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리 아카데미] 연대와 공생 하나되어 화합해야 할 오늘날 신앙인 오늘은 성령 강림 대축일입니다. 사도행전은 하느님의 가르침을 듣고, 날마다 성체성사를 거행하면서 서로 가진 것을 나누고, 다른 민족들에게 모범이 되었던 첫 신자 공동체의 생활을 우리에게 들려줍니다.(사도 2,42-27 참조) 오는 5월 29일은 한국교회가 처음으로 맞이하는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 순교자 기념일입니다. 우리는 교황님과 함께했던 지난 시복미사의 감동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순교자들의 삶을, 그들이 살았던 신앙을 본받아 실천하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전 세계에 유래가 없는, 선교사 없이 스스로 복음의 씨앗을 싹틔운 교회입니다. 그 계기는 조국과 사회에 대한 걱정이었습니다. 당시 혼란스러운 조선사회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고민하던 조선의 지식인들은 서학이라고 불리는 천주학, 천주교 교리에서 그 답을 찾았습니다. 신앙과 복음에서 무엇이 국가와 사회가 나아가야 할 길인지를 찾은 것입니다. 성령 강림 때 초대교회 신자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선조들도 가진 것을 서로 나눴습니다. 기회가 허락하는 대로 모여서 성경을 읽고, 사제를 만나 고해성사와 미사에 참례하기를 애타게 바랐습니다. 양반과 평민, 천민의 구분 없이 참 형제요, 자매로 지냈습니다. 124위 복자 중 황일광 시몬 복자는 천민 출신이었습니다. 그가 처음 신자들의 모임에 갔을 때 당대의 석학이었던 양반들이 그의 옷소매를 끌어서 마루 위로 올라오라고 했습니다. 천민은 감히 양반들과 같은 자리에 오를 수 없던 시대였기 때문에 황일광 시몬은 어리둥절했습니다. 후에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너무나 점잖게 대해주니 천당은 이 세상에 하나가 있고 후세에 또 하나가 있음이 분명합니다.” 천주교회는 이 땅에 들어올 때부터 조상제사라는 사회의 가장 중요한 이념과 충돌했고,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제도였던 신분제도와 충돌했습니다. 왕족에서부터 양반, 평민, 천민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교우들은 하느님 나라를 이 땅에 건설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사제들은 교우들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고, 교우들은 사제를 대신해 잡혀갔던 선조들이었습니다. 한 마음 한 몸이 되어 성령께서 이루시는 일치 안에서, 한 분 아버지 하느님이 계시고, 한 분 스승 예수 그리스도가 계심을 삶으로 살아낸 선조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진보라는 이름으로 형제 자매를, 심지어 주교까지도 신앙인도 아니라고 비난하는 수도자와 신자들, 보수라는 이름으로 형제 자매는 물론이고 주교와 사제까지 반미, 종북이라며 매도하는 이들로 갈라져 있습니다. 사제들과 신자들 중에는 아직도 하느님의 나라와 이 세상의 나라를 분리시키려 하고, 이 세상의 가치와 이념, 나라를 하느님의 나라와 복음 위에 두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경제적인 신분의 차이가 신자들 서로를 참 형제 자매로 부르지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오늘날 신자들은 교회 안에서도 천국을 미리 맛보지 못합니다. 초대교회 신자들과 이 땅의 순교자들은 신앙이 저 세상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 사회, 우리나라의 부조리를 복음으로 밝히는 일임을 보여줍니다. 나아가 우리가 진정으로 신앙인으로서 사회교리를 배우고 실천하고자 한다면 우리 안에는 성령께서 주시는 일치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 김성수 신부는 서울대교구 소속으로 현재 고덕동본당에서 사목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5년 5월 24일, 김성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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