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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회교리 아카데미: 백족지충(白足之蟲)은 지사불강(至死不?)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7-01-16 조회수3,179 추천수0

[사회교리 아카데미] 백족지충(白足之蟲)은 지사불강(至死不?)


서로 1등하려 싸우는 것이 교육?

 

 

백범(白凡) 김구 선생은 쟁족(爭足)운동을 제안했습니다. 서로 다리가 되려고 싸우자는 제안입니다. 이와 대립되는 말로 쟁두(爭頭)운동을 말할 수 있습니다. 쟁두운동은 머리가 되려는 싸움, 즉 우두머리가 되려고 서로 싸우는 것을 말합니다. 김구 선생은 이 말을 매우 투박하고 거칠게 표현하여 ‘다리 싸움, 대가리 싸움’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두 가지 싸움에서 다리 싸움을 하자고 제안한 이유는, 우두머리가 되려는 욕심에 싸우다가 서로 분열되므로 대가리 싸움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속담에는 ‘백개의 다리를 가진 벌레는 죽어도 쓰러지지 않는다’는 뜻으로 ‘백족지충(白足之蟲)은 지사불강(至死不?)’이란 말이 있습니다. 다리가 많은 벌레는 쓰러지지 않습니다. 다리가 많은 지네는 쓰러지려고 해도 쓰러질 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김구 선생은 우두머리 자리를 다투지 말고 낮은 자리를 다투자고 제안하고 자신도 스스로 상해 임시정부의 문지기나 청소부가 되려고 했습니다. 또한 “얻고자 하는 자는 잃고 잃고자 하는 자는 얻는다”고 말하며 “높은 자리를 요구하는 자는 낮아지고, 낮은 자리를 요구하는 자는 높아진다”면서 높은 자리를 다투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성경도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루카 14,11)’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김구 선생의 이런 가르침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합니다. 우리 현실을 지배하는 가치관이 어떤 것인지 요즘의 나라 상황에서 확연히 드러납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그리고 그의 딸, 정유라가 이화여대에 입학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교수들의 불의에서 대학교육의 모습은 여과 없이 폭로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욕망을 위해서 어떤 원칙도, 법도 없이 교육의 목적을 처참하게 짓밟았습니다. 부정으로 성적을 만들어 남의 자리를 빼앗고, 시험을 치루지 않았음에도 성적을 조작하는 등 교육현장을 모함과 암투로 변질시켜버렸습니다. 이는 교육을 빙자한 도적질일 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의 궁극목적’을 말하고 ‘사회의 선익을 지향’하는 전인교육은 사치스런 일이 되고 나아가 김구 선생이 말한 ‘쟁족’운동이란 웃음거리일 뿐입니다. 이런 살벌한 교육 현실은 결코 김구 선생의 ‘다리 싸움’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오로지 ‘대가리 싸움’으로 피 터지는 승부만 남은 교육에서 지금 나라를 떠들썩하게 하는 정유라의 고교와 대학의 입학 비리는 당연한 결과이며 우리들의 자화상입니다. 

 

무릇 교육은 ‘인간 존엄을 온전히 존중하면서 인간을 양성한다(간추린 사회교리 238항)’고 합니다. 그러나 1등만 살아남는 현재의 교육에서 인간 존엄을 구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오로지 일류 대학만을 바라보게 하는 대학 서열화, 그에 따른 높은 사교육비와 치열한 경쟁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아이들, 이것은 형태를 달리한 폭력일 뿐 결코 교육이 아닙니다.  

 

간추린 사회교리 242항은 “모든 참 교육은 ‘인간의 궁극 목적과 더불어 사회의 선익을 지향하는 인격 형성을 추구한다. 인간은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며 어른이 되어 그 사회의 책임을 맡을 것이다.’ 말과 삶의 증언으로 자녀들이 정의와 사랑이라는 근본적 덕행을 키워 나감으로써 대화와 만남, 사회성, 합법성, 연대와 정의를 교육받을 때 이러한 전인 교육이 보장된다”고 합니다. 김구 선생이 ‘쟁족’ 운동을 제안한 때는 1949년 1월이었습니다. 아! 백범 선생이 하염없이 그리운 1월입니다.

 

* 양운기 수사(한국순교복자수도회) - 한국순교복자수도회 소속.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상임위원이며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이다. 현재 나루터 공동체에서 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7년 1월 15일, 양운기 수사(한국순교복자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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