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교리서 DOCTRINE

교리 자료실

제목 사회교리 아카데미: 연대(連帶)는 의무입니다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7-03-07 조회수3,165 추천수1

[사회교리 아카데미] 연대(連帶)는 의무입니다


억압 당한 이들에게 손을 내밀라

 

 

부산 지하철 1호선 초량역 5번과 7번 출구 가운데 일본 총영사관 후문이 있습니다. 여기 지난해 12월 31일 국내 37번째 위안부 소녀상이 세워졌습니다. 뜻있는 부산시민들이 ‘연대’하여 자금을 모아 세운 것이지요. 그런데 그 후 일본은 나가미네 야스마사 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했고 지금껏 한국에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부산에 있는 소녀상을 철거하라고 겁박하고 으름장을 놓으면서 말입니다.

 

저희 수도원에 갈 때 서울 지하철 4호선 한성대역 6번 출구 정류장에서 버스를 탑니다. 여기에 2015년 10월 28일 한·중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졌습니다. 다른 37개 소녀상은 한국 소녀 홀로 옆의 빈자리를 지키고 있어 외로워 보이지만 한·중 평화의 소녀상은 한·중의 두 소녀가 ‘연대’하고 있어 외로워 보이지 않습니다. 옆 빈자리 포함, 의자가 셋으로 또 다른 ‘연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소녀상 의자 뒤에는 네 발자국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는데, 네 발자국만 움직이면 ‘연대’할 수 있다고 호소하고 있는 중입니다. 한국과 중국이 마음 모아 ‘연대’하여 함께 만든 소녀상은 보는 사람들에게 ‘연대’의 중요함을 알리고 있습니다.

 

일제(日帝)는 14~18세 소녀들을 성노예로 착취한 반인륜적이고 반인권적인 범죄행위를 인정 않고 식민지배와 전쟁범죄에 대한 진정한 사죄와 배상도 않고 있습니다. 가해자가 아니라는 발뺌이지요. 대사를 소환하고 소녀상을 철거하라는 으름장을 놓을 것이 아니라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목소리에 답하고 사죄할 일입니다. 한국 외교당국 역시 2015년 12월 28일에 있었던 일본과 협상 내용을 공개하고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90세 할머니들 요구를 들어 다시 협상에 나서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는 변두리, 나자렛 빈민가 사람들과 ‘연대’하기 위해 피지배자로 태어나셨고 삼십여 년을 ‘연대’하며 살았습니다. 그분은 지배하고 강제하며 억압하는 지배자들의 모습을 똑바로 보았고 기억하고 있기에 제국에 폭력을 당한 백성들과 일생을 ‘연대’ 하셨습니다. 로마제국의 압제와 억압은 일본제국의 침략과 만행과 한 치 다를 바 없습니다. 일제에 끌려가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었던 수많은 소녀들의 삶에서 로마제국의 억압과 압제를 받아야 했던 예수님의 모습이 겹쳐집니다. 때문에 제국의 폭력과 범죄로 소녀들이 끌려간 것과 나자렛에서 예수님 당한 억압은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은 예수님의 ‘연대’입니다.

 

이 같은 예수님의 ‘연대’와 애덕을 ‘우리를 구원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나자렛 예수님께서는 연대와 애덕의 관계를 모든 사람 앞에 밝게 비추어 주심으로써 이 관계의 온전한 의미를 밝혀주십니다.”(간추린 사회교리 196항) 이러한 “연대성, 연대(Solidarity)는 우리 각자와 사회, 그리고 서로 의존하고 유대를 나누며 돌봐야 한다(194항)”는 사회교리의 원리가 됩니다. 이는 사랑과 정의의 의무이며 신앙인이 실천해야 할 덕목입니다. 할머니들이 이제 아흔을 넘어서고 39분만 생존해 계십니다. 아! 피해자는 있고 가해자는 없는 기막힌 현실입니다.

 

* 양운기 수사(한국순교복자수도회) - 한국순교복자수도회 소속.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상임위원이며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이다. 현재 나루터 공동체에서 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7년 3월 5일, 상지종 신부(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장)]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