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리 아카데미] 세상 속 신앙인
물살을 거슬러 연어처럼 상본이나 성화 안에서 물고기를 쉽게 볼 수 있다. 예수님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셨으니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의 상징으로 물고기가 제격이다. 재미있게도 옛 그리스 말의 물고기(Ichthus)는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아들, 구원자”라는 말의 그리스 알파벳 머리글자로 이루어진 말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교가 로마와 그리스로 전파되었을 무렵, 신앙인들은 물고기가 새겨진 나뭇조각이나 돌을 가지고 다니며 자신들이 그리스도교 신자임을 드러내 보였다. 지금도 로마에 가면, 그리스도인들의 지하 무덤인 까따꼼베의 프레스코 벽화에서도 물고기를 볼 수 있다. 초세기 신자들은 이렇게 자신들끼리 소통했고, 또한 모진 박해도 견뎌내었다. 물고기의 표식은 그리스도교의 신앙 내용이 무엇인지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했고, 또 한편 그리스도인들이 서로를 알아보게 하는 표식이며,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 어떤 것인지를 드러내는 상징이기도 했다. 이처럼 물고기가 신앙인의 정체를 드러내준다면, 물고기 중에서도 연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드러내준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고, 세상의 흐름 안에 있지만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세상을 거슬러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물고기 표식은 박해 시대에 비밀스럽게 자신이 신앙인임을 알려주던 표식일 뿐만 아니라, 세상을 거슬러 살아야하는 신앙인의 상징이 된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역사는 세상을 거스르는 존재로서의 집단적 정체성을 어떻게 형성해왔는지 보여준다. 특히 2-3세기의 교부 시대는 유대교와 유대 지역을 떠나 교회가 더 넓은 세상 속으로 들어가던 때였다. 이즈음에 교회가 믿는 것이 무엇인지 학문적으로 설명되기 시작했고, 미사전례 형식이 서서히 고정되기 시작했으며, 평일과 주일, 축일과 대축일이 구분되기 시작했고, 성사가 집행되기 시작했다. 교리와 전례를 통해 교회 안에서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다면, 교회 바깥을 향해서도 세상과는 다른 윤리와 이웃사랑의 실천을 통해 외적 정체성 역시 뚜렷해지는 시기이기도 했다. 그리고 세상과는 다른 뚜렷한 윤리와 실천의 기초는 ‘대조사회’(로핑크, 「예수는 어떤 공동체를 원했나」 분도출판사)를 구성하는 것이었다. 대조사회란 마태오 복음의 산상설교를 근본으로 삼아 이 세상과는 완전히 다르고 대조되는 새로운 세상을 뜻한다. 산상설교의 가르침을 삶의 태도로 삼고 그 가르침이 사회 속에 확산되어 그리스도교 공동체로 형성되도록 실천하는 대조사회의 삶에 모든 신앙인이 초대받은 것이다. 이런 이유로 교회는 세상을 거스르고 세상과 싸움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내고자 했다. 교부 디오니시오스는 가난한 사람을 돕고 그들을 변호하기를 설교했으며, 떼르뚤리아누스는 황제에게 순종하지 말고 정의에 순종하라고 가르쳤다. 떼르뚤리아누스와 더불어 오리게네스 역시 그리스도인은 황제의 군대에서 복무할 수 없다고 가르쳤다. 이미 초대교회 때부터 그리스도인들에게 세상은 하느님 나라를 향해 변화되어야 할 것이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은 세상 속에 살지만 세상을 거슬러 세상과 싸워야만 했다. 고된 일이나 명예나 삶의 안락함도, 심지어는 목숨까지도 내어놓아야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물살을 거슬러,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 물고기는 연어가 아닌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물고기로 차려진 아침식사에 제자들을 초대(요한 21, 12)하신다. 세상을 거슬러 세상을 이기는 삶으로 초대하신다. [가톨릭신문, 2016년 3월 27일, 이동화 신부(부산가톨릭대 신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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