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信經)으로 풀어보는 교리] 창조주이신 하느님
“전능하신 천주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를 믿나이다”
오늘날 신경의 의미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삶을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내어 맡긴 사람들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한 마디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고 주는 가르침이라 할 것인데요, 그 가르침 중에서도 그야말로 중요하고 표준적인 가르침을 담고 있는 것이 바로 신경입니다. 교회는 신앙을 가지고 “신경을 외우는 것은 성부, 성자, 성령과 일치를 이루는 것이며, 우리에게 신앙을 전해 주고 그 품 안에서 우리가 믿는 온 교회와 일치를 이루는 것이기도 하다.”(가톨릭교회교리서, 197항) 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경으로써 신앙을 고백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고백하는 것이고, 그것은 곧 우리 신앙의 내용에 대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표현인 것입니다. 암브로시오 성인의 말씀대로 신경은 “영적인 인장이고, 우리 마음의 묵상이며, 늘 현존하는 보호이고, 우리 영혼의 보물임이 확실”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생명을 약속하고 또 생명을 줄 수 있는 이러한 신경을 기쁘게 받아들여야 하겠습니다. 특히 매번의 로사리오기도를 사도신경으로 시작하는 레지오 단원들은 신경을 외우는 것 자체가 훌륭하고 완벽한 기도라고 생각하고 바치면 좋겠습니다.
말씀에 의한 창조
사도신경에서 바치는 첫 신앙고백은 ‘창조주이신 하느님’께 대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이시니 그분을 전능하시다고 하고, 또 하느님께서 전능하신 분이시기에 당연히 세상을 창조하실 수 있는 분이시라 고백합니다.
하느님을 창조주로 잘 묘사하고 있는 성경이 ‘창세기’입니다. 그런데 창세기는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되 ‘당신의 말씀으로’ 하셨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이미 있던 어떠한 재료를 사용함이 없이,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던 상태에서 세상을 만드셨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본문은 창조를 뜻하는 동사부터 특별한 동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즉 하느님의 창조를 나타낼 때에 (하느님께서 직접 주체가 되어서 세상을 있게 하셨음을 드러내기 위해) 피조물인 우리 사람이 일하고 무엇을 만드는 것을 뜻하는 동사들(abad, asah)과는 전혀 다른 동사(bara)를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조의 이유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 질문에 대해 우리는 어떤 답을 할 수 있을까요?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무엇이 부족하셔서 세상을 창조하셨을까요? 아니면 하느님께 세상을 창조하지 않으면 안 될 무슨 필연적인 이유라도 있었을까요? 혹은 유출설(流出說)의 주장대로, 선하신 하느님에게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와 이루어진 것이 창조일까요? 하느님께서 사랑이 충만한 분이시기에, 당신의 사랑을 나누어 주기 위해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답 이외에, 어떤 답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요? 그야말로 하느님의 자유로운 사랑에서 이루어진 것이 창조요, 하느님께서 당신의 크신 사랑을 드러내시는 것이 창조가 아니겠습니까?
덧붙여, 하느님께서 세상과 함께 이성과 자유의지를 지닌 인간을 창조하신 이유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사랑을 인간과 함께 나누기 위해서가 아닐까요? 하느님께서 인간을 인격을 갖춘 존재로 창조하신 것은 하느님께서 그 인간을 당신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파트너의 존재로 창조하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창조주이신 하느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우리는 우리를 창조하신 하느님의 충만한 사랑에 대해서 응답을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창조의 의미
창조의 이유에서 보았듯이 창조는 하느님 사랑의 실천이자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것이 바로 창조이고,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것이 바로 창조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조로 드러난 것은 하느님께서 참으로 사랑이 충만하신 분이시라는 사실입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는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는 말로 시작하는 창세기의 말씀이 다음 세 가지의 사실을 말하고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290항) 첫째, 영원하신 하느님께서는 당신 이외의 모든 것을 비로소 존재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곧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존재하게 해주셨기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하느님 홀로 창조주이시다는 것입니다. 곧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은 오직 우리가 믿는 그 하느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셋째, 존재하는 것 전체는 그것들에게 존재를 주시는 하느님께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곧 모든 존재는 자신들을 존재하게 하시는 하느님 덕분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창조는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한편, 제1차 바티칸공의회 교의헌장은 “세상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영광을 더하기 위해서 세상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당신의 영광을 피조물, 특히 인간과 나누시기 위해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뜻입니다. 즉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모두 옳은 일이고 당신께 영광이 되는 일일 터이니, 세상을 창조하신 일도 결국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에 의하면 “세상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되었다”는 것은 성경과 성전이 끊임없이 가르치고 찬미하는 진리입니다.(293항) 이를테면, 보나벤투라 성인께서는 “하느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것은 당신의 영광을 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영광을 드러내고 나누시기 위해서”라 하셨고, 토마스 데 아퀴노 성인께서는 “사랑의 열쇠가 만물을 창조할 손을 열었다” 하신 것이지요. 결국 하느님께는 당신의 사랑과 선하심 이외에 창조를 위한 다른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행복을 더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당신의 완전을 획득하기 위해서도 아니라, 당신의 창조물들에게 부여하신 선을 통하여 당신의 완전함을 드러내시기 위하여, 가장 자유로운 계획안에서, 모든 것을 한 번에, 한 처음에, 유형무형의 피조물 하나하나를 무에서 창조하셨다”고 가르칩니다.(DS 3002)
결국 하느님의 선하심을 드러내고 나누시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영광이므로, 세상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된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창조의 궁극적 목적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고 동시에 우리 인간의 행복을 돌보시는 것”이라 하겠습니다.(선교교령 2, 가톨릭교회교리서 294항)
창조주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고백할 때마다 우리를 내신 하느님의 크신 사랑에 감사하고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면서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새롭게 다짐해야 하겠습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5년 2월호, 조현권 스테파노 신부(대구대교구 계산주교좌성당 주임, CBCK 교리교육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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