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의 사회교리] 참회와 속죄의 평화 1950년 11월 10일 자, 1951년 1월 14일 자 「천주교회보」를 보면, 참혹한 폭력의 소용돌이 ‘안에서’ 한국전쟁을 바라보았던 교회의 시각을 알 수 있습니다. 회보는 전쟁 기간 중에 유일하게 발행된 교회언론이었는데, 여기서 교회의 지도자들은 한국전쟁을 “무신론 공산주의 침략자들의 마수”이며 “(공산주의) 아편에 중독된 동족 아닌 동족이 가능한 온갖 악마적 방법을 다하여 빚어낸 참극”이라고 규정했습니다. 당시는 중국군의 개입으로 전세가 역전되기 시작한 시기였습니다. ‘북진통일’로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던 전쟁, 하지만 이제 그 참혹한 비극의 결말을 예측하기 어렵게 돼버린 것입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죽이는 지옥을 체험하면서 우리 교회가 한국전쟁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보였던 이유는 우선 공산주의 세력과의 적대관계를 꼽을 수 있습니다. 사실 천주교회는 전쟁이 발발하기 이전부터 공산주의자들과 첨예하게 대립했는데, 결국 이들에 의해 수많은 성직자와 신자들이 희생되는 현실을 체험하면서, 교회는 형제를 죽여야 하는 이 부조리한 전쟁을 악의 세력과 대결하는 성전(聖戰)으로 인식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한국전쟁 기간 중 교회는 신자들의 참전을 독려했으며, 일부 성직자들은 청년 신자들과 함께 ‘가톨릭 부대’ 창설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평화를 선포해야 하는 교회이지만, 침략하는 ‘적’에 대항하기 위해서 총을 들었던 교회, 폭력을 정당화하는 전쟁의 악이 우리 교회의 평화 ‘감수성’을 무뎌지게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교회는 일제강점기 침략전쟁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대동아전쟁에 충실하게 협력했는데, 이 시기의 「경향잡지」는 매호마다 신자들에게 전쟁 수행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라는 지침을 내렸습니다. 예를 들면, 잡지의 1942년 3월호에는 ‘대동아전쟁기구’라는 제목의 기도문이 등장합니다. 교회의 지도부가 다음과 같은 전쟁의 승리를 위한 기도문을 ‘매일 각 성당에서는 미사 후에, 그리고 각 가정에서는 아침기도나 저녁기도 후에 바칠 것’을 독려한 것입니다. “만민의 구원자이신 천주여 이제 대동아 건설을 목표로 하고 매진하는 우리나라에 강복하시며 우리나라에서 나신 성인 성녀들은 우리 기구를 전달하사 하여금 제1선에 나선 장병들에게는 무운(武運)이 날로날로 혁혁하게 하여 주시고 총후를 지키는 우리에게는 억조일심으로 각기 직역봉공에 전력을 다하게 하시고 일사보국(一死報國)하려는 결심과 용기를 우리에게 더욱 치성케 하여서 하루라도 속히 대동아 영원 평화를 확립하게 하시고 따라서 세계가 평화 중에 주의 성명을 찬미하게 하소서 아멘. 천주경, 성모경 각 세 번.” 일제강점기 전 국민이 동원되었던 전시체제에서, 가톨릭교회의 협력은 이러한 기도운동에 그치지 않았고 전쟁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기 위한 조직까지 결성하게 됩니다. ‘국민총력천주교경성교구연맹’과 같은 조직들이 청년 신자들의 참전을 독려했으며, 국방헌금과 병기 헌납운동을 장려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교회는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 등 수많은 민간인들이 희생된 비인도적인 전쟁에 매우 적극적으로 협조했으며 신자들이 전쟁에 참여하는 것을 애국으로 미화(美化)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일제강점기 동안 국가의 침략전쟁 수행에 무비판적으로 협력했던 경험, 그리고 공산주의에 대한 절대적인 증오는 한국 가톨릭교회가 무력 사용에 대해서 신학적인 성찰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해방공간에서부터 난무했던 성전(聖戰)이란 용어가 한국전쟁에도 너무 쉽게 적용된 것입니다. <간추린 사회교리>는 ‘평화에 대한 교회의 기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교회는 진정한 평화는 오로지 용서와 화해를 통해서만 가능해진다고 가르친다. 전쟁과 분쟁의 참혹한 결과를 마주할 때 용서하기가 쉽지 않다. 폭력은, 특히 그것이 ”잔인성과 고통의 가장 밑바닥에“ 이를 때, 고통의 무거운 짐을 지우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통은 전쟁 당사자 모두의 깊고 진실하며 용기 있는 반성, 참회로 깨끗해진 마음가짐으로 현재의 어려움에 맞설 수 있는 반성을 통해서만 없어질 수 있다. 용서받을 수 없는 과거의 짐은 오직 서로 용서하고 용서받을 때에만 받아들일 수 있다. 이것은 길고 힘든 과정이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간추린 사회교리> 517항) 이 땅의 평화를 위한 사명을 가진 한반도의 교회는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우리 민족의 화해를 위해 간절하게 노력해야 합니다. 서로를 두려워하는 이 분단의 구조 안에서, 형제를 살해했던 전쟁을 아직도 ‘종전(終戰)’하지 못한 이 부조리한 현실 가운데서, 교회는 이 적대와 분열의 악에 대항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 용서와 화해를 위해서 우리 교회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말씀처럼 용기 있게 반성해야 합니다. 교회 역시 전쟁이라는 악의 세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무죄한 사람을 죽이는 전쟁에 협력했던 잘못된 과거를, 악을 악으로 갚을 수밖에 없었던 나약한 시간들을 참회해야 하는 것입니다. 희망을 갖기 어려운 이 비참한 현실 속에서도 참회하고 속죄하려는 교회의 노력을 통해 용서의 기적이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평화가 불가능해 보이는 이 어두움 가운데서도 용서와 화해를 통해 그리스도의 평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믿음을 함께 고백했으면 좋겠습니다. [2017년 10월 1일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선교의 수호자) 대축일 의정부주보 5-6면, 강주석 베드로 신부(민족화해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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