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미사’에 대한 설명
2015-0508/0529. 금요일. 이태원성당
1. 제가 여러분과 몇 번째 만나는 시간이 됐습니다. 여러분과 만나면서, 제가 시작할 때부터 마칠 때까지 무슨 내용을 어떻게 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다 세운 다음에 이 시간을 시작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세운 ‘무계획한 오늘’은 여러분에게 신앙인으로 생활을 시작하게 되면, ‘항상 참여해야 한다고 말하는 미사’에 대한 내용을 말씀드리는 것이 순서일 듯합니다. 나중에 반복해서 한 번 더 듣게 되면, 그때는 미리 들었던 것이니 기본지식이 생길 테고, 그때는 더 낫게 대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나중에 맞이하면 될 일이고, 오늘은 미사에 대한 얘기를 말씀드리는 시간으로 사용하겠습니다.
2. 미사는 짧게 말하면,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제사(祭祀)입니다. 우리말 사전에서 설명하는 ‘제사’라는 낱말의 의미가 이 시간에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 ‘미사’라는 말의 뜻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우리말을 쓰는 사람들이니, 우리말에 설명하는 ‘제사’라는 말의 뜻을 사용해서 ‘미사’라는 표현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말 사전은 ‘제사’를 ‘신령(神靈)이나 죽은 사람의 넋에게 음식을 바쳐 정성을 나타내거나 또는 그 의식’이라고 해설합니다. 우리말의 낱말풀이를 말씀드리기 전에, 그 표현이 미사를 설명하는 의미에는 일치하지 않는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사실은 번역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현상입니다.
3. 그 나라에서 사용하는 낱말의 설명은 그 나라와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시각(視覺)을 담는 것이기 때문에, 신앙을 중심으로 보려는 입장에서는 세상의 삶을 설명하는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 신앙에서 미사를 제사라고 말할 때, 그 말의 의미는 ‘사람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실천할 방법을 찾으며, 실천하면서 살아갈 힘을 주시라고 예물을 바치고, 그 예절에서 사용한 제물을 나누어 받아먹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 내가 행동한 일의 의미에 맞춰 사는 것’을 가리킵니다. 여러분이 성당에 와서 함께 참여하는 ‘미사를 제사’라고 했습니다만 이 미사에는 동양사상을 통해서 여러분이 이미 알고 있을 법한 의미나 우리말 사전에서 설명하는 ‘죽은 이와 관련된 내용’은 없다고 알아들으셔야 합니다(!).
4. 우리말로 된 ‘미사’라는 표현에 일치하는 한자는 없습니다. ‘미사’라고 발음하는 한자(漢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그리스도교회공동체에 설명하고 싶어 하는 의미를 담은 한자는 없다’는 것입니다. 한때, 이 미사라는 글자에 해당하는 한자를 ‘아름다운 일[美事]’이라고도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만, 그 뜻은 ‘미사’에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말로 표현한 ‘미사’라는 글자는 그저 소리를 빌려온 것이고, 뜻 없는 말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5. 그런 의미에서 한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이 말의 본래 뜻은, 우리가 함께 하는 예절을 통하여 알아듣고 다짐한 하느님의 뜻을 세상에 나가 실천하도록 우리를 파견한다는 권고하는 의미를 담은 움직씨(=동사,動詞)입니다. 이때 미사라는 말의 표현은 ‘성체성사라고도 하는 예절의 가장 마지막 직전’에 하는 경문의 라틴어표현인 ‘이떼 미사 에스트’(=ITE MISSA EST)라는 말에서 한 부분을 잘라낸 말입니다. 이렇게 사용하는 라틴말의 의미는 ‘너희는 파견되었다’는 피동형의 뜻을 갖습니다. 무엇을 위한 파견(派遣)이겠습니까? 당연히 실천을 위한 파견이겠지요? 다시 말해서, 파견된 사람이 올바른 의미에 맞춰 삶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파견한 자의 의도는 실현되지 않는 것이라는 뜻도 담게 될 것입니다.
6. 여러분이 성당에 몇 차례 오셨고, 미사를 마치는 일을 보면서, 여러분보다 먼저 신앙인이 된 사람들이 하나같이 일정한 시간에 모여서 규정에 따른 일정한 행동을 하고, 그 시간을 마치면, ‘우르르~~’하고 그들이 잠시나마 머물던 공간을 빠져나가는 일을 보셨을 것입니다. 이 표현이 ‘신자들의 행동을 잘못 표현한 것’이라면 문제가 있겠지만, 그렇게 하는 것을 가리켜 ‘미사’라고 하기도 하고, 미사의 한 부분이라고도 합니다. 그 사람들이 모여서 한 일의 의미는 앞서 말씀드린 내용대로입니다.
7. 그 미사는 내용단위를 묶는 입장에 따라 여섯 부분으로 나눕니다. 여섯이라고 하는 숫자에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정한 시간동안에 하는 미사를 각 부분의 성격에 따라서 나누자면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각 부분의 이름을 먼저 말씀드리면, ‘시작예식, 말씀전례, 성찬전례, 감사기도, 영성체예식, 마침예식’입니다. 이렇게 여섯 개로 나누어진 각각 부분을 한번 하는 설명이 여러분에게 얼마나 피부에 닿을 말한 것이 될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간단한 설명이라도 필요할 것입니다.
8. <<시작예식>>은 공동체로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제사를 드리기에 합당한 준비를 하는 부분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이 <<시작예식>>이라고 묶인 부분에는 신앙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 예절을 집전(執典)하는 사제(司祭)가 ‘입장’하는 부분도 있고, 공동체를 향하여 하는 사제가 인사하는 부분과 공동체가 응답하는 말로 돼 있는 ‘인사’부분도 있습니다. 그렇게 인사를 통해서 준비를 하고 난 다음에는 지내온 내 삶을 반성하고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는 ‘자비송’을 바치는 시간, 대부분은 주일에 노래로 하거나 규정에 맞추어 소리로 봉헌하는 하느님의 영광을 노래하는 ‘대영광송’을 봉헌하는 시간이 있고, 그리고 그 시간을 맞이하는 공동체를 위한 기도의 시간인 ‘본기도’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9. 시작예식에 나오는 내용들 가운데서, 어떤 부분이 더 중요하고, 어떤 부분이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도 좋은지 그것을 나눌 방법은 없습니다. 전부 다 중요하고, 전부 다 나름대로 중요한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시작이나 권고하는 부분도 없이 내 삶을 돌이킬 수 없고, 내 삶을 돌이키고 반성하는 일도 없이 하느님의 영광을 내 입으로 노래할 수도 없습니다. 또한 하느님께 올바른 자세로 영광을 노래하지 않고서, 어떻게 우리의 바람과 우리가 속한 공동체를 위하여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을 청하겠습니까? 그러니 ‘미사는 언제 시작합니다....’하고 정해진 시간보다 늦게 오는 사람, 늦게 들어오는 사람은 각각의 사정을 그대로 다 인정해준다고 해도 그 사람은 미사를 함께하는 일에 올바른 준비를 하지 못했다고 말할 것입니다.
10. <<말씀전례>>는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뜻을 잘 이해하여 내 삶에 새기고, 그렇게 새긴 말씀을 우리가 사는 현장인 세상으로 돌아가서 어떤 방법으로 실천할 것인지를 알려주는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 관하여 미사를 주례하는 사제가 말하는 내용도 있습니다만, 사제가 하는 얘기가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의 상황을 모두 읽은 소리도 아니고, 그들이 바라는 바에 꼭 맞는 대단히 놀라운 얘기(!)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날그날, 강조하는 분야가 다를 수 있고, 사제가 힘주어 말하는 분야와 설명의 방법이나 표현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11. 우리 신앙인들의 삶에 구원자(救援者)로 오신 예수님의 생애에 맞춰 우리가 특별한 마음자세를 가질 것을 권고하는 시기를 가리켜, 전례(典禮)시기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 전례시기에 따라서 말씀의 내용이 다양한 순서를 따릅니다. 물론 성경은 이미 완성돼 있는 것을 쓰기 때문에 각 전례시기의 필요에 따라서 강조점을 정하고 반복하는 모양을 드러냅니다.
12. 말씀전례의 첫 부분에서는 첫 번째 독서를 읽고 듣습니다. 그리고 독서의 내용에 맞춰 그 내용을 좀 더 풍성하게 설명하는 것이 화답송입니다. 이 화답송은 일반적으로, 시편이라는 부분을 사용하는데, 하느님을 찬송하고 기리고, 그에 맞춰 사람인 우리가 실천할 내용이나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는 내용으로 돼 있습니다. 우리본당에서는 시편을 읽습니다만, 주보에 있는 내용의 앞부분을 노래로 봉헌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하느님께서 예수님으로 이 세상에 오시고 난 다음, 그분의 뜻을 실천하는 것을 중심으로 모인 공동체의 삶에 대해서 전해주는 것이 두 번째 독서가 있고, 그 다음으로는 전례시기에 정한 순서에 따라 예수님의 말씀을 적절한 상황에 맞춰 선택하고 읽는 복음의 순서가 있습니다. 말씀을 사제가 읽고 신자들은 듣습니다.
13. 다음으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세상에서는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 사제의 해설에 해당하는 ‘강론’을 듣습니다. 강론은 누구를 탓하는 얘기도 아니고, 누군가를 비난하는 내용이 주된 초점을 이루지도 않는 것이 올바른 모습입니다. 같은 자리에서 읽고 들은 말씀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삶에 필요한 실천방법을 찾는 데에 더 큰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는 그렇게 삶의 실천방법을 다짐하는 우리들에게 하느님의 힘을 주시기를 청하면서, 우리가 믿고 따르는 신앙을 소리로 고백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때로는 니체아-콘스탄티노플신경(=라틴어발음)(혹은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이나 사도신경을 함께 하고, 말씀전례의 끝에 ‘보편지향기도’라는 이름으로, 한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공동체로 기도를 바칩니다.
14. 세 번째 부분은 ‘성찬전례’라고 부릅니다. 이 부분은 하느님을 공경하고 그분의 뜻을 알아듣고 실천하려는 다짐을 하는 사람들이 예물을 바치는 부분과, 공동체의 이름으로 봉헌할 것으로 미리 준비한 빵과 포도주의 봉헌, 그리고 봉헌한 예물이 하느님의 앞에 우리의 정성을 담은 충실하고도 진정한 예물이 되기를 청하는 봉헌기도로 나눕니다.
15. 요즘 세상처럼 돈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자본주의’시대가 되기 전에는 사람들이 각자 삶에서 만들어낸 생산품들을 봉헌하는 시간에 바치던 때가 있었다고 합니다. 제가 태어난 이래, 그 모습은 공식적인 전례에서 사라진 다음이기 때문에 본 일이 없어서 제가 색다른 표현을 썼습니다. 그렇게 물품을 바치던 시대가 지나간 다음에는, 돈으로 내가 바치는 몫을 계산하여 대신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내가 바치는 금액의 분량에 따라서 다시 나에게 돌아올 축복(祝福)의 양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봉헌이라는 예절을 대할 때에 정성을 함께 갖춘 마음으로 봉헌해야 올바른 자세가 될 것입니다.
16. 성찬전례 다음으로 하는 과정을 <<감사기도>>라고 합니다. 예전에는 이 감사기도 부분을 성찬예식에 합쳐서 설명하고, 전체를6개가 아니라, 5개로 나누어 설명한 때도 있습니다만, 어쨌든 현재는 6개로 나누어 설명하기 때문에 서로 다른 부분으로 설명하겠습니다.
17. 성찬전례는 다른 말로는 ‘미사양식’이라고도 부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중심으로 모이는 이 시간의 핵심이고 중심이라는 뜻이 더 강한 의미입니다. 물론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하니, 이 부분만 강조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이 부분이 있기 위해서는 앞부분도 필요하고, 이 부분을 지낸 다음에는 행동과 실천으로 연결될 다음부분도 필요하다는 뜻에 하는 구별일 뿐입니다.
18. 우리가 공동체로 모여, 한 마음을 갖자고 하는 사람들이 하느님께 우리가 가진 뜻을 알려드리는 시간은 아니지만, 공동체가 모여서 하느님을 찬미하고, 그분의 뜻이 세상에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청원의 양식을 교회공동체는 4가지 모양으로 정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많이 만나고 또 자주 만나는 미사양식-감사기도는 2(=두)번째 양식인 경우가 많고, 간혹 3(=세)번째 양식을 만나기도 합니다. 또 작은 규모로 나누어서 하는 공동체미사에서는 4(=네)번째 양식을 만나기도 합니다. 가장 처음의 1(=첫)번째 양식은 세 번째 양식을 좀 더 길게 설명한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이 자리에서는 많이 만나게 될 두 번째 양식을 기준으로 설명합니다.
19. ‘감사기도’는 우리가 준비한 예물을 돈이나 혹은 빵과 포도주로 봉헌한 뒤에 그렇게 한 일을 봉헌하고 우리가 돌려받는 과정을 담습니다. 이렇게 하는 일의 의미가 반드시 필요하냐고 묻는다면, 올바른 대답은 ‘당연히 그렇다(!)’입니다. 물론 질문하는 사람의 의도에는 그 뜻이 들어있지 않을 수도 있겠지요? 이 감사기도는 우리가 돈으로 바꿔서 봉헌 일의 다음에 계속되는 내용입니다. 이렇게 하는 일의 의미를 설명하는 기도를 바치고, 이 기도를 ‘감사송’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기도와 함께, 하늘의 천사들이 하느님을 찬미하는 노래인 ‘거룩하시도다’를 노래하는 것이 감사기도의 첫 부분입니다.
20. 그 다음에는 예수님께서 최후만찬의 순간에 세상에서 우리가 만나는 빵과 포도주를 사용하여, 세상에서 계속될 제사의 재료가 되게 하는 부분, ‘빵과 포도주를 예수님자신의 몸과 피’가 되게 하는 기도문을 바칩니다. 그 뒤에 계속되는 기도문을 몇 가지 부분으로 나누어 고유한 이름을 붙이고 설명이 있습니다.
21. 우리가 봉헌한 빵과 예물이 예수님의 몸과 피가 되게 해달라고 예수님께서 기도로 봉헌하신 말씀을 사제가 반복합니다. 빵과 포도주에 대한 예절로 그부분을 나누어서 기도로 봉헌한 다음, 그렇게 해주실 하느님을 찬미하는 ‘신앙의 신비’를 찬송/또는/노래로 바칩니다. 그 다음에는 그러한 제물을 바치고 나누게 될 공동체를 위한 기도를 바칩니다. 교회공동체의 책임자인 교황님을 위해서 기도하기도 하고, 각 교구의 주교님도 그 이름을 부르면서 기억하고, 미사에 따라서는 그 미사시간에 기도해주기를 청원한 분들의 이름을 부르며 특별히 기도하기도 합니다. <여러분이 주로 참례하는 주일의 중심미사=교중미사에는 이렇게 개인을 위해 바치는 기도는 없습니다.> 교중미사가 아닌 다른 미사에서 만날 수 있는 이름을 부르는 이 분들의 상황에 따라, ‘위령미사 혹은 생미사’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 다음에 감사기도의 끝부분에는 우리와 하느님사이의 화해를 이루게 하신 그리스도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기도로 마칩니다.
22. 미사를 분류하는 다섯 번째 부분은 ‘영성체예식’이라고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도 듣고, 제물로 쓸 빵과 포도주를 교회공동체가 미리 준비한 대로 봉헌했고, 우리들 각자가 돈으로 환산한 예물도 봉헌했고, 그 예물이 다시 우리와 함께하는 그리스도예수님의 몸과 피가 되게 해주시기를 청했으니 절차에 따라, 그렇게 우리 사람들 사이에 머무르시는 예수님을 생명의 근원으로 인정하고 다시 받아먹으며 그분의 뜻을 세상에 실천하는 사람으로 살 것을 약속하는 부분입니다.
23. 영성체예식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을 공경하는 올바른 자세를 담아 우리에게 알려주신 ‘가장 완벽한 기도’인 주님기도를 바치고,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본보기를 실천하는 방법으로 이웃과 나 자신에게 평화를 청하고 그 평화를 나누는 기도와, 우리에게 생명의 근원으로 오시는 분인 예수님을 칭송하는 ‘하느님의 어린양’이라는 노래, 그리고 그리스도예수님의 몸인 성체(聖體)를 모시기 전에 바치는 기도, 그리고 성체를 나누어받고 먹는 영성체예식,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당신의 뜻을 드러내시기를 청하는 영성체후기도가 있습니다.
24. 마지막 여섯 번째 부분으로는 파견예식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강복이라는 말을 더 많이 썼습니다. 파견자는 각각의 장소로 사람들이 해야 할 임무를 상기시키고, 그 일들에 하느님의 뜻을 실천할 것을 권고하여 보냅니다. 그렇게 보낼 때, 사제는 예수님의 뜻을 담아 활동할 수 있도록 축복의 말을 합니다.
25. 그렇게 한 다음, 지금은 여러 가지 말로 다양하게 번역하고 표현을 달리한 말로 인사합니다만, 라틴어를 인용하여 우리말로 읽으면, ‘이떼, 미사 에스트’라는 소리를 사제가 끝으로 하고 마침성가를 합니다. 라틴어로 소개한 ‘이떼, 미사 에스트(Ite, Missa est!)’를 우리말로 정확하게 옮기면, ‘가십시오. 여러분은 파견되었습니다’라는 뜻입니다. 주체(主體)는 그 사항을 선언하는 사제(司祭)가 아니라, 사제가 그 말을 하게 하는 예수님입니다. 사제는 하느님을 공경하는 제사가 있게 하시는 예수님을 대리하여, 그 제사의 주례자로서 그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파견된 사람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전례시간을 통해서 듣고 배우고 다짐한 일을 ‘각자의 삶의 자리 / 각자가 사는 현실의 장소’에서 행동으로 드러내야 하는 것이겠지요?
26. 신앙을 말하는 자리에 오신 여러분에게 낯선 일 중에서도 아주 낯설게 느껴질 미사에 대한 설명을 한번 말씀드렸습니다만, 제가 여러분에게 한번 말씀드린 것으로 여러분이 완벽하게 이해하고 그 중요한 내용을 다 알아듣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오늘의 내용을 시작으로 해서, 여러분이 저와 함께 하는 신앙생활, 또 여러분 다음으로도 이루어질 신앙생활을 계속해 나갈 사람들과 함께 하는 공동체를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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