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리 아카데미] 책임 있는 권위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다 온 나라가 ‘최순실’이라는 블랙홀에 빠져 들어가는 느낌입니다. 그러던 차에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박찬운 교수가 10월 1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입장을 밝혔습니다. “의제자백이란 말이 있다. 소송상 용어인데 당사자가 상대방의 주장에 대해 명백히 다투지 아니할 때 자백으로 간주하는 것을 말한다. … 법률가 입장에서 요즘 돌아가는 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한마디 한다면, 이제 사태는 임계점을 넘어 의제자백론을 적용할 때가 되었다. 한마디로 메가톤급 의혹사건이 아닌가. … 최순실이 청와대를 등에 업고 기업들로부터 수백 억 원의 삥을 뜯어 미르와 K스포츠 재단을 만든 다음 사유화했다는 것이다. 최순실의 딸 정유라는 독일에서 승마훈련을 받는데 … 가히 국가원수급 예우다. … 이런 게 만일 다 사실이라면 그것은 부당행위를 넘어 범죄행위이고 그 책임은 종국적으로 대통령이 질 수밖에 없다. 이런 의혹이 사실무근이라면 대통령을 포함해 관련자들이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 모든 법적 절차를 동원해서 사실관계를 명명백백하게 밝혀 의혹에서 벗어날 뿐만 아니라, 정치적 목적으로 대통령을 괴롭힌 의혹 제기자들에겐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게 정상이고 마땅히 그래야 한다. 그럼에도 말이 없다. 청와대는 간간이 사실무근이라는 말만 할 뿐 어떤 유의미한 해명도 하지 않았다. … 상황이 이 정도면 게임은 끝난 것이다. 최순실 게이트는 이제 의혹이 아니라 사실로 확정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관련자 모두가 사실상 자백한 거나 마찬가지다. 의제자백 했다는 말이다.” “바리사이들의 누룩 곧 위선을 조심하여라.”(루카 12,1)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루카 12,2) 복음 선포에 여념이 없으셨던 예수님께서 어느 날 바리사이의 집에 식사 초대를 받으셨습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여야 할 식사 자리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을 심하게 꾸짖으십니다. 겉은 깨끗하지만 속은 탐욕과 사욕으로 가득하다고(루카 11,39). 외적인 규정은 충실히 지키지만 의로움과 하느님 사랑은 외면한다고(루카 11,42). 오만하게 생색내기를 즐기고(루카 11,43), 겉만 번드르르한 무덤 같다고(루카 11,44).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바리사리들의 누룩 곧 위선을 조심하여라.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루카 12,1-2) 위선자들, 특히 사회 지도층에 있는 위선자들에 대한 엄중한 경고이면서 이들의 위선으로 말미암아 고통 받고 있는 이들에 대한 위로와 희망의 말씀입니다. ‘최순실 진실’을 대통령, 청와대 관계자 등 ‘최순실 의혹’의 당사자로 지목받고 있는 사회 고위층 인사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여전히 침묵이나 사실무근이라는 말로 일관하며 마침내 드러날 진실을 묻으려는 이들에게 도덕성에 뿌리를 둔 당당함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지금이라도 숨겨놓은 것을 드러내고 감추었던 것을 알림으로써 국민 앞에 민낯으로 서야 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최순실 의혹’의 당사자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고귀한 “책임 있는 권위”, 곧 “봉사의 정신으로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하는 덕목들(인내, 겸손, 온건, 애덕, 함께하려는 노력)에 따라 행사되는 권위, 명예나 사사로운 이익이 아니라 공동선을 활동의 참된 목표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이 행사하는 권위”(간추린 사회 교리, 410항)를 값싼 노리개로 전락시킨 책임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입니다. * 상지종 신부(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장) - 1999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의정부교구 파주 교하본당 주임 및 8지구장으로 사목하고 있다. 또, 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6년 10월 30일, 상지종 신부(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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