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의 교회법 (41) 사죄경에서 죄를 용서한다고 했는데, 왜 보속을 해야 해요? “고해성사 중에 죄를 고백하고 사제로부터 사죄경을 받았으면 이미 죄를 용서받은 것인데 보속을 꼭 해야 하나요?” 하고 물으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죄(악한 행동, 惡行)를 범하면, 그 결과로 하느님과 나 그리고 나와 형제들과의 관계가 단절(죄의 상태)됩니다. 또한 동시에 죄(악행)에 대한 책임(죄책, 罰)을 지게 됩니다. 곧 죄는 관계의 단절(죄의 상태)과 죄책(벌)을 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흔히 ‘죄를 용서받았다’고 하면 단절된 관계가 회복되었다고 생각하기보다 죄에 대한 책임, 곧 벌(罰)을 면제받는 것으로 오해합니다. 교회법 960조는 ‘개별적인 온전한 고백과 사죄가 자기의 중죄를 자각하는 신자가 하느님과 교회와 화해하는 유일한 정상적 방식을 이룬다.’고 밝히면서 고해성사의 핵심은 죄에 대한 책임(벌)을 면제받는 것이 아니라 신자가 하느님과 교회와 화해하는 것임을 밝혀 줍니다. 예를 들어 한 아들이 홧김에 의도적으로 아버지가 아끼는 항아리를 발로 차서 깨트린 후에,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아버지께 나아가 솔직하게 악행을 고백하고 용서를 청하자, 아버지가 아들의 고백을 듣고 아들을 용서하면 두 사람의 관계가 다시 회복됩니다. 곧 죄를 용서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곧이어 아버지가 “네가 항아리를 깨트렸으니 아르바이트를 하여 다시 항아리 하나를 구해 놓아라.” 하고 말하자 아들이 “아버지께서 제 죄를 용서하셨는데 왜 새 항아리를 마련하라고 하시나요?” 하고 묻는다면, 아버지가 “이미 너의 죄를 용서하고 너를 다시 사랑하는 내 아들로 받아들이지 않았느냐 하지만 네가 지은 죄에 대한 책임은 네가 져야 하지 않느냐.” 하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누군가의 죄를 용서해 주는 것은 죄를 그냥 덮어 주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닙니다. 죄의 용서는 악행으로 인하여 서로 간에 단절된 관계를 회복시킨 후에, 상대로 하여금 지은 죄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하여 올바른 길로 가도록 격려합니다. 반면에 죄를 그냥 덮어 주는 것은 상대가 지은 죄에 대한 책임은 묻지 않으면서 오히려 마음속으로는 불편한 관계가 지속되는 관계 단절의 상태(죄의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말하자면 아버지가 항아리를 깨트린 아들의 죄를 알고 있으면서도 덮어 두고 아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으면서도 여전히 마음속으로는 아들에게 실망하고 있으며, 아들 또한 항아리를 깨트린 것에 대한 죄책감 속에서 아버지를 편하게 대하지 못하고 있는 단절된 관계(죄의 상태)가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해성사와 관련해서, 우선 먼저 용서를 통한 죄의 상태(관계 단절)의 화해와 죄의 책임(벌)에 대한 면제는 분명하게 구별해야 하고, 죄를 용서하는 것과 죄를 덮어 주는 것의 차이를 분명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죄를 지은 이는 진실한 통회 속에서 고해성사를 청하고 사제의 사죄경을 통해 죄의 상태(하느님과 형제들과 단절된 관계)에서 ‘완전하게 용서를 받은 것’입니다. 하지만 악행을 통해 세상을 어둡게 한 것만큼 기도, 선행, 참회고행 등을 통해 세상을 밝혀야 하는 책임(죄책)을 지게 되고 사제로부터 이에 해당하는 보속(補贖, satisfactio)을 받게 됩니다. [2018년 7월 1일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가톨릭제주 4면, 황태종 요셉 신부(제주교구 사법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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