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찾아서 – 교리] 하루 한 가지 질문 앞에 멈춰 서 보기 「천주교 요리문답」, 「주교요지」, 「가톨릭교회 교리서」 등 한국 천주교회가 가르치는 교리를 다룬 책들이 역사적으로 다양하게 생겨났습니다. 처음에는 그리스도교 신앙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다가 언젠가부터 이처럼 활자화되어 교리서로도 남게 되었습니다. 교리서의 주된 내용은 신앙 고백과 십계명, 주님의 기도와 일곱 가지 성사 등에 관한 것이었고, 지금도 그 내용에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이 교리서의 전통적인 형식은 선생님이 질문하고 학생이 답하는 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니까 일종의 ‘신앙 교육 안내서’입니다. 이 안내서가 있어서 집안에서도 부모가 자녀들에게 신앙을 알려 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경험 저는 집이 아닌 성당에서 신앙 지식을 처음 접했습니다. 첫영성체를 준비하며 토요일 오후가 되면 어김없이 교리를 배우러 성당에 갔습니다. 성당이 멀리 있기도 했지만, 그 일이 숫기 없는 제게는 무척이나 큰 용기를 요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주일 학교 교감이 아니셨다면, 또 누나가 같이 교리를 배우러 다니지 않았다면 그보다 한참 뒤에나 교리 수업을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있던 첫영성체 교리반은 대부분이 이미 유아 세례를 받은 초등생이었습니다. 우리 말고는 중학생 형이 한 명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우리는 모두 세례만 먼저 받았을 뿐 신앙 지식에서는 세례를 준비하는 성인 예비신자들과 마찬가지이거나, 나이가 어린 만큼 그리스도교 신앙에 대해 알고자 하는 동기 부여가 오히려 덜된 상태였습니다. 공부와 썩 친하진 않았으나, 다행히 수녀님이 교리를 워낙 잘 가르쳐 주셔서인지 아니면 다른 아이들과 경쟁적으로 대답하는 것이 재미있어선지 교리 시간이 지루하지는 않았습니다. 마음속으로는 뭔가 영원한 것에 관심이 생겼고, 이 세상 너머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커졌습니다. 어쩌면 교리가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지식보다 더 흥미로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전에 아버지께서 본당 예비 신자 교리반을 담당하시면서 교재로 쓰시던 교리서를 읽어 보았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기억하고 여전히 활용하는 「무엇하는 사람들인가?」(박도식 지음)란 교리서입니다. 이 책이 흥미로운 것은 본당 사제와 그를 방문한 이가 대화 형식으로 가톨릭 교리를 풀어 가는 서술 형식이기 때문입니다. 주로 방문자의 질문에 사제가 설명을 곁들여 응답합니다. 이보다 나중에 접하게 된 「가톨릭교회교리서」는 오히려 교회가 교리를 배우는 이들을 염두에 두고 던진 질문에 다시 교회가 대답하는 분위기라 좀 딱딱한 분위기였습니다. 누구든 마땅히 던져야 할 질문이지만, 생각 없이 산다면 쉽게 품을 수 없는 차원 높은 질문과 이에 대한 신중한 대답이 모여 있습니다. 질문과 대답의 대화 형식이 교리를 전달해 주는 전통적인 방식이며, 신자가 알아야 할 지식을 기출 문제를 정리하듯 풀어놓는 데 효과적인 방법임을 깨닫게 된 것은 신학 공부를 통해서였습니다. 성찰 교리서의 특징인 ‘질문과 대답’ 형식은 예수회 회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예수회의 전통적인 지식의 전달 방법은 질문과 대답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 방증으로 예수회가 운영하는 학교에서도 전통적으로 선생이 질문하고 학생이 답하는 구두시험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예수회는 역사적으로 유럽의 고등 교육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수도회입니다. 이 글만으로는 질문하고 답하는 서술방식이 예수회 회원들의 독창적인 교수법이라 여기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방법을 교리책에 처음으로 도입한 사람은 종교 개혁에 불을 지핀 마르틴 루터였습니다. 그는 어린이들의 신앙 교육을 위해 집필한 「소교리서」(Small Catechism)에서 이 같은 방식의 교수법을 사용했습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그리스도교 초기에 활동한 교부들이 이미 신자들을 교육하려고 질문과 대답의 형식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책과 같은 형태의 교리 지침서를 만든 것은 마르틴 루터가 처음입니다. 루터는 이를 통해 작은 교회라고 할 수 있는 각 가정에서 부모가 자녀들에게 신앙을 가르치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본적인 안내서가 있으면 교리 교육을 꼭 교회에서 숙련된 교사로부터 받아야만 한다는 주장은 더는 설득력이 없어집니다. 마르틴 루터의 교리서와 교수법이 예수회 회원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자극을 주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베드로 카니시오 성인이 1555년에 독일어와 라틴어로 편찬한 교리서의 제목도 「소교리서」이며, 이 또한 질문과 대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종교 개혁 이후 개혁 교회와 가톨릭의 신학적 입장을 정리하고자 1545년 트리엔트 공의회가 소집되었습니다. 이 공의회를 통해 교회의 가르침을 정리한 「로마 교리서」가 1566년에 출간됩니다. 트리엔트 공의회 교리서라고도 불리는 이 교리서는 가톨릭 교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교리서의 표본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사도 신경’, ‘성사’, ‘십계명’, ‘주님의 기도’ 등의 내용으로 오늘날 우리가 배우는 교리서의 틀입니다. 이 교리서는 일반 신자들을 위한 교리서가 아닌 성직자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트리엔트 공의회에서는 본당 사제들의 교리 지식에 대해 고민했고, 설교에 활용할 수 있는 권위 있는 지침서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인지 질문과 대답의 형식이 아닌 기도에 사용하는 문구나 전례에 관한 해설서의 기능을 합니다. 하지만 대중들에게 필요한 것은 짧지만 묵직한 질문과 명증한 답변이 실린 지침서라 하겠습니다. 지난 1월 호에도 언급한 「천주교 요리문답」의 첫 번째 질문이 떠오릅니다. “사람이 무엇을 위하여 세상에 났느뇨?” 그 대답은 “사람이 천주를 알아 흠숭하고, 자기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세상에 났느니라.”입니다. 우리 각자가 나름의 답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적어도 기초하는 핵심적인 대답이 있어야 함을 알려 줍니다. 실천 어떤 질문이라도 개인의 고민이나 현실적 의문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면 모두 소중합니다. 그 질문이 자신과 관련이 있는 만큼 그에 대한 답을 찾아보려는 시도도 강할 것입니다. 강의 시간에 학생들이 질문을 좀처럼 하지 않자 이 세상에 바보 같은 질문은 없으니 용기를 내 보라고 하셨던 교수님이 떠오릅니다. 질문하는 데 눈치를 보는 분위기에서 성장한 이 땅의 사람 대부분은 그냥 질문 없이 속 편히 사는 게 상책이라 여기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이런 타성에 젖은 분들에게 교리서를 권해 드립니다. 이 책에는 잠들어 있는 우리의 영혼을 일깨우는 질문이 풍성히 담겨 있습니다. 이미 한 번쯤 던져 보았을 질문부터 지금껏 생각해 본 적 없는 것까지, 모든 질문은 우리를 잠시 멈춰 세울 것입니다. 우리는 그 순간을 ‘하느님과 나’, ‘이웃과 나’, ‘자연과 나’와 같은 범주로 묶어 다양한 묵상의 기회로 삼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교리서를 단순히 신앙 지식을 모아 둔 책으로만 취급할 수 없습니다. 교리서에서 다루는 질문들을 통해 우리는 각자의 삶을 돌아보고, 신앙이 주는 생명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하루 한 가지 질문 앞에 멈춰 서 보기, 어떨까요? * 박종인 요한 - 예수회 신부. 청소년 사목을 맡고 있으며, 서강대학교에서 ‘성찰과 성장’ 과목을 담당하고 있다. 「교회상식 속풀이」를 펴냈다. [경향잡지, 2018년 7월호, 박종인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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