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리 아카데미] 부활, 그것은 세월호 희생자들의 염원에 연대하는 것입니다
진실의 선택은 깊은 고뇌와 갈등 동반 참치 원양어선 ‘광명 87호’의 선장 전제용은 1985년 11월 14일, 1년여의 조업을 마치고 남중국해에서 부산항을 향할 때, 10여 명 정도가 SOS를 외치는 작은 난파선, 베트남의 보트피플을 봤습니다. 그는 보트피플에 관여치 말라는 정부와 회사의 지침대로 그냥 지나쳤습니다. 순간 전제용은 “지침인가? 양심인가? 모른 척 눈 한 번 감을 것인가? 진실하게 살고 불이익을 당할 것인가?” 한 인간의 삶과 미래가 뒤바뀌는 결단의 찰나, 그는 선원들을 설득하고 배를 돌렸습니다. 25번째의 배가 자신들을 외면하고 26번째의 ‘광명 27호’마저 멀어져 갈 때, 절망했던 보트엔 10여 명이 아닌 96명의 난민이 있었습니다. 사흘을 굶은 임산부, 기진맥진한 난민들, 부산항까지는 10일, 그리고 25명의 선원이 버틸 수 있는 식량이 있었습니다. ‘모든 책임은 선장인 내가 진다. 96명과 함께 부산항까지 10일을 함께 버티기로’ 하고 회사에 연락했습니다. 여성과 어린이는 선원들의 침실에, 노인과 환자는 선장실에서 치료했습니다. 식량이 떨어진 것을 알게 된 난민들에게 ‘우리가 잡은 참치가 있다. 여러분은 안전하다’고 안심시키며 부산항에 도착했을 때는 11월 29일, 10일이 아닌 14일이 걸렸습니다. 지침을 어긴 그는 모든 선원과 함께 해고되고 기관에 끌려가 고문당하는 등 대가는 혹독했습니다. 직장을 찾으려 했으나 이력서를 받아주지 않아 고향 경남 통영에서 멍게 양식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그때 결단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생명을 외면하려 했던 자신의 태도를 부끄러워했습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생사가 달린 상황에서 선장의 본분은 구조다.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불이익을 계산할 문제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가 뱃머리를 돌릴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장밋빛 미래가 펼쳐질 것으로 생각했을까요? 그는 뱃머리를 돌리는 순간 미래가 암흑에 덮일 것을 알았다고 했습니다. 교종 프란치스코는 “무관심의 세계화는 다른 이의 고통스러운 절규 앞에서 함께 아파할 줄 모르고 다른 이의 고통 앞에서도 눈물을 흘리지 않으며 그들을 도울 필요마저 느끼지 못합니다. 이 모든 것이 마치 다른 이의 책임이지 우리 자신의 책임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복음의 기쁨」 54항)라며 진단했습니다. 진실의 선택은 깊은 고뇌와 갈등을 동반합니다. 미래가 어둠에 덮이고 모든 것을 잃을 줄 알면서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진실, 오직 그것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빛과 생명을 가장 필요로 하는 바로 그곳에, 교회가 있어야 합니다.”(「복음의 기쁨」 30항) 전제용 선장의 찰나의 결단은 그가 새롭게 태어나는 부활이며 새로운 세상을 향한 눈뜸(開眼)이었고 96명에게는 새로운 삶이 열린 부활의 빛이었습니다. 2014년 4월 16일, 3년 전 오늘,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을 기억합니다. 우리가 그들의 부활의 염원에 함께하는 전제용 선장이 될 수 없을까요? 부활이란 우리가 죽은 후 어디, 다른 장소에서 다시 만나는 것이라기보다 우리가 지금 그들 곁에서 그들 염원에 함께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들의 고통에, 그들의 아픔에 눈 감기보다 계산 없이 한걸음 다가서는 것이 곧 부활이 아닐까요? 그들의 십자가의 싸움에 연대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부활이 아닐까요? 제가 당치않은 소설을 쓰는 것일까요? 봄빛 가득한 부활절 아침 묵상입니다. * 양운기 수사(한국순교복자수도회) - 한국순교복자수도회 소속.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상임위원이며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이다. 현재 나루터 공동체에서 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7년 4월 16일, 양운기 수사(한국순교복자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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