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고 답하기] 사회교리는 사회적? 사회주의적? ‘사회적’(social)과 ‘사회주의적’(socialistic)이라는 말은 다릅니다. 그런데 한국말도 비슷하고 영어도 비슷하고 그 의미도 비슷한 것 같아서 이따금 혼동되어 사용됩니다. 이렇게 엇비슷해 보이니까, 가톨릭 교회의 사회교리가 사회주의와 조금이라도 비슷한 것이 아니냐고 오해하는 분들도 더러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말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우리 교회의 가르침은 ‘사회주의’에 토대를 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가톨릭 교회의 사회교리는 ‘사회적’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인간은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은 백지가 아닙니다. 인간은 하느님이 당신의 피조물에 새겨 넣으신 자연의 질서와 법칙으로 빚어졌습니다”(YouCat 45항). 우리 인간 안에는 하느님께서 창조 때 새겨 넣으신 본성이 뚜렷하게 존재합니다. 자연의 질서와 법칙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 본성에 순응하고 조화하면 우리는 참된 행복과 기쁨을 누리며 산다고 믿습니다. 그 본성을 거스르면 죄를 짓게 됩니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무리를 지어 살게 하셨습니다. 창세기를 보면, 하느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만드시어 가정이라는 가장 원초적 사회가 이루어짐으로써 창조가 완성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사회적 존재인 것입니다. 사도신경을 바칠 때, 우리는 “성인들의 통공을 믿으며”라고 욉니다. 통공은 희생과 기도 등의 공(功)이 통(通)한다는 뜻입니다. 곧 천국과 연옥 등에서 무리를 이루고 있는 죽은 사람들의 기도와 지상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의 희생과 기도가 서로 통한다는 믿음입니다. 개인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통한다는 믿음입니다. 죽은 사람들도 무리를 이루고 있고 산 사람도 무리를 이루고 있어서 서로 격려하고 힘을 주는 관계라는 말입니다. 게다가 그런 기도와 희생으로써 죽음을 이기고 서로 이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은 철저하게 사회적 존재입니다. 인간은 땅에서와 마찬가지로 하늘에서도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습니다”(DoCat 22항). 인간을 사회적 존재로 만드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그 창조질서는 너무도 크고 강력해서 죽어서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다시 말하면, 죽음도 이기지 못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사회적 본성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회적’이라는 말은 ‘공동체적’(communal)이라는 말과 거의 같은 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창조계의 모든 것은 홀로 존재하지 않고 깊은 인연 속에서 서로 기대어 존재합니다. 인간이 서로에 대한 의무와 권리를 충실히 수행하고 더 나아가 약한 자를 돕고 돌보는 것이 공동체적 본성에 충실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인간과 자연이 서로 조화롭게 사는 세상도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랜 세월 그리스도교가 발전한 유럽의 언어에서는 ‘비사회적’(asocial)이라는 말이 ‘반사회적’(anti-social)이라는 말과 동의어로 쓰여, 때로는 어떤 사람을 비하할 때 사용됩니다. 그 반대말인 ‘친사회적’(pro-social)이라는 말은 대단한 칭찬의 뜻이어서, 유치원부터 중요하게 가르치는 덕목이기도 합니다. 반사회적인 태도는 창조질서를 거스르는 것입니다. 가톨릭 사회교리는 친사회적 실천이 우리 인간 공동체를 본성적으로 이롭게 한다고 가르칩니다. [2017년 2월 5일 연중 제5주일 의정부주보 7면, 주원준 토마스(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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