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산책 (24) 창조 : 하느님의 구원 계획의 시작
“신부님, 이 세상은 정말로 창세기에 나오는 것처럼 하느님께서 말씀으로 창조하신건가요?”, “학교에서는 진화(進化)가 인류 생성의 과정이라고 배웠는데요. 생각해 보면 진화론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신자니까 창조론이 맞다고 해야 하나요?” 많은 신자들뿐 아니라 성경을 나름 꼼꼼히 읽었다고 자처하는 신자들도 이렇게 질문하는 경우가 있다. 과연 창세기에 기록된 내용은 역사적 사실일까? 교회는 진화론과 창조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일까?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창세 1,1). 성경은 하느님의 창조로부터 시작한다. 사도 신경에서 고백하는 첫 신앙 조문도 다름 아닌 창조주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다 :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성부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고백은 이 세상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에 대한 대답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것의 근원이 하느님께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신앙 고백이다. 즉 하느님의 세상 창조는 “단순히 언제 어떻게 우주가 물질적으로 생겨났는지, 또는 인간은 언제 발생했는지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그러한 기원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묻는 것”(가톨릭교회교리서, 284항)에 대한 대답인 것이다.
그러므로 자연과학의 범주인 진화와 신학적 범주인 창조는 같은 물음에 대한 서로 다른 대답이 될 수 없고, 하나를 선택한다고 하여 다른 하나가 버려지는 것도 아니다. 자연과학에서 진화에 관한 다양한 이론들이 “생명체와 우주 탄생, 발전의 메커니즘을 연구”한다면, 신학에서 창조론은 “이 세상의 근원적인 시초부터 하느님께서 이 세상과 인간을 위한 구원 계획을 갖고 계셨음을 고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원하신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당신 지혜와 자비의 지극히 자유롭고 심오한 계획으로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들어 높여 신적 생명에 참여하게 하셨다”(교회헌장, 2항).
진화에 관한 다양한 이론들이 세상과 인간의 기원 문제를 과학적 연구 대상으로 삼아, 우주의 생성 시기와 크기, 생명체의 등장, 인간의 출현 등에 대한 우리의 지식을 풍부하게 해 주었고, 이것이 어느 정도 합리성을 얻은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인간과 그리스도인 삶의 근본 그 자체”와 관련된 질문, 즉 “우리의 삶은 어떠한 의미를 갖고 있으며, 그 의미의 원천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진화에 관한 자연과학적 이론에서 찾을 수 없고, 하느님의 세상 창조에 대한 신앙 고백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다(가톨릭교회교리서, 282항 참조).
가만히 자신에게 질문해 보자. “나에게 이 하늘과 자연과 세상은 어떠한 의미인가?”, “이 세상 안에서 살아가는 내 삶은 어떠한 의미를 갖고 있는가?”, “함께 살아가는 이들은 나에게 어떠한 존재인가?” 우리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창세기 말씀에서 찾을 수 있을 것 이다.
* 진화론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에 대해서는 참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담화, 「생명의 기원 과 그 진화에 관한 연구와 교회」, (1996,10,22).
[2015년 8월 9일 연중 제19주일 청주주보 4면, 김대섭 바오로 신부(복음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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