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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회교리 아카데미: 기분 좋은 명절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09-27 조회수2,329 추천수0

[사회교리 아카데미] 기분 좋은 명절

더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우리 민족 고유의 명절 한가위입니다. 삼국사기에서 신라시대 우리 조상들이 한가위를 지냈던 모습을 읽을 수 있습니다. 왕이 육부(六部)를 정한 뒤, 이를 두편으로 나누어 왕녀 두 사람으로 하여금 각각 부내(部內)의 여인들을 거느리게 하고, 길쌈을 하게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보름, 즉 한가위가 되면 그 공을 가려 지는 편은 음식을 준비하여 이긴 편에 사례하고, 모두 노래와 춤과 온갖 놀이를 하게 하였으니, 이를 가배라 불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여기서 편을 갈라 이기고 지는 것은 경쟁을 통해 일의 능률을 올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때의 길쌈은 겨울을 날 옷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모두를 위해 일의 능률을 올리고 동기부여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일을 마친 후에는 음식을 준비하여 이를 함께 나누며 즐겼습니다.

사회교리에서 자본주의와 사유재산, 경쟁이 필요하다고 한다면, 그를 통해 효율을 촉진시키고, 그 높아진 효율로 인간을 위해 봉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편을 이기기 위한 경쟁, 내가 모두 갖기 위한, 나만을 위한 사유재산, 인간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가지수와 성장률이라는 숫자를 위해 봉사하는 자본주의는 교회가 옳다고 가르치는 것들이 아닙니다.

명절은 공동선을 위해 서로 애써온 이들이 자신의 공을 함께 나누고, 서로의 허물과 부족함을 용서하는 자리였습니다. 그렇게 앞으로 다가올 어려움을 함께 이겨내기 위한 힘을 다지는 자리였습니다. 그렇기에 모두가 평소보다는 더 행복할 수 있었고 풍요로웠습니다. 저절로 “더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보내고 있는 명절은 어떠합니까? 음식준비, 부모님 모시는 문제에서 이 사회의 세대 간 갈등을 드러내고, 성묘 가서 절하는 문제로 종교갈등을, 정치 이야기하며 정치갈등, 사회갈등, 남북갈등의 상처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명절을 지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런 일들이 벌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하느님이 바라시는 인간 존엄성, 공동선의 우선성이 올바로 자리잡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명절이 가족들이 함께 모여 기쁨을 나누고, 아픔을 위로하는 자리가 될 수 있습니다. 다문화 가정, 핵가족화, 노령화와 같은 수많은 문제 안에 있는 우리 가정과 그 구성원들의 아픔, 이산가족 문제로 힘싸움을 하는 남과 북, 그 사이에서 눈물 흘리는 얼마 남지 않은 이산가족들, 주당 노동시간을 둘러싸고 팽팽한 줄다리기 중인 노동자, 고용주, 정부. 한가위를 맞아 자신들이 겪는 대립과 갈등의 원인은 무엇인지, 무엇을 위해 경쟁하고 자신의 주장을 펴는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사회교리는 하느님께서 결코 포기하실 수 없는 인간 구원을 이루기 위해 변화하는 각자의 삶에서 말씀을 육화시키려는 치열한 노력의 결과입니다. 이번 명절은 잠만 자고, 텔레비전과 컴퓨터,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느라 대화가 사라진 명절, 고속도로에서의 고생만 기억나는 한가위가 아니면 좋겠습니다. 각자의 삶을 서로 나누고, 그 안에서 신앙을 통해 서로를 격려하고 나아갈 방향을 함께 찾으면 좋겠습니다. 그 노력이 이 사회의 소외된 이들과 가난한 이들을 향하길, 그래서 한가위가 끝난 후 성큼 다가올 겨울 앞에서도 따뜻하고 아름다운 사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김성수 신부 - 서울대교구 소속으로 현재 고덕동본당에서 사목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5년 9월 27일,
김성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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