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산책 (61) 평신도 : 세상 한가운데로 파견된 이들 지난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 미사’ 강론에서 한국 천주교 회사 안에서 드러난 평신도의 역할과 소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한국 땅에 닿게 된 그리스도교 신앙은 선교사들을 통해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한민족, 그들의 마음과 정신을 통해 이 땅에 그리스도교 신앙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 이러한 역사는 우리에게 평신도 소명의 중요성, 그 존엄함과 아름다움에 대하여 많은 것을 말해 줍니다.” 천주교가 한국에 들어오는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평신도, 교회는 그들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평신도는 “성품의 구성원과 교회가 인정한 수도 신분의 구성원이 아닌 모든 그리스도인”(교회헌장, 27항)을 일컫는 말이다. 즉 평신도는 교회의 특별한 직무를 맡은 성직자와 봉헌된 삶을 사는 수도자를 제외한 모든 그리스도인을 말하는 것이다. 비록 이러한 구별이 교회 안에 있을 지라고, 이 구별이 차별이나 상하 위계 질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부들은 성직자뿐 아니라 평신도 역시 ① “그리스도의 사제직과 예언자직과 왕직에 자기 나름대로 참여하는 자들”이며, 특히 ② “자기 몫을 교회와 세상 안에서 실천하는 그리스도인들”이라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① 평신도의 직무는 성직자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며, 성직자의 직무를 나누어 받는 것도 아니다. 평신도 역시 그리스도로부터 사도직 직무를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평신도들은 세례와 견진을 통하여 바로 주님께 사도직에 임명되었기 때문이다”(가톨릭교회교리서, 900항). 따라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직무에 성직자와 평신도가 각각 다른 방법으로 참여하고 있기에 성직자와 평신도가 직무로서 구별되지만, 품위와 활동에서는 평등하다고 가르친다(교회헌장, 32항 참조). ② 평신도의 역할은 무엇보다도 세속 안에서, 즉 ‘일상의 가정 생활과 사회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소명을 다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평신도들은 세속 안에서 “하느님께 부르심을 받아, 자기의 고유한 임무를 수행하며 복음 정신을 실천하고 ... 자기 삶의 증거로써 믿음과 바람과 사랑으로 빛을 밝혀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분명하게 보여 주어야”(교회헌장, 31항) 한다. 주교였던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다음 말씀은 교회 안에서 평신도의 품위와 가치, 그리고 성직자와 평신도의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한다. “여러분을 위하여 내가 있다는 사실이 나를 두렵게 하는 바로 그 자리에서 내가 여러분과 함께 있다는 사실이 나를 위로하여 줍니다. 실제로 여러분에게 나는 주교이지만 여러분과 함께 그리스도인입니다. 전자는 직무의 이름이며, 후자는 은총의 이름입니다. 전자는 위험한 이름이지만 후자는 구원받을 이름입니다.”(성 아우구스티노, 「설교집」, 340, 1). [2016년 7월 10일 연중 제15주일 청주주보 4면, 김대섭 바오로 신부(복음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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