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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회교리 아카데미: 민족 화해와 일치를 위해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06-22 조회수2,017 추천수0

[사회교리 아카데미] 민족 화해와 일치를 위해

“평화가 너희와 함께!”(루카 24,36)



한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면 이름을 짓습니다. 이 아이가 이렇게 자랐으면 좋겠다하는 바람을 담아 이름을 짓고, 아이의 앞날을 위해 기도합니다. 이름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고, 이름을 어떻게 부르는가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나라에도 이름이 있습니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부르는 게 맞습니까? 아니면 남한과 북한으로 부르는 게 맞습니까? 아니면 북괴라던가 미국의 식민지라고 불러야 합니까?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부른다면 이 둘을 독립된 정부로 인정하고, 고유한 통치이념을 가진 국가로 인정하는 것일 겁니다. 이러한 인정이 있을 때라야 서로 대화를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남한과 북한으로 부른다면 이 둘이 하나였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가 분단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다시 하나가 되려고 한다는 사실도 말해줍니다. 이러한 생각을 해야 우리가 서로 다시 하나 되려는 노력을 할 수 있습니다. 북괴라던가 미국의 앞잡이라던가 하는 이름도 있습니다. 이 표현은 서로를 적으로 대하고, 인정하지 않겠다는 생각, 한쪽은 사라져야 한다는 생각이 담겨있습니다. 이런 이름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시작할 수가 없습니다.

신학생 때에 저와 동기들은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새터민 청소년 공동체를 알게 되어 새터민 아이들의 검정고시 공부를 도와주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가 이 아이들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했을까요? 새터민이라고 부를 수도 있고 탈북자라고 부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그 아이들에게는 아이들 자신의 이름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 이름으로 그 아이들을 불러주는 것, 그 아이들을 그 자체로 인정하고 사랑하기로 결심하는 것에서부터 모든 일은 시작될 수 있었습니다. 그 학생이 북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무슨 일을 겪었는지, 무엇이 되고 싶은지 아는 것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그 아이에게 어떤 딱지를 붙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참으로 하나가 되기 위해서,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서 시작할 때라야 의미가 있습니다.

민족화해와 일치를 위한 날을 정하고 기도한다고 해서 잘못된 이념을 인정하자거나, 아파하는 이들의 아픔을 덮자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 공산주의의 유물론은 가톨릭신앙과 양립하기 어렵습니다. 이미 공산주의라고조차 말할 수 없이 세습화된 북한의 정권이나 과거 그들이 한 잘못은 분명 비난 받아야 하고, 변화되어야 합니다. 전쟁의 아픈 기억은 분명 모두가 잊지 말고 되새겨야 하는 역사의 교훈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이러한 모든 이름 붙이기는 상대를 이해하고 인정하기 위해서, 일치를 위해서가 아니라면 우리에게 평화를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민족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을 맞아, 6월 25일 한국전쟁을 기억하는 날이 있는 주간을 보내면서, 하느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누릴 수 있도록 우리 신앙인들이 앞장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평화는 단순히 전쟁의 부재가 아니며, 적대 세력 간의 균형 유지로 격하될 수도 없다.”(제2차 바티칸 공의회, 「사목헌장」, 78항.) “그보다 평화는 인간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하며, 정의와 사랑에 기초한 질서의 확립을 요구한다.”(「간추린 사회교리」, 494항.)

* 김성수 신부는 서울대교구 소속으로 현재 고덕동본당에서 사목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5년 6월 21일, 김성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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