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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경으로 풀어보는 교리: 그리스도의 이름과 칭호, 그리고 강생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04-08 조회수2,516 추천수0

[신경으로 풀어보는 교리] 그리스도의 이름과 칭호, 그리고 강생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을 저는 믿나이다.”



‘예수'란 이름의 뜻

주님 탄생 예고 때에 천사 가브리엘이 명한 ‘예수’라는 이름은 히브리말로 ‘야훼, 곧 하느님이 구원하신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이 이름은 우리나라의 ‘철수’처럼 당시 흔한 이름이기도 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신원과 사명을 동시에 나타내는 뜻깊은 이름이기도 합니다. 즉 예수님은 그 이름대로 하느님의 아들로서 하느님과 같은 분이시고, 그분이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주시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성령으로 가득 차 온 이스라엘 사람들은 들어야 한다고 하면서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집 짓는 자들에게 버림을 받았지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분’이십니다. 그분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름 가운데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이 이름밖에 없습니다.”(사도 4,11-12)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바칠 때마다 참으로 그분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를 청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란 이름의 뜻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마태 1,16)고 했습니다. 신약성경은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아가 바로 다윗가문에서 나신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리스도’란 이름은 히브리말 ‘메시아’를 그리스 말로 번역한 표현한 것으로서, ‘기름부음 받은 이’를 뜻합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에서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사명을 위해 봉헌된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이름으로 기름을 부었습니다. 즉 구약의 중요한 3가지 유형의 인물들인 왕, 사제들, (가끔은) 예언자들이 하느님의 이름으로 기름을 받아 축성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당신의 나라를 결정적으로 세우시기 위해 파견하시는 분이 메시아시니, 메시아 그분은 왕과 사제들과 예언자들보다 더 중요한 분이시며, 보통의 기름이 아니라 주님의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으신 분이라는 게 구약성경(특히 이사야서)의 가르침인 것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이란 칭호

구약성경에서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는 천사를 부르던 칭호이기도 했고, 선택된 백성과 (하느님께 입양된 관계로서의) 이스라엘의 자녀, 그리고 그들의 왕들을 부르던 칭호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시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베드로가 맨 먼저 고백한,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는 이 신앙은 사도 신앙의 중심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세례 때와 변모 때에 성부께서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부르셨고,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하느님의 외아들’이라고 하시면서 이 칭호를 통해서 당신께서 영원으로부터 계시는 분임을 확언하셨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파스카의 신비를 통해, 즉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그분이 참으로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주님’이라는 칭호

‘야훼’라는 이름은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계시하신 이름입니다. 그런데 이 야훼라는 이름은 존귀하신 하느님의 존귀하신 이름이었기에, 함부로 불러서는 안 되는 이름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 말 역 구약성경은 야훼를 퀴리오스(Kyrios), 곧 ‘주님’으로 번역하였고, 오늘날 우리 천주교에서 사용하는 성경에서도 그러합니다. 신약성경은 성부를 지칭할 때 이 주님이라는 이름을 사용할 뿐 아니라, 동시에 예수님께도 똑같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고백하는 대표적인 이름이 ‘주님’이라고 하겠습니다.

복음에 보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걸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 다가가서 도움과 치유를 받고자 하는 사람들이 존경과 신뢰를 나타내었던 칭호가 ‘주님’이란 표현이었던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뵈옵고 토마스는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라고 고백하였는데, 이는 단순한 칭호를 넘어 일종의 흠숭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것은 그분을 하느님으로 섬긴다는 것을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님’이란 칭호는 ‘주인’(主人)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부르고 또 고백한다는 것은, 우리 자신의 자유를 그 어떤 세력과 권위에도 종속되게 하지 않고, 오직 그분께만 종속되게 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즉 더 이상 세상의 카이사르가 아니라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우리의 하느님으로 섬기겠다는 말이지요. 우리 그리스도교 기도의 특징은 이 주님이라는 칭호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라는 말로 신자들을 기도에 초대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라는 말로 그 기도를 끝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강생’(降生)

“하느님의 아들이 우리 인간의 본성을 취하셔서 참으로 강생하셨다.”는 신앙은 우리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적인 특성으로서, ‘강생’이란 말은 하느님의 아들이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신 것을 나타내는 말이고, 그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 하느님이시고 참사람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성자께서 사람이 되신 것입니까? 가톨릭교회교리서는 이렇게 가르칩니다.

첫째, 성자께서는 우리를 하느님과 화해시켜 구원하시고자 사람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구원자로 오신 분이시고, 이 세상의 죄를 없애시려고 오신 분이신 것입니다.

둘째, 성자께서는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시려고 사람이 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당신의 아들을 보내신 것입니다.

셋째, 성자께서는 우리에게 거룩함의 모범이 되시려고 사람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하셨고, 자신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소개하시면서, 당신을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하느님 아버지께 갈 수 없다고 하셨으며,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하시며 사랑의 계명을 새로운 계명으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넷째, 성자께서는 우리를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 하시려고 사람이 되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하느님과 같이 된다는 것이고, 또한 인간이 하느님과 친교를 맺고,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우리가 하느님처럼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 아타나시오는 “그분은 우리를 하느님이 되게 하시려고 인간이 되셨다.” 하셨고, 성 토마스 데 아퀴노는 “하느님의 외아들은 당신 신성에 우리를 참여시키시려고 우리의 인성을 취하셨으며, 인간을 신으로 만들기 위하여 인간이 되셨다.” 하신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시기에, 나를 구원하시려고, 나와 같은 사람이 되어 오신 주 그리스도님을 찬미하며, 그 사랑에 맞갖은 응답을 드리는 성모님의 군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5년 4월호, 조현권 스테파노 신부(대구대교구 계산주교좌성당 주임, CBCK 교리교육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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