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리 아카데미] 시민사회와 국가
종북몰이에 흔들리는 보조성의 원리
오늘날 언론매체를 통해서 또는 우리들의 일상적인 대화 안에서 ‘시민사회’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시민사회’ 개념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개념틀이기도 하고, 또 가톨릭 사회교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도구이기도 하다.
시민사회란, 한마디로 “정치(국가와 정부)와 경제(시장) 영역에서 비교적 독립되어 있는 문화적 단체적 자원과 관계의 총체”(간추린 사회교리 417항)를 뜻한다. 다시 말하면, 시장과 국가를 제외하고 가정에서부터 출발해서 우리가 이루는 모든 모임과 단체, 즉 종교적인 모임과 결사, 동문회와 친목회와 같은 모임, 더 나가서는 시민사회단체와 같은 공적 영역에서의 결사까지 우리가 맺는 모든 사회적 관계를 뜻한다.
그러나 사회를 바라다보는 관점은 다양하기에 각자의 이론과 이념의 입장에 따라서 다양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시민사회의 영역을 축소하려는 경향들이 있다. 예를 들면 독재와 같은 전체주의에서는 시민사회를 국가의 영역과 통제 속으로 통합시키려는 경향이 있고,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 이데올로기는 시민사회의 영역을 축소시키고 반대로 시장의 영역을 확대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경향에 거슬러 가톨릭교회는 한 사회를 정치공동체(국가)-경제적 삶(시장)-시민사회라는 삼분법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이 세 영역이 전체주의나 신자유주의의 경향을 거슬러 서로 자율적이고 균형 있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러한 관계 안에서 우리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경제제도나 정치가 인간을 위해서, 더 나가서는 인간의 존엄을 위하고 인간에게 봉사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 말은 개인들이 결속하여 이루는 시민사회가 국가나 정치에 우선하며, 시민사회는 국가의 모태이고, 그런 의미에서 국가는 시민사회에 봉사해야 하고 시민사회의 구성원인 개인과 집단에게 봉사(간추린 사회교리 418항)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가톨릭 사회교리는 국가에 대한 시민사회의 우선성을 주장하며, 이러한 관계를 규정하는 원리로서 ‘보조성의 원리’를 말하는 것이다. 보조성의 원리는 더 작은 조직과 단체를 위해서 더 큰 조직은 보조적으로만, 즉 도움을 주는 방식으로만 개입해야 한다는 원리이다. 뒤집어서 말하자면, 더 작은 조직과 단체의 역할과 활동을 위해서는 더 큰 단체의 역할이 제한되어야 한다는 뜻이며, 시민사회와 국가의 영역에서 말하자면 시민사회의 자율적인 역할과 활동을 위해서 국가의 권력은 제한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 사회의 곳곳에서 일어나는 여러 현상과 문제들은 지극히 우려스럽다. 특히 시민사회 안에서 자유롭게 형성되어야 하는 여론에 대해서 국가와 정부가 다양한 방법으로 개입하는 것은 심각한 일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던 그렇지 않던, 국가기관이 인터넷 공간에서 여론을 조직하고 왜곡한 것은 보조성의 원리와 민주주의를 위배하는 심각한 범죄이다. 또한 학문과 교육의 영역에서 논의해야 할 것을 국가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와서 논쟁을 일으키는, 이른바 국정 교과서 문제도 이런 관점에서 비판되어야 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시민사회의 자율적인 의사 개진과 비판, 사고와 활동 방식을 두고 정부나 정치인들이 나서서 ‘종북’이라는 낙인을 찍는 것은 가장 심각하게 보조성의 원리를 위배한다. 많은 경우 그러한 이데올로기적인 낙인은 시민사회의 영역을 축소하고 국가 권력을 확대하려는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에서 나온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이동화 신부는 1998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2010년 교황청 그레고리오대학교 사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부산가톨릭대 신학원장과 신학대학 교수를 맡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5년 11월 8일, 이동화 신부(부산교구 정의평화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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