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리 아카데미] 대통령 탄핵과 민주주의
부패한 권력, 하느님 심판 면할 수 없다 지난 3월 10일 역사적인 대통령 탄핵사건 판결에서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대통령을 파면했습니다. “피청구인의 위헌·위법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행위라고 보아야 합니다. 피청구인의 법 위배행위가 헌법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가 중대하므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할 것입니다.” 이리하여 지난 4년간 헌법 위에 군림하며 절대 권력을 행사하던 대통령은 치욕스럽게 권좌에서 내려졌습니다. 비참한 종말을 고한 최고 권력자에 대해 연민의 정을 느끼는 이들도 없지 않지만, 대다수 국민은 “민주주의 제도의 가장 심각한 결함 가운데 하나”인 “도덕 원칙과 사회 정의 규범을 한꺼번에 짓밟는 정치적인 부패”(간추린 사회 교리, 411항)에 대한 정의로운 심판에 환호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너희에게서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아, 그 소출을 내는 민족에게 주실 것이다.”(마태 21,43) 그리스도교 신앙의 관점에서 보면, 사람의 일은 곧 하느님의 일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맡은바 고유한 임무를 통하여 ‘사랑, 신의, 선, 정의, 평화’라는 하느님 뜻을 드러내야 합니다. 대통령을 뽑는 국민도, 국민이 뽑는 대통령도 예외는 없습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뜻을 저버리고 ‘증오, 불신, 악, 불의, 분쟁’을 양산한다면, 하느님의 심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마태 21,33-46)는 이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비유에는 ‘죽이는 소작인’과 ‘죽임당하는 종’, ‘죽임당하는 주인의 아들’이 등장합니다. ‘죽이는 이’와 ‘죽임당하는 이’ 모두 원래 주인에게 귀한 사명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한편은 주인의 뜻을 이루려 죽임을 당하고, 다른 한편은 주인의 뜻을 거스르기 위해 죽입니다. 당장은 죽이는 이의 승리처럼 보이지만, 마침내 죽이는 이의 죽음으로 귀결될 것입니다. “포도밭 주인이 와서 그 소작인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그렇게 악한 자들은 가차 없이 없애 버리고, 제때에 소출을 바치는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밭을 내줄 것입니다.”(21,40-41) 위임받은 통치 임무에 소홀한 통치자는 바꿔야 한다! 박근혜 정권 4년간, 세월호 참사, 일본군 위안부 문제 굴욕적 합의, 사드 배치, 노동자·농민 탄압, 장애인 차별, 역사 국정교과서 추진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문제들로 많은 이들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고, 수많은 이들은 죽임당할 처지에서 침묵을 강요받았습니다.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에 나오는 ‘죽임당하는 종’처럼, ‘죽이는 소작인’ 같은 권력자와 그 권력에 기생했던 이들에 의해서 말입니다. 무너질 것 같지 않은 권력의 철옹성을 깨뜨리고, 작년 10월 29일부터 시작해 지난 134일간 총 20차례의 촛불집회를 거치면서 연인원 1600만 명이 참가한 고귀한 민주주의 혁명은 작은 승리를 일궈냈습니다. 작은 촛불이 하나둘 모여 이룬 민주주의의 거대한 횃불은 어느 누구도 헌법 위에 군림할 수 없음을 만천하에 드러냈습니다. 비폭력 저항을 통해 국민들은 “정치 권위의 주체”로서 스스로를 당당하게 자리매김하였고, “자신들이 선출한 대표들에게 주권의 행사를 위임하지만, 통치 임무를 맡은 이들의 활동을 평가하고 그들이 충분히 역할을 수행하지 못할 경우 바꿈으로써 이러한 주권을 주장할 수 있는 특권”(간추린 사회 교리, 395항)을 행사했습니다. 아직 축배를 들기에는 이릅니다. 철저히 감시받고 통제되지 않는 권력은 언제라도 부패에 물들어 스스로를 절대화시킬 수 있기에, 민주주의를 이루어가는 여정에서 ‘사랑, 신의, 선, 정의, 평화’라는 하느님 뜻에 비추어 정치권력에 대한 감시, 비판, 통제의 고삐를 놓아서는 결코 안 됩니다. * 상지종 신부(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장) - 1999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의정부교구 파주 교하본당 주임 및 8지구장으로 사목하고 있다. 또, 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7년 3월 26일, 상지종 신부(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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