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리 아카데미] 시민사회의 우선성 국민 대하는 정부 시각 · 태도 “변해야” 얼마 전 정부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와 자칭 ‘노동개혁’이라 부르는 노동정책 입법화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 지난 정부에서 미국 쇠고기의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 시위 이후 최대 규모의 시위였다고 한다. 익숙한 풍경이긴 하지만, 경찰은 시민들의 행진을 막으려고 경찰 버스를 촘촘히 주차시켜 길목을 차단하는 이른바 ‘차벽’을 만들었고, 시민들은 물리력을 동원하여 그 버스를 끌어내려 했다. 경찰 버스를 끌어내는 시민들에 대해 경찰은 캡사이신이라는 최루액을 쏘았고, 군중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또 안전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물대포를 쏘았다. 그 과정에서 농민 한 분이 물대포를 얼굴에 맞고 쓰러져 뇌진탕으로 중태에 빠져있다. 이 사건에 대한 해석은 입장의 차이에 따라 뚜렷하게 갈린다. 한편에서는 경찰의 과잉 대응이 빚어낸 결과로 보는가 하면, 정부와 보수 언론 쪽에서는 폭력 시위 탓으로 돌린다. 여기서 시시비비를 가릴 생각은 없지만, 그날 이후 정부의 대응은 우려스럽다. 대통령은 그날 시위를 두고서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IS에 빗대며 무관용으로 대응하겠다고 했다. 검찰은 폭력행위가 없더라도 복면을 쓰고 시위에 나서면 기소하겠다고 밝혔고, 몇몇 장관들의 명의로 주요 일간지에 나온 정부 광고는 ‘불법과 폭력 시위를 이 땅에서 발 못 붙이게 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불법과 폭력 시위를 엄벌하겠다고 말하지만, 오히려 정부의 이러한 대응이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다. 빈대를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다 태우는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엄벌로써 통제하고 감독하기 보다는 그날 10만 명이나 되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왜 거리로 나왔는지, 그리고 그들이 무엇을 요구했는지 먼저 물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이다. 민주주의를 위해서도 그렇고, 시민사회에 대한 국가와 정치의 올바른 역할을 위해서도 우리 정부의 시각과 태도는 좀 변해야 한다. 먼저, 정부의 정책이나 의견에 비판적이거나 반대하는 의견을 적으로 배척해서는 안 된다. 정치는 시민사회의 다양한 의견들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그 다양한 이해관계들을 조정(사목헌장 75항 참조)하는 과정의 예술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번 국정교과서 고시에서 볼 수 있듯이 정부가 시민사회에 지나치게 개입해서도 안 된다. 국가 권력의 한계는 명확하게 설정되어야 한다는 것이 가톨릭 사회교리의 ‘보조성’의 원리가 가르치는 바다. 마찬가지로 정부가 시민들의 삶을, 특히나 시민들의 생각이나 사상을 통제하고 감독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그러한 감시와 통제 그 자체로 우리 정부가 금과옥조로 여기는 자유민주주의를 배반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근본적으로는 국가와 정치가 시민사회 위에 있어서는 안 된다. 국가와 정치의 뿌리이자 모태는 시민사회이며, 국가와 정치는 시민사회 안에서 그 정당성을 찾을 수 있으므로 시민사회가 국가에 우선한다(간추린 사회교리 417-8항)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가톨릭 사회교리에서 말하는 시민사회의 우선성, 보조성의 원리, 민주주의의 원리는 국가 권력의 한계와 범위를 설정하는 원리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원리에서 볼 때, 아직도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위태로워 보이고, 정부의 태도가 퇴행적으로 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튼튼하고 성숙한 시민사회가 형성되어 있지 않고,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당이 없다는 데에 있다. 북유럽의 성숙한 민주주의와 복지국가는 강력한 노동조합과 진보적인 정당 위에서 생겨날 수 있었음을 생각해야 한다. * 이동화 신부는 1998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2010년 교황청 그레고리오대학교 사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부산가톨릭대 신학원장과 신학대학 교수를 맡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5년 12월 20일, 이동화 신부(부산교구 정의평화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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