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으로 풀어보는 교리] 모든 성인의 통공, 죄의 용서, 육신의 부활
“저는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을 믿나이다.”
모든 성인의 통공
통공(通功)은 “공로를 나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는다는 말은 성인들이 서로 공을 나누면서 서로 친교를 맺고 있음을 믿는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통공이란 말에는 ‘거룩한 것들(sancta)을 공유한다’는 의미와 ‘거룩한 사람들(sancti) 사이에 친교를 나눈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거룩한 것들을 공유한다는 말은, 그리스도께서 베푸시는 모든 선한 것이 우리에게 전달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교회의 성사들을 통하여 그러합니다. 그리고 거룩한 이들의 친교, 곧 거룩한 이들이 친교를 나눈다는 말은, 천상의 성인들은 우리를 위해 전구할 수 있고, 우리는 그들의 거룩한 삶을 본받고자 노력한다는 것, 그리고 우리도 죽은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천상의 복을 기원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교회는 천국의 교회, 연옥의 교회, 지상의 교회, 이렇게 세 가지 형태의 교회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천상의 교회와 지상의 교회는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친교를 나누고 있습니다. 천국의 교회에 속한 성인들은 지상의 교회에 속해있는 우리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고, 지상의 교회에 속해있는 우리들도 천상의 교회에 속한 성인들을 본받아 살아가며, 연옥의 교회에 속해있는 죽은 이들을 기억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 모든 교회의 구성원들이 서로 통하고 있음이 성인들의 통공교리 내용입니다.
죄의 용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신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창조하시고 구원하시고 거룩하게 하시는 하느님의 행위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는 신경은, 세말에 이루어질 죽은 이들의 부활과 영원한 삶에 대한 선언에서 절정에 이르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에게 성령을 주심으로써, 죄를 용서하는 당신의 권능을 주셨습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22-23)
그리고 주님께서는 죄의 용서를 신앙과 세례에 연결시키셨습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르 16,15-16)
세례는 그리스도와 우리를 결합시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하는 죄의 용서를 위한 가장 주요한 성사입니다.(세례를 통해 원죄, 본죄, 곧 우리 자신의 의지로 지은 죄, 또 그 죄들을 속죄하기 위해 받아야 할 잠벌까지 사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세례 받은 사람은 고해성사를 통하여 하느님과 교회와 화해할 수 있습니다. 교부들은 고해를 ‘수고스러운 세례’ 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고해성사가 세례성사처럼 죄사함의 효과를 낸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세례가 아직 새로 나지 않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처럼, 고해성사는 세례를 받은 후 죄에 떨어진 사람들의 구원에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신 다음 사도들을 파견하시면서,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 되도록 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이에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은 이 ‘화해의 직분’을 수행하였습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는, 아무리 중대한 잘못이라고 해도 거룩한 교회가 용서해 줄 수 없는 잘못은 없다고 천명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사악하고 죄가 많은 사람이라도 그의 뉘우침이 진실하기만 하면 누구나 용서에 대해 확고한 희망을 가질 수 있다.”(982항)
육신의 부활
‘육신의 부활’은 우리가 죽은 다음에 우리의 영혼이 불멸한다는 것을 말할 뿐 아니라 우리의 ‘죽을 몸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가리킵니다. 죽은 이들의 부활에 대한 신앙은 처음부터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 요소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의 부활을 당신 백성에게 점진적으로 계시하셨습니다. 죽은 이의 육신 부활에 대한 희망은 창조주이신 하느님과 ‘계약’에 충실하신 하느님에 대한 신앙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부활을 희망하고 있었는데, 특히 바리사이들이 그러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을 부인하는 사두가이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마르 12,24)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부활 신앙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마르12,27)이신 분에 대한 믿음에 그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나아가서, 예수님께서는 부활에 대한 신앙을 당신 자신과 연결 지으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요한 11,25) 예수님은, 당신을 믿고 당신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사람은 마지막 날에 친히 살리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는 실제로 죽은 몇 사람들에게 생명을 돌려주심으로써 부활에 대한 징표와 보증을 주셨고, 이로써 자신의 부활을 예고하셨습니다.
죽은 모든 사람이 부활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선을 행한 이들은 부활하여 생명을 얻고 악을 저지른 자들은 부활하여 심판을 받을 것”(요한 5,29)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 자신의 육신을 지니고 부활하셨습니다.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루카 24,39) 교회는, 그분 안에서 “모든 사람들이 지금 가지고 있는 자신의 육신을 지니고 부활할 것”이라고, 그렇지만 이 육신은 ‘영적인 몸’으로,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될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부활할 것인가?”라는 의문에 대한 답은 우리의 상상력과 이해력을 뛰어넘는 것으로, 신앙으로만 접근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이에 성 이레네오의 말씀에 주목했으면 합니다. 성인은 영성체를 통해 우리의 몸이 부활의 희망을 지닌 몸으로 변모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땅에서 나온 빵도 하느님의 축성을 받게 되면 더 이상 보통의 빵이 아니라, 지상의 것과 천상의 것 두 가지로 이루어진 성체가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체성사에 참여하는 우리 육신도 더 이상 썩어 없어질 육신이 아니고, 부활의 희망을 지닌 육신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체성사에 참여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한 우리 육신의 영광스러운 변화를 앞당겨 맛보고 있는 셈입니다.
부활은 ‘마지막 날에’, ‘세상 끝 날에’ 결정적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죽은 이들의 부활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지금 이 지상에서부터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는 삶인 것입니다!
레지오단원 여러분, 바오로 사도의 다음 말씀을 새겨 들읍시다!
“여러분은 세례 때에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고,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하느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과 함께 되살아났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콜로 2,12; 3,1). 아멘.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5년 11월호, 조현권 스테파노 신부(대구대교구 계산주교좌성당 주임, CBCK 교리교육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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