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리 아카데미] 오늘날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공동선의 열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놓고 말들이 많다. 어떤 이들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지나쳐서 국론이 분열되는 등의 문제가 있다고 말하고, 다른 이들은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독재로 회귀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또 어떤 이들은 민주주의 해봐야 별거 없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같은 땅에서, 같은 제도 아래에서 살면서 서로가 이렇게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 놀랍기도 하다. 이처럼 ‘민주주의’라는 말만큼 서로 다르게 생각하면서도 똑같이 표현되는 말이 없을 듯하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방식에 따라서 그 사회의 민주주의의 발전과 수준이 다른 것은 분명하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해하는 민주주의와 실제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수준, 그리고 독일 사람들이 이해하는 민주주의와 독일 사회의 민주주의 수준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민주주의를 1인 1표에 근거한 보통선거권, 주기적인 선거, 정당 간의 경쟁을 통한 정부의 구성 등 민주적 경쟁의 규칙을 확립하는 절차상의 최소 요건을 갖춘 정치체제로 이해해 왔다. 그러나 이것은 민주주의를 위한 출발점이고 최소한의 조건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를 민주주의의 완성으로 생각한다면,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충분하다고 이해할 수도 있고, 또는 이런 식의 민주주의 해봐야 서민들 삶이 더 나아지지도 않으니 민주주의 해봐야 별거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프랑스의 정치사회학자 토크빌이 파악하듯이 선거 제도가 아니라 ‘사회의 상태’라고 보아야 한다. 민주주의는 절차적 조건을 갖춤으로써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 조건 위에서 그 사회가 어떤 지적, 도덕적, 문화적 토양을 발전시키는지에 따라 더 좋은 내용으로 발전할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의 민주주의가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선진적인 민주주의와 같을 수가 없는 것이다.
가톨릭 사회교리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민주주의를 이해하고 있다. 즉, “참된 민주주의는 단지 일련의 규범들을 형식적으로 준수한 결과가 아니라, 모든 인간의 존엄, 인권 존중, 정치 생활의 목적이며 통치 기준인 공동선에 대한 투신과 같이 민주주의 발전에 영감을 주는 가치들을 확신 있게 수용한 결과이다.”(간추린 사회교리, 407항)
사회교리에서 말하는 참된 민주주의는 제도와 절차를 넘어서서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 사회의 공동선을 얼마나 발전시키고 증진시키는가에 달려있는 것이다. 특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사목헌장>은 국가의 존재 이유 자체가 공동선을 발전시키는 것임을 분명히 천명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 사회의 인권과 공동선의 수준은 대다수의 서민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정부 정책으로 평가될 수 있다.
돌이켜보면, 지난 10여 년 동안 우리나라 10대 대기업의 사내 보유금은 2배 이상 늘어난 반면, 가난한 사람들의 빈곤 탈출률은 꾸준히 하락해왔다. 열심히 일해도 일어서기 힘든 사회가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나라의 사회 경제적 불평등과 양극화의 수준은 멕시코와 비슷한 수준이 되어버렸고, 빈곤율은 터키와 비슷한 수준이 되어 버렸다. 이런 점을 보더라도 우리 사회의 공동선의 수준은 상당히 낮고, 국가와 정부는 역할을 제대로 못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 민주주의 해봐야 별거 없거나 또는 민주주의가 지나쳐서 문제가 아니라, 사실은 민주주의를 제대로 못해서 우리 삶이 이렇게 힘든 것이다.
* 이동화 신부는 1998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2010년 교황청 그레고리오대학교 사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부산교구에서 직장노동사목을 담당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5년 9월 20일, 이동화 신부(부산교구 정의평화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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