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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소곤소곤 교리: 자비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9-04-21 조회수2,340 추천수0

[소곤소곤 교리] 자비

 

 

사랑과 자비는 교회의 첫째가는 얼굴입니다. 사랑만 강조하는 교회의 가르침은 시대에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정의를 바탕에 두지 않는 사랑과 자비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자비로운 교회

 

오랫동안 교회는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추상적인 진리의 중요성에 우선하여 사랑을 강조하면서도 실제로는 정의와 규범에 맞추어 자신의 모습을 꾸려 왔습니다. 그러기에 ‘이것은 금하고, 저것은 죄가 된다.’는 규정에 매인 모습을 보여 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자비, 곧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하느님의 사랑은 교회가 가장 먼저 갖추어야 할 모습입니다. 동반하고, 용서하며, 사람들이 각자의 길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지요. 세상의 모든 사람이 각자의 부르심과 소명에 따라 자기의 존재 가치를 찾아 살도록 돕는 것이 교회 본연의 사명입니다.

 

그런 까닭에 요한 23세 교황님은 복음의 진리를 일컬어 ‘자비의 약’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십니다(‘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개막 연설’ 참조). 이는 구체적인 현실 안에서 받는 인간의 상처와 가난을 끌어안아 주며 치유해 주는 복음과 진리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도록 도와야 한다는 뜻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복음의 거대한 이상에 대해 말하지만, 이 이상은 사랑과 온유함으로 설파되어야 옳다고 하신 이유이기도 하지요. 나아가 교회는 야전 병원이 되어야 한다는 설명을 덧붙이셨는데요. 다시 말해, 교회가 전쟁터에서 부상당한 이들을 데려와 사랑으로 치료한 뒤 다시 건강을 되찾아 살아가도록 그들을 돕는 야전 병원의 역할을 해내기를 촉구하십니다.

 

이렇듯 그리스도교가 가야 할 길은 교회 안에 머물지 않고 전쟁통과 같은 세상으로 들어가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돕는 것입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어 자비를 실천하는 것이죠.

 

 

하느님을 만나게 하는 단어, 자비

 

성경에서도 자비는 어머니의 품, 자녀를 향한 어머니의 사랑, 관심과 관계로 드러나는데요. 이처럼 자비는 하느님의 본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거룩한 단어입니다. 또한 자비는 하느님을 올바로 고백하는 단어이자 하느님을 만나게 하는 단어입니다.

 

“자비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만나러 오시는 궁극적인 최고의 행위입니다. 자비는 인생길에서 만나는 형제자매를 진실한 눈으로 바라보는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자리 잡는 근본 법칙입니다. 자비는 하느님과 사람을 이어 주는 길이 되어 우리가 죄인임에도 영원히 사랑받으리라는 희망을 품게 해 줍니다”(「자비의 얼굴」, 2항).

 

바로 여기에 교회가 깊고 진중하게 양심을 성찰해야 할 이유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기에 독일의 위대한 신학자 발타사르는 “자비란 참된 정의의 또 다른 얼굴이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비 때문에 진리를 외면해도 된다는 말인가?’라는 생각은 위험한 오해입니다. 사랑은 내가 줄 수 있는 능력만큼 베푸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교회는 단순히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을 넘어 말씀의 씨앗이 싹트고 자랄 수 있도록 ‘한 줌의 흙’을 마련해 주는 역할까지 감당하도록 강조합니다. 여기서 ‘한 줌의 흙’이란 흙처럼 흔하고 쉬운 것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요. 격려와 칭찬, 위로와 미소로써 상대방의 마음과 처지에 공감하는 것, 곁에서 손잡아 주고 배려하며 존중함으로써 예수님의 사랑을 표현하는 것을 일컫는 것이니까요.

 

 

하느님의 계획을 발견하는 자비의 실천

 

세상에서는 이념과 사상의 전쟁이 살벌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이데올로기 전쟁으로 많은 사람의 영혼이 부상당하고 끝내는 영의 주검으로 살아갑니다. 이런 세상이기에 더욱 교회는 힘을 내야 합니다. 교회는 진리의 빛을 단단히 붙들고, 진리의 참모습인 자비의 삶을 실천해야 합니다. 진심 어린 마음으로 이웃의 동반자가 되어 그리스도인의 소명에 담긴 아름다운 면을 느끼도록 도와야 합니다.

 

때문에 추상적 규범을 강요하기보다 복음의 아름다운 현실을 모든 상황과 모든 사람에게 적절히 맞추는 지혜를 갖추어야 합니다. 그동안 씨앗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교회가 이제는 함께 그것을 품어 키울 수 있는 한 줌의 흙을 건네주도록 요구하는 데 민감해집시다.

 

자비로운 행위는 하느님의 아름다운 계획을 발견하도록 돕는 최선의 도구입니다. 교회를 자비의 약이라고 표현했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이 선포한 자비의 축제로 열매를 맺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이 과정이 모두 교회가 자비를 더 깊이 깨닫기 위한 여정이었다고 고백하신 바 있습니다. 자비를 실천하는 것은 결코 진리를 도외시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님을 명확히 하신 것입니다.

 

사제이기에 다음과 같은 대 그레고리오 성인의 말씀을 거듭 새기며 살아갈 것을 다짐합니다.

 

‘사목자의 이해심은 그가 맡은 사람들에게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 주고, 규율은 강한 힘을 지닌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 준다. 언제나 규율이 지나친 엄격함이 되지 않고, 이해가 나약함으로 뒤바꾸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실제로 규율과 자비는 서로에게서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행사될 때 그 진가를 잃고 만다’(「사목 규칙」 참조).

 

아울러 형제자매님들께서도 성경에 담긴 하느님의 정의와 자비에 더욱 의탁하여 사랑을 키워 나가시길 기도합니다.

 

* 장재봉 스테파노 – 부산교구 선교사목국장으로 지낸 4년을 주님의 ‘개인 지도’ 기간이었다고 믿는다. 그 배움을 본당 사목에 실천하고자 ‘하느님의 눈’, ‘성모님의 눈’, ‘신자들의 눈’, ‘가난한 이웃의 눈’으로 월평본당을 꾸리려 애쓰는 주임 신부다.

 

[경향잡지, 2019년 4월호, 장재봉 스테파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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