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리 아카데미] 달팽이의 지혜
크다 해서 좋은 것만은 아니다 장마가 잠깐 멈춘 사이 내가 사는 이곳 신학교 교정에 달팽이가 다녀갔다. 오랜만에 보는 녀석이라 반갑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자기 등에 언제나 껍질을 얹고 다니는 게 여러 가지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느리고, 작고, 힘없는 이 녀석에겐 그래도 등에 업고 다니는 이 껍질이 유일한 피신처요 집일 게다. 실제로 달팽이는 자신의 껍질을 짐이나 부담이 아니라 피신처요 집으로 만들기 위해서 각고의 노력을 한다. 달팽이는 섬세한 구조의 껍질을 겹겹의 소용돌이 모양으로 키우고 나면 껍질을 만드는 활동을 줄이거나 아예 중단한다. 소용돌이를 한 번 더 하게 되면 껍질의 크기와 무게는 엄청나게 증가해 버린다. 이렇게 되면 달팽이에게 껍질은 피난처와 안식처가 아니라, 짐이자 부담이 되어 버린다. 달팽이의 자유는 제한되고, 그의 삶은 껍질의 크기와 무게에서 오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일에 쓰이고 마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달팽이의 지혜와는 달리 인간의 삶과 사회는 계속해서 껍질을 확대해나가는 방향으로만 달려간다. 성장, 발전, 부양, 개발 등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이런 구호는 끊임없이 껍질의 크기를 키우자는 말에 다름 아니다. 껍질의 크기가 달팽이의 삶을 더욱 안정되게 하는 것이 아니듯, 경제성장과 경기부양 등이 대다수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성장에서 오는 이득은 소수의 몇몇 사람들에게 돌아가고, 성장 때문에 짊어져야 할 부담과 짐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돌아간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우리 경제에 심각하게 그리고 근원적으로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경제와 상당히 깊이 연결되어 있는 에너지 문제도 비슷하다.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우리의 전기 생산과 소비가 적지 않다. 가장 더운 여름날 며칠의 낮 시간대의 전력 소비만 적절히 분배하고 조정한다면 실제로 우리에게 전기가 모자라지 않는다. 설령 조금 부족하더라도 다양한 방식의 전력 생산을 고민할 수 있을게다. 그런데도 온갖 위험과 불안을 안고 핵발전소를 등에 업고 살아야 할까? 이것 역시 마찬가지로 혜택은 수도권과 소수의 부자들에게, 껍질의 부담과 무게는 지역과 다수의 가난한 사람들이 짊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핵에너지를 문제 삼았으니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북한의 핵미사일과 대량 살상 미사일을 방어하기에 필수적이라고 한다. 사드 배치 없이 이때까지는 어떻게 북한을 방어했는지, 또는 사드 있으면 앞으로 한반도에 평화가 찾아올는지 의문이다. 이미 남북한이 가지고 있는 무기와 군사력만으로도 한반도가 초토화되기엔 남고도 넘친다. 끊임없는 군비확산과 경쟁이 평화를 가져주지 않는 것이다. 그 큰 껍질을 또 누가 져야 할 것인지도 의문이다. 실제적으로 군사비의 사용이 안전과 평화에 직결되는 것이라는 확신이 없으면, 그 군사비 지출은 우리 사회의 긴급한 필요로 돌려져야 한다. 군사비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돌아가야 할 몫을 빼앗는 것이기 때문이다.(제2차 바티칸공의회, 「사목헌장」, 81항 참조) 오늘날 우리 모두의 삶을, 특히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힘겹게 하는 현실의 경제와 에너지, 군사력 강화는 직접적으로 정책과 정치의 문제이다. 그러니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들의 목소리를 모으고, 함께 행동하고, 더 많은 민주주의를 추구해야 한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으로 우리가 짊어진 문제는 우리 중심적인 생각과 삶의 방식에서 흘러나오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 근본적으로는 우리 삶의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우리의 등에 놓인 이 껍질이 참으로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지, 아니면 우리의 삶을 제한하고 방해하는지 근본에서부터 질문해보아야 한다. * 이동화 신부(부산가톨릭대 신학대학 교수) - 1998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2010년 교황청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부산가톨릭대 신학원장을 맡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6년 8월 7일, 이동화 신부(부산가톨릭대 신학대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