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리 아카데미]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원리’ 동의해도 실천은 제각각
작년 말 정치권에서는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The Devil is in the details)는 서양속담이 자주 인용되었습니다. 큰 틀에서는 합의했다 말하면서 세부 실천사항이나 해석에서 각자의 속셈과 숨은 생각을 드러내면서 더 큰 입장 차이를 만들어내는 정치권의 행태를 두고 한 이야기였습니다.
사회교리는 복음에 기초하여 인간존엄성의 원리, 공동선의 원리, 연대성의 원리, 보조성의 원리, 재화의 보편적 목적과 같은 주요 원리들을 갖고 있습니다. 이 원리 자체를 거부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디테일에, 실천 중에 악마의 유혹이 있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하느님을 닮은 모습으로 창조되어 존엄하다는 데에 동의하지 않을 가톨릭 신자는 없을 겁니다. 그러나 최근에 있었던 항공기 땅콩 회항문제, 아파트 경비원 폭행과 분신자살, 그에 따른 아파트 경비원 집단 해고와 같은 일들을 보면 과연 우리가 실천에서도 모두가 똑같이 존엄하다고 생각하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공동선은 우리 사회와 정책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키우는 방향으로, 그래서 하느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소명을 실천하도록 돕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보다 많은 사람, 특별히 소외된 이들이 하느님을 닮아 존엄하게 살도록 하는 정책보다는 자신의 이익과 욕심만 보장하는 정책을 따르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연대성은 공동선을 위해 투신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입니다. 이 세상의 죄를 용서하고 구원을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자신을 희생하신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의 어둠을 바로잡기 위해 그리스도와 연대하고 힘을 모으기보다는 어둠을 키우는 한이 있더라도, 나의 이익과 기득권을 지키려고 담합하기를 더 좋아합니다.
보조성은 인간의 자율성과 자발성, 주체성을 중요시하는 원리입니다. 쉽게 말하면 힘이 세고 잘 안다고 고기를 잡아주면 안 되고, 스스로 고기를 잡을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 가정에서 부모들이 아이들의 자율성과 자발성, 주체성을 중시하고 있는지 돌아보면 답답합니다. 국가가 각 지역의 고유성을 인정하고 그들이 주체적이고 자율적으로 공동체를 꾸려나가도록 지원해주고 있는지, 아니면 국익이라는 핑계로 소수 지역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지 돌아보면 암울합니다.
우리가 소유한 돈, 재산, 재능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인류를 위해 선물로 주어진 것이라는 말은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더 가진 사람들이 세금을 더 내도록 해야 하고, 그래서 평등한 분배를 실시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로 들어가면 우리는 어렵지 않게 악마를 만날 수 있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사목헌장 24항의 다음 문구를 작성하셨습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주지 않으면 자신을 완전히 발견할 수 없다.” 그저 혼자 성당에 앉아 기도하고 있으면 자신이 더없이 훌륭한 신자로 보이고, 하느님을 만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우리가 자신을 내어주기 위해서는 ‘너’가 있어야, 실천이라는 디테일이 있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배우자와 부모, 자녀에게, 각자가 속한 단체와 사회에서 이웃들에게’ 내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실천이라는 디테일에 들어가 볼 때라야 내가 진정 누구인지, 내 신앙의 온도가 어떤지 알 수 있습니다. 복음은 원리만이 아니라, 실천이라는 디테일을 복음의 빛과 기쁨으로 성찰하고 식별하도록 우리에게 요구합니다.
* 김성수 신부는 서울대교구 소속으로 2014년 서품을 받고, 현재 서울 고덕동본당에서 사목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5년 1월 25일, 김성수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