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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38: 생태계의 수호자 성 프란치스코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4-11-22 조회수1,875 추천수0

[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38) 생태계의 수호자 성 프란치스코

명예를 좇던 청년에서 가난한 이들의 성자로



‘오 감미로워라. 가난한 내 맘에, 한없이 샘솟는 정결한 사랑’이란 가사로 시작되는 ‘태양의 찬가’는 신학생 시절 즐겨 부르던 복음 성가 중의 하나였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기도로 알려진 이 노래 가사는 모든 자연 생태계를 의인화하여, 태양을 형님으로 달을 누님으로 의인화한 아름다운 멜로디를 가지고 있었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에 대한 일대기를 읽고 나서 많은 감동을 받았던 나는 로마 유학 시절 자주 아시시를 방문하곤 했다. 공부로 심신이 지친 나에게 아시시는 모든 스트레스를 날려 버리는 안식처와 같은 곳이었다. 이탈리아의 여러 중세 도시들이 모두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지만, 내가 아시시를 특별히 좋아했던 이유가 있었다. 석양의 노을과 밀밭에 가득한 황금 물결, 그리고 기도와 노래….

동창 신부와 함께 방문한 아시시에서의 1박 2일의 피정은 지금도 나에게 특별한 경험으로 남아 있다. 아시시는 그야말로 성지 순례객들로 인해 낮에는 발 디딜 틈 없이 인산인해를 이루었었는데, 오후 5시만 되면 대부분의 사람이 성지를 떠나가고 한산한 도시로 변해 있었다. 한산해진 도시 안에서 동창 신부와 함께 도시 중심가를 산책하면서 로사리오 기도를 함께 바쳤다. 그리고 해 질 녘 도착했던 프란치스코 대성당에서 내려다보는 경관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순간, 한 동양인 신부가 호텔 창문을 열고 떨어지는 태양을 바라보며 로사리오 기도를 바치는 모습이 너무나도 인상적이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태양의 찬가’를 함께 부르며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피조물에 대해 감동의 기도를 올렸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해 다시 태어난 청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프란치스코 성인은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 주의 작은 도시 아시시에서 태어났다. 그는 유복하게 자랐고 당시 모든 젊은이가 꿈꾸던 기사가 되고 싶었다. 동네 친구와 몰려다니며 어린 시절을 방탕하게 보냈던 그는 이웃 도시 페루자와의 전쟁에 기사로 참전하게 되지만 그가 꿈꾸었던 기사의 생활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는 전쟁 포로가 돼 차디찬 페루자의 지하 감옥에서 1년여간의 수감 생활을 하게 된다. 끔찍한 감옥 생활로 겪은 것은 자신이 기사로서 전쟁에서 승리하여 사람들의 영웅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의 참화와 고통, 인간의 잔인성과 폭력성이었다.

그는 전쟁을 통해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최대한의 밑바닥 생활을 모두 경험했다. 얼마 후 부유했던 그의 부모 덕분에 보석금으로 풀려났지만 프란치스코는 이전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전쟁 후 집으로 돌아온 프란치스코는 전쟁 후유증으로 인해 병을 앓게 되고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새로운 삶으로 변화하는 특별한 체험을 하게 된다.

지금도 신학생 때 보았던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의 영화 속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장면은 프란치스코가 전쟁 후 집으로 돌아와 병중에서 깨어나던 장면이다. 창문 틈을 통해 들려오던 새소리에 프란치스코는 잠에서 깬다. 그리고 그 새소리를 따라 잠옷 차림으로 지붕 옥상을 맨발로 걸어나간다. 무엇이 그를 창밖으로 인도하였을까?

전쟁의 참화 속에서 고통받고, 병으로 죽을 고비를 넘긴 젊은 청년은 이제 과거의 삶에서 완전히 죽고 하느님을 체험하게 되는 중요한 순간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프란치스코는 전쟁의 고통 속에서 쓰러져 가는 인간의 허상을 보았고, 그 허상 위에 진정한 인간성을 다시 일으켜 세우며 가난한 사람들의 성자로 거듭나게 된다. 한동안 헛된 꿈을 좇아갔던 평범한 한 청년이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해 완전히 새롭게 변화된 것이다.

그는 모든걸 버리고 주님을 따라간다. 더 이상 아버지의 재산도, 인간적인 성공도 그의 삶에 중심이 되질 않는다. 그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변화됐고, 가장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다시 태어나는 변화된 삶을 살게 된 것이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이 전한 가치

우리가 그렇게 자랑스러워했던 현 교황님께서 첫 번째로 사용하신 이 거룩한 성인의 이름 속에서 우리는 교황님의 하느님 백성에 대한 진정한 사랑을 엿볼 수 있다. 지난 8월, 4박 5일의 여정 동안 우리가 직접 보고, 듣고, 느꼈던 교황님의 행보는 그야말로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의 여정과 다르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의 눈으로 직접 이 사회 안에서 고통받고 소외되는 우리 이웃들을 외면하지 않으셨던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직접 보았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에게, 밀양과 강정의 주민들에게, 쌍용 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에게,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교황님은 허황된 희망이 아니라 함께하는 삶이 무엇인지 진정한 희망의 모습을 보여 주셨다.

우리는 과연 지금 무엇을 희망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헛된 꿈과 망상을 찾아 살아가는 수많은 세상의 사람들에게 우리 신앙인들은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할까? 우리는 바로 세상의 그들에게 참된 희망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존재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삶이 바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이 우리에게 알려주신 소중한 가치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평화신문, 2013년 11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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