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고 힘나는 신앙 - 차동엽 신부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 해설]
(102) 성경 안에서 만나는 기도의 달인 (19) - 엑소더스의 주인공 : 오늘 우리
조상들에 베푼 은혜를 잊지 말라! 그 안에 내가 있다
■ 신명기의 ‘오늘’
여러 회에 걸쳐서 모세 시대 이집트 탈출의 주역들을 클로즈업해 봤다. 그 마지막 주역은 오늘 우리다. 이는 신명기의 심오한 의중이다.
신명기는 아주 독특한 시제를 구사하면서, 이 시대의 독자를 3,200년 전 역사의 한 복판으로 초대한다.
“주님께서는 이 계약을 우리 조상들과 맺으신 것이 아니라, 오늘 여기에 살아 있는 우리 모두와 맺으신 것이다”(신명 5,3).
여기서 ‘오늘’은 과거의 오늘, 현재의 오늘, 또한 미래의 오늘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말씀은 모세가 하느님과 맺은 시나이 산에서의 계약이 형식상으로는 ‘우리 조상들’하고 맺은 계약이지만, 실제로는 ‘오늘 여기 살아 있는 우리’, 나아가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의 사람’ 모두에게 유효한 계약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결국, 저 말씀 속 ‘우리 조상’들은 인류의 대표인 셈이며, 그러기에 ‘오늘 우리’가 엑소더스(=이집트 탈출) 행렬의 궁극적 주인공이라는 얘기다.
이런 귀결은 모세오경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성경 전체가 과거 기록될 당시의 사람들과 모든 시대(곧 현재와 미래)의 ‘오늘 우리’를 아울러 겨냥하는 3중시제의 말씀인 것이다. 이 얼마나 은혜로운가!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의 영성을 살 일이다.
오늘이다.
창조주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으시는 날,
야훼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이집트 죽음의 질곡에서 구출하시는 날,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불모의 땅 광야길 동행하시는 날,
“주님의 말씀 밤낮으로 묵상하는 이,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시편 1,2-3 참조)시며
인생살이 지혜의 말씀 내려주시는 날,
오늘이다.
오늘이다.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께서
바야흐로 ‘나의’ 하느님이 되어 주시는 날,
내 꼬락서니 보시고, 내 ‘죽는 소리’ 모조리 들으시고, 내 창자 꿰뚫어 아시는 날,
그리하여 내 원을 풀어주시는 날,
예수님 쇼킹 복음 가난한 이에게 들리고, 묶인 이 자유를 얻고, 잡혀간 이 해방되고, 눈먼 이 눈뜨게 되는 날(루카 4,18 참조),
오늘이다.
■ 오늘 우리의 감사
방금의 진술을 가장 극적으로 뒷받침해주고 있는 성경 대목이 신명기 26장이다. 본디 추수감사절 때 소출의 맏배 및 맏곡식들과 함께 바치는 신앙고백문인데, 그 핵심본문을 보자.
“저희 조상은 떠돌아다니는 아람인이었습니다. 그는 몇 안 되는 사람들과 이집트로 내려가 이방인으로 살다가, 거기에서 크고 강하고 수가 많은 민족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집트인들이 저희를 학대하고 괴롭히며 저희에게 심한 노역을 시켰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주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께 부르짖자,… 주님께서는 강한 손과 뻗은 팔로, 큰 공포와 표징과 기적으로 저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그리고 저희를 이곳으로 데리고 오시어 저희에게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습니다. 주님, 그래서 이제 저희가 주님께서 저희에게 주신 땅에서 거둔 수확의 맏물을 가져왔습니다”(신명 26,5-10).
내용 전개가 무척 재미있다. 처음에 “저희 조상은 아람인이었습니다”로 시작한다. 여기서 ‘아람인’은 단수다. 하지만 바로 다음에서 “이집트에서 강대한 민족이 되었습니다”라고 고백한다. 단수 ‘아람인’이 어느새 ‘민족’이 되어 복수로 바뀐 것이다. 이후 이집트 탈출 이야기가 이어진다. 마지막에는 하느님께서 강한 손으로 이끌어 탈출시켜주셨다고 고백한다. 주목할 것은 여기서 오늘의 ‘저희’가 과거 조상들이 겪은 사건의 주인공들과 동일시되어 주어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다.
바로 여기에 묵상거리가 있다. 탈출 체험을 한 것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받은 것도 그 실제적 주인공은 엄연히 조상들이다. 하지만 그 이후 몇 백 년, 몇 천 년이 흐른 후에도, 그 신앙유산을 대물림 받은 후손들은 “저희가 받았다!”라고 고백한다. 이것이 바로 역사의식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 고백을 통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는 셈이다.
“잊지 말라. 주님께서 과거의 조상들에게 어떤 은혜를 베풀어 줬는지 잊지 말라. 그 안에 내가 있다. 그것이 나에게 준 것이다.”
그러니 그분께 이렇게 아뢰는 것이다.
“지금 가져온 이 소출은 제가 뼈 빠지게 일해서, 땀 흘려서 얻은 것이 아닙니다. 다 주님이 주신 것을 소작했을 따름입니다. 저는 소작인이고 주님은 주인이십니다.”
또 하나, 첫 부분에 우리가 깊이 마음에 새겨둘 필요가 있는 지혜가 번득인다.
“저희 조상은 떠돌아다니는 아람인이었습니다”(신명 26,5).
이 말은 곧 “우리 조상은 떨거지였어요”라고 하는 것과 같다. 사실 믿음 없는 사람들은 자수성가하거나 대업을 이룬 후에 조상들을 미화하고자 한다. 하지만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있었던 그대로 자신의 뿌리를 ‘커밍아웃’시킨다. 그리하여, “우리 조상은 부족한 조상이고 나는 혈통도 딱히 안 좋고 다 별별일 없는데, 하느님 은총으로 이렇게 풍요롭게 받았다”라고 고백할 때, 이것이 참 신앙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국 가톨릭교회가 누렸던 하느님의 특별한 축복에 대하여 이런 고백을 해야 마땅하지 않을까.
저희 조상은 극동의 땅끝 나라 바다촌 사람들이었습니다.
비단길 말단에서도 동으로 동으로 계속 걸어야 닿는 곳,
거기 산다던 전설의 동이(東夷)족 후예였습니다.
하오나 천주님께서는 장구한 침묵을 손수 깨시고,
저희 영적 까막눈들에게 당신 자비를 뻗치시어,
오묘한 방법으로 기쁜 소식의 전갈을 보내오셨습니다.
서학의 동진(東進)이 북경에서 멈추자,
천주님께서는 북서풍에 실어 풍문을 날려 보내주셨습니다.
이윽고 천주님께서는 강력한 성령의 바람을 휘몰아 내리시어,
저희, 이 땅의 젊은 가슴들로 하여금
타는 목마름과 열화 같은 우러름으로
진리와 천주를 숭모하게 하셨습니다.
나아가 유별난 성총을 저희에게 부으시어,
저희를 주님 자녀로 삼으시고
저희 가운데 하느님 백성의 수를 늘려가셨습니다.
박해의 모진 시련이 닥치자,
당신 두 팔로 저희를 굳건히 붙드시며
피로써 당당히 신앙을 증거하게 해 주시고,
숱한 목자들을 몸소 파견해 주시어
목숨 바쳐 저희를 돌보게 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온갖 간난(艱難)과 도전을 견뎌내게 해 주시고,
오만가지 이단잡설을 물리쳐주시면서,
저희를 눈동자처럼 동행해 주셨습니다.
한중일 동아시아 3국 가운데 가장 늦게 복음을 접한 꼴찌 인연이었지만.
오늘 서울의 중심 명동에 성당 첨탑 우뚝 세우시어,
‘동방의 횃불’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103위 성인과 124위 복자를 모시는
자랑스런 신앙 강대국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그런즉 야훼여, 여기 올해 구령농사의 첫 소출, 맏물을 가져왔습니다.
2015년 추수철에 우리가 봉헌할 첫 소출은 무엇일까?
* 차동엽 신부는 오스트리아 빈대학교에서 성서신학 석사, 사목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및 미래사목연구소 소장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5년 1월 25일, 차동엽 신부(미래사목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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