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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29: 성경의 관점에서 본 정치 공동체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4-09-09 조회수1,836 추천수0

[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29) 성경의 관점에서 본 정치 공동체

통치는 하느님 구원 계획 드러내는 행위



사제는 과연 정치 문제에 개입할 수 있는가?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사회적 사건과 그 사건들 속에 함께 하는 성직자, 수도자들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은 성직자나 수도자가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문제에 교회의 예언자적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교회는 교회의 일에만 충실하고 사회 문제에는 더는 관심을 두지 말라는 것이 공통된 주장이다. 과연 교회는 교회의 일에만 충실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교회와 사회를 이분법적으로 나누어서 생각한다면 그런 주장이 타당하고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하느님의 일과 인간의 일을 구분하는 것이 가능한지 묻고 싶다.


정치, 사회에서 인간의 모든 활동

정치를 어원적으로 살펴보면,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polis)라는 용어에서 비롯됐다. 당시 폴리스는 도시국가 공동체를 의미했고, 폴리스에서 비롯한 폴리틱스(politics)는 폴리스 안에서 행해졌던 어떤 특정한 활동을 지칭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정치학의 발전과 더불어 형성된 정치 개념은 근대 정치 사상가들에 의해 국가의 법률과 같은 것으로 이해되기도 했지만, 개인이 지니고 있는 정치 개념은 결코 일정한 것으로 이해되지 않았다.

현대 사회에서 정치 개념은 사전적인 의미로 볼 때, 국가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기 위해 벌이는 여러 가지 활동을 뜻하거나 통치자나 위정자가 국민을 위해 시행하는 여러 가지 일들을 의미한다. 이러한 개념적 정의에도 인간의 정치적인 삶에 대한 이해는 더 광범위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스턴(David Easton)에 따르면, 한 사회 안에서 권위적인 정책의 수립이나 그 집행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모든 종류의 활동을 정치적인 삶으로 정의한다. 따라서 오늘날 정치 개념은 그 공동체에 속해 있는 모든 구성원이 사회 문제에 참여해 정책을 형성하고 집행하는 모든 활동을 정치활동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리스도 가르침에서 나타난 진정한 통치자

정치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역시 성경에서부터 출발한다.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 민족의 독특한 정치관을 볼 수 있다. 우선 역사의 시초에서부터 이스라엘 민족은 다른 민족들과 달리 주님이신 하느님의 통치만을 인정해서 왕을 직접 세우지 않았다. 판관기에 따르면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판관들을 세움으로써 하느님의 직접적인 개입을 강조했다. 그러나 마지막 판관이며 예언자인 사무엘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의 첫 번째 왕을 세워줄 것을 요청한다(1사무 8,5. 10,18-19 참조).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제적인 왕권의 행사가 가져올 결과를 경고하고 있지만(1사무 8,11-18 참조) 이스라엘 백성은 왕을 세워줄 것을 고집한다. 결국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의 원의를 들어 주신다.

한편 이러한 왕의 권위는 이민족의 침략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도우러 오시는 하느님의 선물로 체험된다. 이러한 사건들은 이스라엘이 이웃 민족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왕권을 이해하게 된 이유를 설명한다.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선택하시고(신명 17,15; 1사무 9,16 참조), 주님께서 축성하시는(1사무 16,12-13 참조) 왕은 하느님의 아들로 여겨지며(시편 2,7 참조), 그의 통치는 하느님의 통치와 구원계획을 드러내는 것이 돼야 하는 것이다(시편 72 참조). 따라서 왕은 약한 이들의 수호자이며 백성을 위한 정의의 보증인이 되어야 한다. 이후 이스라엘 왕정 시대에 나타난 수많은 예언자의 비난은 바로 이러한 왕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왕들에게 집중되어 나타난다(1열왕 21장; 이사 10,1-4; 아모 2,6-8; 미카 3,1-4 참조).

역사적으로 왕의 통치가 실패할 때에도 주님께 충실하며 지혜롭게 다스리고 정의롭게 행동해야 하는 왕의 이상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러한 희망은 메시아적 신탁에 자주 반복돼 나타나며, 종말론적인 시기에 주님의 영을 받아 지혜가 충만하며, 가난한 이들에게 정의를 베풀 줄 아는 왕이 도래할 것을 기다리게 한다(이사 11,2-5; 예레 23,5-6 참조). 이스라엘 백성의 참된 목자인 이 왕은 만민에게 평화를 가져다주며(에제 9,9-10 참조), 정의로운 판단을 내리고 부정을 싫어하는 사람이며(잠언 16,12 참조), 가난한 이들을 공평하게 재판하는 사람이며(잠언 29,14 참조), 마음이 깨끗한 이들의 벗이 되는 사람이다(잠언 22,11 참조).

왕의 모습에 관한 구약성경의 이러한 예언은 나자렛 예수 안에서 성취됐으며 왕의 모습에 관한 예언의 결정적인 구현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포됐다. 예수께서는 백성의 통치자들이 휘두르는 압제와 전제의 권력을 거부하신다. 물론 은인으로 행세하려는 그들을 직접 거부하고 계시지만(루카 22,25-26 참조) 그 시대의 권위들에 직접 반대하시지는 않으셨다. 카이사르에게 바칠 세금을 부당하게 보지 않으시면서도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바쳐야 함을 단언하고 있다.

이러한 예수의 행동은 세속의 권력을 하느님의 권력과 같은 것으로 보려는 모든 시도의 암묵적인 단죄로 이해할 수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349항 참조). 예수께서는 정치적 메시아주의의 유혹에 맞서 싸우면서 가장 높은 사람은 가장 낮은 사람이 돼야 하며, 모든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돼야 함을 가르치시고 계신다.

예수의 가르침은 진정한 통치자의 모습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따라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역시 진정한 통치자의 모습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찾아야 한다. 오늘날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회 문제에 대해 교회가 예언자적인 소명을 다 해야 하는 근거 역시 이러한 예수의 모습에서 비롯된다고 말할 수 있다.

[평화신문, 2014년 9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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