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리 아카데미] 5·18과 세월호의 사람들
부패한 권력의 돌 치우자 1980년 광주에, 2014년 세월호에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존엄한 사람들이 각자의 작은 꿈을 품고 그곳에 있었습니다. “되풀이될 수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로서 자신을 이해하고 통제하고 스스로 결정할 능력이 있는 나”(「간추린 사회교리」 131항)로 단 한 번 주어진 귀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탓 없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권력에 눈먼 탐욕스런 이들의 총칼에 스러졌고, 무수히 많은 의혹을 담은 사고와 구조하지 않은 불의한 음모로 수장되었습니다. 1980년 광주에, 2014년 세월호에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죽임’의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진 절체절명의 순간에 ‘살림’의 몸부림치던 아름다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계엄군에 의해 고립된 죽음의 도시에서 내 것 네 것 나누지 않고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요한 6,9)로 주린 배를 채우며 자유와 해방을 만끽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다 깊이 잠기면서도 구명복을 내어주며 먼저 탈출하라고 울부짖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죽임에 맞서 살림의 숭고함을 드러낸 참 사람들이었습니다. 1980년 광주에서, 2014년 진도 앞바다에서 아름다운 사람들이 무참히 죽었습니다. 죽인 자들은 죽임으로 끝내지 않고, 죽은 이들을 어둠 속에 가두었습니다. 죽은 이들을 애도하며 진실을 갈망하는 이들을 억압했습니다. 광주를 피로 물들인 주역들이 법의 심판을 받기까지 15년이 걸렸고, 세월호는 3년 동안 진도 앞바다에 가라앉아 있어야 했습니다. 불의한 ‘사람들’이 무고한 ‘사람들’을 죽인 것도 모자라, 죽임의 진실을 거짓의 무덤에 가두고, 행여 진실이 밝혀질세라 폭력의 돌덩이로 무덤을 막은 어두운 시간이었습니다. “돌을 치워라”(요한 11,38)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벌써 냄새가 나는 라자로를 다시 살리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무엇보다도 먼저 ‘무덤을 막은 돌’을 치우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산 이와 죽은 이를 가르는 거대한 장벽을 허물고, 죽은 이를 다시 산 이들의 세상으로 부르십니다.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요한 11,43) 그리고 죽은 이를 감쌌던 천과 수건을 벗겨내고 참으로 살아있음을 드러내라 하십니다. “그를 풀어 주어 걸어가게 하여라.”(요한 11,44) 사람을 보고 사람을 살려야 합니다 광주 학살의 주역은 여전히 당당하고, 세월호 침몰과 한 사람도 구하지 않는 패륜의 핵심 관계자들은 침묵으로 책임을 모면하려 합니다. 여전히 광주의 ‘사람들’과 세월호의 ‘사람들’을 무덤 깊숙이 가두고 ‘사악한 거짓과 부패한 권력의 돌’로 막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진실에 반항하는 거짓에 물든 사람들, 빛을 거부하는 어둠의 사람들, 살림에 맞서는 죽임의 사람들이 엄연히 있습니다. 스스로 사람이기를 포기한 사람들입니다. 사람을 보아야 합니다. ‘죽임당한 이들’과 ‘죽인 이들’ 모두를 보아야 합니다.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에서 인간은 사회 문제에 관한 가톨릭 사상의 핵심이며 정신”(「간추린 사회교리」 107항)이기 때문입니다. 돌을 치워야 합니다. ‘죽임당한 이들’이 빛나는 진실의 세상에서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돌을 치워야 합니다. ‘죽인 이들’이 참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돌을 치워야 합니다. * 상지종 신부(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장) - 1999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의정부교구 파주 교하본당 주임 및 8지구장으로 사목하고 있다. 또, 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7년 6월 4일, 상지종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