 겪는 또 다른 굶주림에도 해당됩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마태 4,4). 곧, 사람은 하느님의 말씀과 하느님의 숨결(성령)로 사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노력을 다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 땅 위에서는 “양식이 없어 굶주리는 것이 아니고, 물이 없어 목마른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여 굶주리는 것이다”(아모 8,11) (가톨릭교회교리서 2835항).
2)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예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핵심이 용서에 있다고 가르치셨습니다(무자비한 종의 비유, 탕자의 비유 등). 또한 예수님께서는 직접 용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죄인들과의 만남, 십자가에서의 용서 등). 용서는 영혼의 일용할 양식입니다.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청원하듯이, 하느님의 용서를 청원하는 것은 지극히 마땅한 일입니다.
일용할 양식을 위한 청원기도가 우리를 하느님과 연결시켜 줄 뿐만 아니라, 이웃들과도 연결시켜 주듯이, 용서를 위한 청원기도 역시 우리를 이웃과 결합시켜 줍니다.
만일 우리가 눈에 보이는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없다. 우리의 형제자매를 용서하기를 거부한다면, 우리 마음은 다시 닫히고 굳어져서, 아버지의 자비로운 사랑이 스며들 수 없게 된다. 우리의 죄를 고백함으로써, 우리의 마음은 아버지의 은총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열리게 된다(가톨릭교회교리서 2840항).
3)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이 청원기도 역시 인간의 한계를 깊이 인정할 때 올바로 바칠 수 있습니다. 의지력이 약한 사람보다는 오만한 사람이 더 쉽게 유혹에 빠지게 됩니다. 의지력이 약한 사람은 술 한 잔의 유혹에 굴복합니다. 그리고 후회합니다. 그런데 오만한 사람은 자기가 잘 사는 줄 알고 으쓱대면서 잘못된 길로 나아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잘못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심각합니다.
이 청원은 분별력과 용기의 영을 주시기를 간청하는 것이다(가톨릭교회교리서 2846항).
4) 악에서 구하소서
우리는 이 마지막 청원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믿음을 굳건하게 표현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선하심과 전능하심을 믿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악의 세력이 엄연히 존재하고 우리를 위협하고 있음도 체험합니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의 믿음을 끊임없이 되새기며 바치는 믿음과 희망의 기도인 것입니다.
우리는 악에서 구해 주시기를 청하면서, 또한 악의 세력이 주도하거나 선동하는 현재와 과거와 미래의 모든 악에서 해방시켜 주시기를 기도한다. 이 마지막 청원에서 교회는 세상의 모든 괴로움에 대하여 아버지께 호소한다. 인류를 짓누르는 악에서 구원해 주시기를 비는 교회는 평화의 귀중한 선물과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꿋꿋한 인내의 은총을 간청한다(가톨릭교회교리서 2854항).
오늘로써 가톨릭교회교리서 해설을 마칩니다. 그동안 열심히 읽어 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2014년 7월 27일 연중 제17주일 의정부주보 6-7면, 강신모 프란치스코 신부(선교사목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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