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리 아카데미] 사드 가고 소성에 평화!
‘평화를 위한 칼’ 있을 수 없습니다 시원하게 뚫린 중부내륙고속도로를 달리다 남김천 톨게이트에서 빠져나와 소성리를 향하는 길은 여느 시골 풍경처럼 평화롭습니다. 꽤 넓은 지방도로를 지나 소성리 마을로 향하는 좁은 길로 들어서면, 어린 시절 어머니 품처럼 푸근한 낮은 언덕과 산들이 가장 먼저 낯선 손님을 반갑게 맞습니다. 하지만 마을 어귀에 이르면 사뭇 풍경이 달라집니다. “평화가 안보다! 한반도 사드 배치 중단하라!” “사드 가고 평화 오라!” 현수막들이 즐비합니다. “평화”, “새질서”, “공동체”, “온다 소성에 평화”, “HERE COMES PEACE”, “사드 OUT”, “행복”, “폭력”, “불법”, “미군 가라”, “사람과 동물의 차이”…. 형형색색 글씨로 장식한 돌무더기들이 마을 곳곳에 쌓여 있습니다. 소성리를 닮은 소성리 사람들이 대대로 평화를 가꾸던 곳이 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사드) 배치로 울부짖고 있습니다. “나는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마태 10,34) 평화이신 예수님께서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오셨답니다. 이 칼, 평화를 이루는 이들이 아니라 평화를 짓밟는 이들에게 쥐어질 칼입니다. 평화이신 예수님에게 향할 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기꺼이 이 칼에 쓰러지심으로써 당신이 평화이심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칼을 든 이들은 침묵과 굴종이 평화라고 강변하지만, 십자가라는 칼에 쓰러지시는 힘없는 예수님은 정의와 사랑이 평화라고 말씀하십니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요한 14,27) 칼이 아니라 평화를! 북한의 핵무기라는 칼에 한미 당국은 사드라는 칼로 맞서려 합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한반도 안에서 이미 그 실효성이 의심되는 사드 자체의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칼과 칼이 부딪히면 죽음만이 있을 뿐입니다. 설사 당장 죽지 않더라도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불안한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평화는 평화고, 칼은 칼일 뿐입니다. ‘평화를 위한 칼’은 어디에도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이미 사드 배치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교회 입장은 “인종, 민족, 국가, 종교 간 갈등이 점차 심화되는 현실에서 강대국의 충돌 지점에 위치한 한반도의 평화 유지가 갖는 의미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도권 방어에 대한 현실적 실효성조차 확보하지 못한 사드 배치는 한반도가 새로운 냉전체제의 중심이 된다는 점에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교회는 ‘평화는 단순히 전쟁의 부재만이 아니며, 오로지 적대 세력의 균형 유지로 전락될 수도 없다’(「사목헌장」 76항)고 천명한다. 군사력의 증강을 통해 한반도의 위기가 진정되고, 평화가 오리라는 기대는 버려야 한다. 평화는 인간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하며, 정의와 사랑에 기초한 질서의 확립을 통해 이룩된다.” - 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사드)의 한반도 배치 결정에 대한 한국 천주교회의 입장(2016. 7. 15.) ‘평화’와 ‘칼’, 우리 앞에 두 가지 길이 놓여 있습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벗님들, 어느 길을 걸으시겠습니까? 평화의 땅 소성리에서 자고 나란 평화의 성자(聖者), 원불교 2대 종법사인 정산 송규 종사(1900~1962)의 말씀에서 답을 찾고 싶습니다. “세계 평화는 한 사람 한 사람의 화하는 마음에서 비롯되고, 함께하는 마음이 모여 곧 세계 평화를 만듭니다. 어떤 어려움에도 평화한 마음을 놓지 말아야 세상에 평화를 불러오는 주인이 됩니다.” * 상지종 신부(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장) - 1999년 사제품을 받았으며, 의정부교구 파주 교하본당 주임 및 8지구장으로 사목하고 있다. 또, 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7년 7월 30일, 상지종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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