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리 아카데미] 아이를 낳자고?
결혼 · 출산 꿈도 못 꾸는 ‘젊은이’
한 방송사의 ‘연애만 8년째, 결혼할 수 있을까?’라는 프로그램을 보았습니다. 본당에서 만나는 주일학교 교사, 청년들과도 나누던 이야기였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절박한 상황에서 살아가는가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잘 모르는 어른들은 ‘한국전쟁 후에는 더 힘들었다’, ‘70~80년대에는 더 허리띠를 졸라맸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요즘 젊은이(젊은것)들은…’이라며 말끝을 흐립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매일 외식을 하고, 커피를 사서 마시고, 아끼는 일이라고는 할 줄 모르는 젊은이들이 아닙니다. 비정규 일자리로는 한 달에 120만원 벌기도 벅찹니다. 거기서 1/3에 가까운 월급은 월세로 내고, 통신비와 식비, 각종 공과금을 제외하면 남는 것도 없는데, 거기서 대출받은 학자금을 갚고 결혼할 나이가 됩니다. 빚을 갚기 위해 태어났는지 결혼하려면 또 엄청난 빚을 져야 합니다.
결혼하는데 들어가는 평균 비용이 남성 약 8000만 원, 여성 약 2900만 원이라고 합니다. 오랜 기간 연애를 하면서도 학자금 대출을 갚느라 자신들을 위해서는 돈을 써보지도 못했는데, 결혼을 하려면 다시 빚을 지고 시작해야 합니다. 사회 안전망이라도 충분히 확보되어 있다면, 그래서 일자리라도 안정적이라면 빚을 지고서라도 젊은 패기로 시작해보리라 주먹을 불끈 쥘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비율은 20%도 되지 않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아이 하나를 출산해서 대학졸업까지 시키는데 들어가는 평균 약 3억 원의 비용을 감당하라고, 결혼과 출산, 육아를 향해 도전하라고 누가 젊은이들에게 강요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최근 경제부총리의 경제 활성화 방안에 대해 대학생들이 대자보를 붙이고, 이 답안지는 F학점이라 비판합니다. 대자보에서 ‘우리는 순순히 아이를 낳아주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청년들이 철없고 이기적이라고 누가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가정은 사회의 가장 기본 단위입니다. 가정이 파괴된다면 사회는 있을 수 없습니다. 가톨릭 사회교리는 가정이 사회와 국가를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국가가 가정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는 보조성의 원리와도 일치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가정을 파괴하고, 인간을 새로운 형태의 노예로 전락시키는 자본주의의 폐해를 계속해서 지적하고 계십니다.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로 이루어진 가정이라는 첫 공동체를 축복하시면서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라고(창세 1,28 참조) 말씀하십니다. 오늘날의 사회 구조에서는 가정 자체를 이루기가 힘듭니다. 신자들의 가정에서도 자녀를 신앙 안에서 양육하기가 어려운 구조입니다. 교회의 성윤리가 신자들, 특별히 젊은이들의 가슴에 가 닿지 않는 것도 이런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어느 정도의 원인이 있습니다.
가정을 향한 하느님의 명령과 축복에 반하는 사회의 구조는 인간에게 저주가 됩니다. 인간을 저주와 악에서 구원하고 하느님의 축복과 생명으로 이끄는 일은 예수님께서 하시던 일, 교회에 맡겨진 사명입니다. 그 교회는 다른 누가 아니라, 바로 ‘나’, 바로 ‘우리’입니다. 오늘날 젊은이들의 절망과 가정의 위기는 바로 우리가 나서서 해결해야 할 문제, 하느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사명입니다.
* 김성수 신부는 서울대교구 소속으로 현재 고덕동본당에서 사목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5년 2월 8일, 김성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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