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성모공경 / 특별기고] 우리는 왜 성모님을 공경할까요? 우리는 성모님처럼 살면 우리도 그분의 영광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어떤 것이 ‘성모님처럼’ 사는 것인지, 그분을 어떻게 공경하고 그분의 어떤 점을 따르고자 노력하면 될지, 단번에 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교구 총대리 손희송 주교가 성모 승천 대축일을 맞아 신자 여러분을 위해 펜을 들었습니다. 성모 신심에 대한 명쾌하고 쉬운 해설을 전합니다. 가톨릭교회는 성모님을 각별하게 공경합니다. 그래서 오해도 많이 받습니다. 일부 개신교 신자들을 비롯해서 적지 않은 사람들은 가톨릭은 예수님이 아닌 성모님을 믿는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오해에도 불구하고 왜 가톨릭교회는 성모님을 공경하는 것일까요? 인간적인 측면에서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낳은 어머니를 존경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성모 공경의 근본적인 이유는 아닙니다. 더 중요한 이유는 성모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고 기르신 분으로서, 그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따르는 길, 곧 신앙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셨다는 데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 어느 날 나자렛 처녀 마리아에게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 구세주의 어머니가 될 것이라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전합니다. 성모님은 요셉과 정혼한 사이였지만, 아직 함께 살기 전이었습니다. 그분은 ‘처녀의 몸인데 어떻게 아이를 가질 수 있느냐’고 반문합니다. 천사가 ‘성령이 너에게 내려오시면 가능하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고 대답하자, 마리아는 하느님의 계획을 수락합니다.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임신한다는 것은 당시 사회 환경에서는 엄청나게 위험한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성모님은 전능하신 하느님을 믿는 마음으로 그분의 계획을 받아들이십니다. 하느님을 의지하지 못하는 사람은 불안감 때문에 자신의 이익과 편리, 체면과 권리를 움켜쥐고 그것을 내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하지만 신앙인은 성모님처럼 하느님을 굳건하게 신뢰하기 때문에, 남들이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기꺼이 포기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를 지는 삶입니다. 십자가의 끝은 부활이며 영광입니다. “제가 원하는 것을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십시오.”(마르 14,36)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기뻐하는 사람 성모님은 가브리엘 천사가 떠나자 곧바로 친척 엘리사벳을 찾아갑니다. 엘리사벳이 마리아에게 “주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행복하십니다”(루카 1,45 참조)라고 칭송합니다. 마리아는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루카 1,46-48)이라고 응답합니다. 성모님은 순박한 시골처녀인 자신을 구세주의 어머니로 선택해주신 하느님의 큰 은총에 깊이 감사하며 크게 기뻐하신 것입니다. 신앙인은 자신이 보잘것없는 사람이지만, 세례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가 됐다는 것을 알고 기뻐합니다. 참된 신앙인은 어떤 경우에도 자신이 하느님 은총 안에 있다는 것을 굳건히 믿기 때문에, 역경 중에서도 감사하며 기쁨을 잃지 않습니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 5,16-18) 하느님을 신뢰하며 인내하는 사람 성모님은 예수님과 관련된 모든 것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곰곰이 생각하면서 기다리셨습니다. 아기 예수를 낳으신 후 목동들이 경배하러 오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자 성모님은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기셨습니다.”(루카 2,19 참조) 성모님은 이런 모습으로 모든 신앙인의 모범이 되십니다. “하느님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크신 분”(1요한 3,20 참조)이고, 그래서 그분의 뜻과 계획을 낱낱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기에 성모님처럼 참고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참고 인내하면서 기다리는 사람만이 하느님의 깊은 뜻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신앙인은 성모님처럼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간직하여 인내로써 열매를 맺는 사람들”(루카 8,15)이 되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성모님은 잔칫집의 어려운 사정을 잘 살피시고 도와주셨습니다. 당시 혼인 잔치에서 술이 떨어졌다는 것은 손님들에 대한 큰 결례로서 혼주의 체면이 크게 손상되는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취흥에 겨워 이런 난감한 상황을 몰랐지만, 성모님은 그것을 알아채고 아들 예수님께 조용히 그 집 사정을 알려주십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시큰둥하게 반응하십니다.(요한 2,4 참조) 하지만 성모님은 이해하기 어려운 대답에 실망하지 않으시고 아들을 계속 신뢰하십니다. 결국 예수님은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시어 잔칫집의 어려운 사정을 해결해주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은 성모님처럼 섬세한 마음으로 다른 이들의 걱정과 어려움을 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의 마음으로 관심을 갖고 있을 때 이웃의 말 못할 어려움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또한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도와줄 때는 성모님처럼 조용히, 가능한 한 소리 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함께 기도하는 사람 예수님이 부활하신 직후에 성모님은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는 공동체 안에 머무르셨습니다. 제자들은 모두, “여러 여자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그분의 형제들과 함께 한마음으로 기도에 전념”(사도 1,14) 했습니다. 성모님은 온 마음으로 기도하는 분이었고, 공동체와 함께 하는 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 역시 성모님처럼 온 마음으로 기도하는 사람, 교회 공동체와 함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진정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늘 자신보다는 교회 공동체의 유익을 생각하고, 이해와 용서를 통해 화합과 일치를 추구합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성모님을 닮아, 마음을 다해 기도하면서 교회 공동체 안에서 교회와 함께하면서 교회의 일치와 화합을 이룩하고 강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한마음으로’ 기도하면서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가운데 온 백성에게서 호감을”(사도 2,46-47 참조) 얻었던 예루살렘 초대교회 공동체처럼 될 것입니다. 인생에서도 마음과 힘을 보태주는 사람이 곁에 있으면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인(聖人)들, 무엇보다도 성인들 중의 으뜸이신 성모 마리아는 하느님을 향한 우리 신앙 여정에서 모범적으로 살아간 분으로서, 지금은 우리 곁에 계시면서 마음과 힘을 보태주시는 분입니다. 성모님은 우리에게 하느님을 믿으면서 그분의 뜻대로 사랑을 실천하고, 그분께 오롯한 희망을 걸고 사는 것이 분명 옳은 길이며 보람과 행복을 주는 길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길을 갈수 있도록 도움을 주십니다. 인생길을 가다가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나면 굳센 믿음의 여인 마리아를 바라보면서 그분께 도움을 청합시다. “천주의 성모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2017년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 서울주보 특별판 가톨릭서울 3면, 손희송 베네딕토 주교(서울대교구 총대리)] 성모 마리아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가르침 성모님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은 무엇이 있을까요? 성모님에 관한 핵심 교리는 무엇이 있을까요? 이것만 기억하세요! * 천주의 모친 ·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테오토코스, Theotokos) 초대 교회부터 성모님을 ‘하느님의 어머니’로 부른 것은 마리아가 여신이기 때문이 아니라, 아드님이신 예수님의 신성, 곧 마리아가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낳았기 때문이다. 아울러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셨던 믿음(마태 12,48-50 참조)으로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신다. 성모님은 예수님의 형제자매, 곧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의 어머니이자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걸어가야 할 여정의 모범이므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마리아를 어머니로 부르며 마리아에게 우리를 위해 하느님께 간구할 것을 부탁드린다. *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에이-파르테노스, aei-Parthenos) “동정으로 잉태하셨으며, 동정으로 출산하셨고, 출산 후에도 동정으로 머무신다.” 성모님의 동정은 하느님의 전능을 드러내는 신비이며, 하느님이신 말씀이 인간이 되신 강생신비의 표징이다. 아울러 ‘동정’의 중요한 의미는 한 인간이 온전히 자신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느님께만 전적으로 봉헌했다는 데 있다. 마리아의 동정은 하느님께 전적으로 봉헌된 순결한 인간의 신비를 드러낸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루카 1,37) * 원죄없이 잉태 되신 마리아(임마쿨라타 콘셉시오, Immaculata Conceptio)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께서는 잉태되신 첫 순간부터 인류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와 전능하신 하느님의 유일무이한 은총의 특전으로 말미암아 원죄에 물들지 않고 보존되셨다.” 성모님은 성경에서 계시한 대로 ‘은총이 가득하신 분’이다. 이는 우리 인간의 구원이 전적으로 하느님의 은총에 기인하며, 인간의 죄는 하느님 구원에 결코 영향을 줄 수 없음을 가르친다. * 하늘에 올림을 받으신 마리아(아썸시오, Assumptio : 몽소승천) “원죄 없으신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며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께서는 지상 생애의 여정이 끝난 다음 그 영혼과 육신이 천상 영광 안에 받아들여지셨다.” 성모 승천은 모든 사람의 구원과 그 충만함이 이미 시작됐음을 나타내며, 그리스도인들이 사도신경을 통해 고백하는 ‘육신의 부활’과 ‘영원한 삶’이라는 희망이 성모님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났음을 의미한다. [2017년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 서울주보 특별판 가톨릭서울 3면, 가톨릭서울 편집부(서울대교구 홍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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