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쉬운 사회교리 해설 - 세상의 빛] 13. 노동의 본질인 사랑(「간추린 사회교리」 266항)
노동은 사랑을 전하는 성사적 행위 아들: 엄마, 학교 다녀왔습니다. 엄마: 그래, 얼른 밥 먹어라! 아들: 네, 엄마 엄마: 아들이 좋아하는 불고기 했으니 많이 먹으렴. 엄마는 우리 아들이 밥 맛있게 먹을 때가 제일 좋단다. 노동의 본질은 사랑 창세기에서 하느님은 인간에게 세상을 사랑으로 돌볼 사명을 주십니다(창세 2,15). 베네딕토 성인은 “기도하며 일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노동을 통해 인간은 하느님의 영광과 축복을 세상에 드러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밥을 지어주는 것은 노동이면서 동시에 사랑을 전하는 성사적(聖事的) 행위입니다. 이처럼 노동의 본질은 사랑이라고 교회는 가르칩니다.(「간추린사회교리」 266항) 그런데 사람의 교만함과 타락으로 하느님과의 친교가 상실됐듯이 노동의 본질이 왜곡되면서 지금 이 세상도 많은 어려움으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모상인가, 소모품인가? 가톨릭교회는 자본주의를 인정하면서도 자본주의의 위험을 경고해 왔습니다. “인간과 사회를 위해 선익을 추구한다면 자본주의는 좋은 제도이지만 인간과 사회를 경시한다면 자본주의를 반대한다.”(「간추린 사회교리」 335항) 자본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인간소외입니다. 이윤추구와 성장, 비용과 생산성만 생각하면 인간은 소모품에 불과합니다.(「복음의 기쁨」 53항 배척의 경제 참조) 사람이 일하다 죽거나 다쳐도 어쩔 수 없다고 하는 이유도, 대량 정리해고와 불안한 비정규직 노동의 증가가 가능한 것도 자본주의의 역기능 때문입니다. 함께 행복한 세상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 이미 많은 이들이 인식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처음부터 불평등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욕심과 잘못된 제도 때문에 세상이 망가진 것임을. 그래서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은 불평등의 확산과 인간소외의 위험을 막기 위해 대안이 될 만한 경제모델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이윤만을 추구하는 전통기업과 달리 사회적 가치와 공익을 추구하는 ‘사회적 기업’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업은 ‘리코노미’(Reconomy)라 통칭되는 협동경제, 전환경제, 공유경제를 추구하며 지역의 균형발전과 생태환경을 감안한 지속가능한 발전을 지향입니다. 영국 토르네스의 ‘리퍼버드 유기농 농부들’, 미국 오클랜드의 ‘지속가능한 경제법센터’, 브라질 산타크스두술의 ‘메르쿠스’와 같은 기업들은 이런 변화를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추구할 가치란? 한국은 지난 반세기 동안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뤄 왔습니다. 근현대사의 굴곡과 아픔을 딛고 이뤄낸 쾌거이기에 더욱 값집니다. 그러나 성장만 보고 달려 왔던 그 시간 동안 우리가 잃어버린 것도 많습니다. 바로 사람이 소중하다는 가르침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인식의 전환을 해야 할 때입니다. 사람이 소중하다는 가치 아래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함께 만들어야 합니다. 제도와 틀이 아무리 훌륭해도 결국 그것을 만들어 가는 주체는 우리이며 그 원리는 ‘사랑’입니다. 우선순위라는 것이 있습니다. 세상과 사람에게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경제와 기업활동, 한 인간의 삶에서 사랑이 최우선 목적이 돼야 합니다. 그 사랑이란 타자와 함께하고, 선익과 평등을 지향하며 사리사욕보다 나눔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노동의 본질과 하느님이 창조하신 좋았던 세상을 회복하는 참된 길입니다. “사랑의 실천을 최종 목표로 삼는 인간의 노동은 관상의 기회가 되며, 영원한 날을 간절히 염원하며 부단히 깨어 바치는 신실한 기도가 된다.”(「간추린 사회교리」 266항) [가톨릭신문, 2019년 3월 31일, 이주형 신부(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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