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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진리를 찾아서: 교회와 함께 생각하기 - 긍정과 소통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12-23 조회수2,986 추천수0

[진리를 찾아서 - 교회와 함께 생각하기] 긍정과 소통

 

 

언젠가부터 우리는 언론 매체를 통해 가톨릭교회가 보인 여러 부끄러운 사연을 접합니다.

 

중세기 이래로 오래도록 세속 권력 위에 군림해 온 교회가 그 한계에 부딪쳐 일대 전환기를 맞이했다면, 오늘날에는 성추행이나 비리와 관련된 추문들에 자유롭지 못한 교회가 반성하고 자정해야 한다는 요청이 커지고 있습니다.

 

사실 이건 표면적인 현상일 뿐입니다. 시각을 달리하면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합니다. 신앙생활에서 꼭 위안을 받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도 신앙을 키워야 하는 모든 이에게 적절한 위안은 사실상 필수 요소입니다. 그러니 교회를 두둔해 줘야 할 이유가 보이지 않습니다.

 

가톨릭교회 전체가 그렇다고는 딱 잘라 말할 수 없어도, 들려오는 언짢은 소식들은 점점 그런 어두운 분위기가 교회에 번지고 있다는 우려를 낳습니다. 적잖은 이가 다른 대안을 찾아보려 하고, 어떤 이들은 교회에 모습을 드러내기를 멈췄습니다.

 

이처럼 가톨릭교회를 떠나는 것이 대안일까요? 떠나서 다른 교파의 교회에 가는 것도 한 방법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교회사는 부조리한 교회에 남아 이를 변화시키려 했던 이들에 관한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은 교회에 ‘가난’이라는 영감을 불어넣었고, 수많은 성인이 제자리에서 하느님의 자비를 이웃들에게 실천해 왔습니다. 로욜라의 이냐시오 성인 또한 어렵게 살아가는 이웃들 안에서 그리스도의 삶을 따르려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교회가 당면한 고민을 교회와 함께 나누고자 했던 면모를 보여 줍니다.

 

 

경험

 

이냐시오 성인은 신학 공부를 시작하던 무렵에 다양한 사람과 만나서 신앙과 개인의 영적인 상황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성인과 이야기를 주고받은 많은 이가 위안을 받거나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이냐시오 성인이 이와 같이 할 수 있었던 것은 기도하면서 터득한 다양한 영적 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인에 대한 소문이 점점 퍼져 급기야 종교 재판관의 귀에 들어갔습니다. 조사관들이 그의 행적에 관해 뒷조사했지만 무혐의 판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냐시오 성인과 그 일행은 그들에게 계속 간섭받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냐시오 성인이 구속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성인과 이야기를 나눴던 귀부인 모녀가 봉사 활동을 한다고 그 도시에서 잠시 사라진 일이 있었는데 이 일을 조장한 혐의가 이냐시오 성인에게 씌워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성인은 40여 일간 구금되었습니다. 또 다른 도시로 옮겨져 그곳에서도 종교 재판관들의 심문을 받은 뒤 쇠사슬에 묶여 22일을 보내야 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성인을 풀어 주었지만, 앞으로 4년을 더 공부하기 전에는 사람들에게 교리를 가르칠 수 없다고 명령하였습니다.

 

이냐시오 성인은 법원의 명령이니 일단 따른다고 했지만, 그 판결에는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그 명령이 성인을 억압하는 함구령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냐시오 성인은 결국 그 도시를 떠나 프랑스 파리에서 수학하려는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파리대학은 성인이 살았던 시대에 최고의 학교라고 일컬어지던 곳입니다. 이곳에서 성인은 ‘예수회’라는 수도회를 함께 창설할 동료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냐시오 성인이 겪은 이 사연은 교회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은 성인이 이에 대해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잘 보여 줍니다. 부당함에 반발하여 교회를 떠나기보다는 그런 부당함을 개선하려는 현실적인 대안을 찾고자 했습니다. 합법적으로 자격을 얻어 본격적으로 그 일을 해 보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입니다.

 

이런 경험은 성인이 그의 저서 「영신 수련」에 “교회의 정신과 일치하는 사고방식”(352항)을 추가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 봅니다. 현실적으로는 16세기 당시에 교회가 직면해야 했던 인본주의라는 저항할 수 없는 흐름과 개신교회의 확장에 대해 가톨릭 신앙인이 취해야 할 태도를 제시하고자 했던 성인의 의도가 있었습니다.

 

 

성찰

 

둘러보면 그런 억울한 사정은 이냐시오 성인에게만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고 말한 갈릴레오 갈릴레이와 이 ‘지동설’을 주장한 그를 억울하게 만든 교회의 무지했던 면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진화론’이란 말을 입에도 담지 못하던 시절에 인간의 영적인 진화를 이야기했다가 함구령을 받은 테야르 드 샤르댕이라는 위대한 신학자도 있습니다. 오늘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교회가 따라가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 선구자들에게 교회가 빚진 셈입니다.

 

교회가 고루하고 변화에 더디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교회는 계속 노력해 왔습니다. 가톨릭교회가 세상과 대화하려 했고, 세상을 향해 문을 열고자 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구원을 향한 여정에 있는 교회가 세상과 진솔한 대화를 시도했던 사건이었습니다.

 

교회의 구성원인 우리가 오늘날 교회가 대면하는 여러 문제에 대해 나 몰라라 하는 태도는 자기 정체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함께 고민하고 개선하려는 모습을 독려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냐시오 성인이 권하는 태도에 귀를 기울여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인이 살았던 시대와 오늘날은 그만큼 차이가 있기에 현 상황에 그대로 적용하기보다 성인의 그 정신을 헤아려 이해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곧, 교회가 권하는 것에 대해 내가 온전히 동의할 수는 없어도 먼저 긍정적으로 이해해 보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런 마음을 지녀도 교회 지도자들의 언행이 칭찬할 거리가 못될 때가 있기 마련입니다. 이런 때에 그에 대해 거슬러 말하게 되면 이득보다 사람들의 불평과 불만을 일으킬 것이니 그런 분위기는 공동체에 이롭지 않은 결과를 낳게 됩니다. 곧 지도자가 함께 있지 않은 상황에서 사람들에게 그를 비판하고 흉을 보는 것은 해로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좋지 못한 습관에 대하여, 그것을 고쳐줄 수 있는 다른 지도자에게 말하는 것은 유익할 수 있습니다(「영신 수련」, 362항 참조). 매우 현명한 방법이라 여겨집니다.

 

한 사목 현장에서 목자가 바람직하지 못한 처사를 행할 때 이를 해결하려고 공동체 사람들이 그와 대화를 시도해 보다가 이마저도 어려워지면 해당 지역의 교구장에게 이를 보고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교구장이 귀 기울여 듣지 않으리라고 의심부터 하는 분들이 있는데 이보다는 우리가 먼저 실천해 보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더불어 좀 더 성숙한 절차를 마련하려면 지도자와 신자들 사이에 충분히 대화해야 하고 당사자가 없는 상태에서 상대방을 힐난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대화란 서로가 대면한 상황에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실천

 

지난날에 비해 요즘 신자들은 순종적이지 않습니다. 교도권이 콩을 팥이라며 믿으라고 해서 믿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교회도 터무니없는 내용을 제시하며 구성원들에게 믿으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지난 날에 비해 다양한 소통 창구가 생겨났고, 그만큼 서로 소통하는 데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니 조금 더 용기를 내어 교회에 묻고 청하는 풍토를 기대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모습대로 빚어진 존재들임을 고백합니다. 그만큼 우리 안의 선함을 신뢰해야 합니다. 교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것은 가장 먼저 우리의 선함을 믿어 주는 데서 시작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를 닮아 살아가려는 본성을 타고난 이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은 우리가 참여하는 교회가 근본적으로 선하고 자비를 실천하는 공동체란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항로를 벗어나는 실수는 할지언정 우리의 항해는 마침내 ‘구원’이라는 항구에 이를 것입니다. 이 항해를 마칠 때까지 우리는 교회에 대해 먼저 긍정의 태도로 신뢰와 지지를 보냈으면 합니다.

 

비록 반성하고 변화해야 할 여러 과제를 안고 있지만, 교회에 대한 우리의 기대는 건강하게 변화한 교회의 모습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이를 위해 먼저 우리 각자가 이 공동체를 이루는 주체라고 말해 봅시다.

 

* 한 해 동안 ‘진리를 찾아서’를 집필해 주신 박종인 신부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 편집자.

 

* 박종인 요한 - 예수회 신부. 청소년 사목을 맡고 있으며, 서강대학교에서 ‘성찰과 성장’ 과목을 담당하고 있다. 「교회상식 속풀이」를 펴냈다.

 

[경향잡지, 2018년 12월호, 박종인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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