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리 아카데미] 교육의 방향성 평신도의 복음화 소명을 위한 교육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으로 교육에 관한 문제가 뜨거운 이슈로 부상한 가운데, 우리 아이들은 11월 12일에 2016년 대학입학 수학능력시험을 치렀습니다. 그리고 오늘 11월 15일은 평신도 주일입니다. 국정화 교과서 논란이 한창 뜨거울 때, 한 개신교계 신학교에서 “복음서도 네 개나 있는데…”라는 현수막을 붙인 적이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이 정권이 바뀐 후에 실록을 수정하면서도 이전의 판본을 그대로 보존한 점, 승정원 일지나 비변사의 기록 등을 남겨 일방적인 해석을 경계한 지혜를 생각한다면 분명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이념적이고 잘못된 선택입니다. 물론 역사 교과서국정화에 찬성하실 수도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하려는 것이 국정화에 대한 찬반논쟁은 아닙니다. 우리 사회는 교육에 관한 이슈가 생길 때마다 책임자들이 국민 앞에 나와 ‘이렇게 하겠다, 저렇게 하겠다’라는 말은 많이 하지만, ‘어떻게 하겠다, 무엇을 위해 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결국 아이들을 위한, 미래를 위한 사회건설이 아니라, 결국 자본을 위한 사회건설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교육이 교육답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교육은 여전히 대학입학을 위한 공교육, 취업을 위한 대학교육으로 전락한 채 자본주의를 위해 봉사하는 교육으로 남고 맙니다. 이런 상황에서 평신도 주일을 맞는 우리는 교육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무엇보다 교육의 주체가 되어야 할 우리 아이들의 미래는 어떠해야 하는지 진지하고 가슴 아프게 성찰해 보아야 합니다. “평신도들은 피동적으로 지침이나 명령만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구상과 계획으로 사람들의 정신과 풍습, 사회 공동체의 법제와 조직을 그리스도화하는 것을 자신의 의무로 생각해야 한다.”(복자 교황 바오로 6세 「민족들의 발전」 81항) 뉴스에 나오는 정치인들과 수없이 쏟아지는 기사와 칼럼은 서로 다른 주장과 이야기를 하지만, 근본적인 방향에 대한 성찰이 없다면 결국은 자본주의가 성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변증법적인 형태를 보입니다. 먼저 이 굴레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리 평신도들이 무엇보다 복음과 사회교리에 비추어서 판단해야 합니다. 그래야 앞으로 우리 아이들은 문화, 사회, 경제, 정치 영역에서 일상 활동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면서 공동선에 이바지할 수 있고, 나아가 자기 편의나 금전의 이익을 버리고 정치를 하는 이들이 더 많아질 수 있습니다. (참조 「사목헌장」 75항) 수능시험을 통해 아이들은 12년의 공교육이라는 긴 달리기를 마쳤습니다. 그들이 새롭게 마주해야 하는 다시 시작되는 길은 어디로 이어지고 있을까요? 또 어디로 이어져야 할까요? 그 길은 누가 만든 길일까요? 이 길에서 교회는 그들에게 어떤 이정표를 제시할 수 있을까요? 또 그 길에서, 교회가 이정표를 제시하는데 있어서 우리 평신도들의 사명과 역할은 무엇일까요? 전례력으로 한 해가 마무리되어 갑니다. 새해를 맞이하는 대림시기의 둘째 주간에 우리는 다섯 번째 사회교리주간을 지냅니다. 개별 사안에 대한 논의도 중요하지만 그 논의를 통해 우리가 나아가고자 하는 바를 성찰하는 풍요로운 사회교리 주간을 보낼 수 있도록 지금부터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준비하면 좋겠습니다. 그를 위한 핵심적인 가치는 복음입니다.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복음적 열정이 모든 평신도들의 가슴에 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 김성수 신부 - 서울대교구 소속으로 현재 고덕동본당에서 사목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5년 11월 15일, 김성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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