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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는 실제로 부활했을까: 부활 증거들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9-04-22 조회수3,534 추천수0

예수는 ‘실제로’ 부활했을까 - 부활 증거들


2000년 교회와 신앙인 모두가 부활의 증거

 

 

- 틴토레토의 ‘그리스도의 부활’.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아멘.” 사도신경은 ‘육신 부활’에 대한 믿음을 고백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부활을 신앙으로 믿는다. 하지만 과학과 합리적 이성에 익숙한 현대인들은 “예수가 정말 부활했을까?”하는 의구심을 갖는다. 

 

부활이 역사와 과학의 증거로 온전히 입증되는 것은 아니며, 신앙의 가르침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올바른 자세임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활의 역사적 증거들을 살펴보는 것은 신앙적 성숙에 보탬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곧 부활에 대한 믿음이다. 17세기 이전의 사람들에게 예수 부활을 믿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자연 법칙에 어긋나는 ‘기적’을 믿지 않는 경향이 있다. 

 

 

자연과학과 이성의 합리성

 

프랑스 대혁명과 산업혁명, 자연과학의 발달은 인간 이성의 자유와 자율성을 확장시켰고, 과학적 이성과 합리성에 어긋나면 객관적 진리로 보지 않기 시작했다. ‘역사 비평’ 방법은 인간의 주관적 해석에서 자유로운, 실증적 사실만을 역사적 진리로 간주하도록 했다. 

 

튜린의 수의는 예수가 죽었을 때 시신을 감싸 예수의 형상이 새겨져 있다고 믿어진다. 1978년 과학자 40여 명이 120시간에 걸친 검사를 실시했고, 이 수의가 예수의 수의라는 잠정 결론을 내렸다. 10년 뒤인 1988년, 튜린의 수의에 대한 ‘탄소 14 동위원소 테스트’가 실시됐고, 튜린의 수의는 1260~1380년 사이의 물건이고 예수와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판정됐다. 하지만 이같은 방사선 동위원소 테스트는 정밀성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다시 제기됐다.

 

자연과학적 증거와 이성적 합리성을 역사적 사건의 객관적 근거로 여기는 현대인들에게 예수 부활의 역사성을 어떻게 설득력 있게 제시할 수 있을까? 

 

‘예수는 역사다’(The Case for Christ)는 2017년 7월 국내 개봉된 영화다. 예일대 로스쿨 출신의 시카고 트리뷴지 기자 리 스트로벨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각 분야 전문가들을 취재해 부활의 허구성을 발견하려던 그는 “부활을 ‘입증’할 수는 없지만, 그 사실은 충분히 ‘방증’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성경 필사본의 신뢰성, 성경 기록의 정확성, 부활 목격의 현실성, 부활 여부의 확실성 등 4가지 핵심 질문을 바탕으로 2년 여에 걸쳐 조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예수 부활에 대한 모든 역사적 증언들은 거짓일 수 없으며, 세뇌나 조작으로 만든 집단적 환각 증세로 여길 수 없다고 결론짓는다. 

 

 

믿을 만한 부활의 증언, 성경

 

부활의 역사성에 대한 논의는 예수 죽음의 역사성, 즉 예수가 실제로 십자가 위에서 죽었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혹자는 예수가 졸도, 혹은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깨어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예수가 유대인들의 최대 명절인 유월절에 예루살렘 근교에서 로마 당국에 의해 처형됐다는 것은 다양한 사료에 의해 증명된다. 

 

예수 부활의 가장 풍부하고 확실한 증언은 신약성경이다. 그런데, 복음서에 기록된 부활에 대한 이야기들은 왜 서로 다를까? 유대인 학자 라피데는 부활과 관련해 서로 어긋난 묘사들이 많이 나타난다는 점에서 복음서의 예수 부활에 대한 정보들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18세기 이후로 성경의 모순된 기록이 부활의 역사적 비진정성의 근거로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의 문서 비평 결과에 의하면, 날조된 역사 서술일수록 그 내용이 일사분란하다. 

 

하버드대 법대 시몬 그린리프 교수는 “복음서의 모순된 서술은 저자들 간 합의가 없었다는 증거”라고, 독일의 고전 역사가 한스 스티어는 “세부 사항의 차이가 오히려 역사적 신빙성의 근거”라고 주장했다. 신약성경의 부활 기록들은 부분적 모순과 차이에도 불구하고 부활의 역사성에 대한 강력한 증거다. 

 

 

빈 무덤, 부활의 증거

 

4복음서는 안식일 다음날 아침, 무덤이 빈 채로 발견됐다고 기록한다.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지고, 시신을 감쌌던 아마포와 얼굴 수건이 무덤 한 곳에 개켜져 있었다. ‘빈 무덤’은 예수 부활의 첫 번째 역사적 증거이다.

 

하지만 무덤을 찾은 여인들의 체험은 각기 다르다. 마르코(16,1)와 루카(24,10) 복음서는 3명의 부인을 언급하지만 마태오복음(28,1)은 2명, 요한복음(20,1)은 1명만을 소개한다. 마르코복음(16,8)에서 부인들은 자기들이 겪은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마태오복음서에서는 제자들에게 가서 이야기한다(28,8). 마르코(16,5)와 마태오(28,2.5) 복음서에서는 부인들에게 나타났던 천사가 하나지만, 루카(24,3 이하)와 요한(20,13 이하) 복음서에서는 둘이다.

 

‘빈 무덤’의 정황에 대한 세부 묘사는 다르지만, 빈 무덤은 역사적 사실로 인정된다. 하지만 무덤이 왜 비어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다양하게 시도됐다.

 

제자들이 예수의 시체를 훔쳐갔다는 주장, 요셉에 의한 재매장설, 여인들이 무덤을 착각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예수 부활의 선포가 빈 무덤에서 시작됐지만, 비어 있는 무덤의 존재 자체가 부활의 역사성을 결정적으로 입증하지는 않는다. 

 

 

예수를 만난 제자들, 놀라운 변화

 

‘빈 무덤’은 부활한 예수와 만난 제자들의 체험으로 이어진다. 성경은 라자로나 회당장 야이로의 딸, 어느 과부의 외아들의 소생 장면들과는 달리, 예수 부활의 물리적 경위를 전해주지는 않는다. 예수의 죽음에 대한 자세한 설명들과도 비교된다. 부활은 천사들에 의해 갑자기 선포되고, 부활을 목격한 사람은 없다. 그 때문에 부활은 환상 혹은 전설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곤 했다. 예수 부활은 제자들의 내면에 형성된 심리적, 주관적 환상이라는 것이다. 

 

영화 ‘예수는 역사다’의 리 스트로벨은 “부활한 예수를 집단으로 목격한 것이 세뇌에 의한 집단적 환각은 아닌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퍼듀 대학교의 정신의학과 교수 로버타 워터스 박사를 찾는다. 그녀는 이 질문이 “일고의 가치도 없다”며 “부활에 대한 집단 환각이 실제로 일어났다면, 예수의 부활보다 더 큰 기적”이라고 단언했다. 

 

예수 부활에 대한 제자들의 증언과 함께 그들 자신들의 변화는 확고한 부활의 증거다. 좌절로 흩어졌던 제자들은 갑자기 예수의 증인으로 나선다. 굶고 조롱받고 매 맞고 갇혀서 처형당하면서도 구세주에 대한 믿음과 구원의 희망을 선포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부활을 막연히 믿었던 것이 아니라, 직접 부활한 예수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부활한 예수와의 만남으로 변화된 제자들의 공동체로부터 교회가 시작됐다. 2000년이 넘게 이어온 교회의 복음 선포 자체가 바로 예수 부활의 확고한 증거다.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다른 생명으로 넘어간다고 하는 부활 사건의 핵심은 감각 기관으로 지각할 수 없는 것이다. 빈 무덤이라는 표징과 부활하신 예수님을 사도들이 만났다는 사실로 부활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확인되지만, 역사를 초월하고 넘어선다는 면에서 부활은 여전히 신앙의 신비의 핵심에 머물러 있다.”(647항)

 

심상태 몬시뇰(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 소장)은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에 대한 교의신학적 성찰’(「사목」 2004년 4월호)에서 “‘육신 부활’은 시체가 무덤에서 되살아난다는 것이 아니라 영혼-육신의 합일체인 인간이 죽음 속에서 하느님께 구원돼 전인으로서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예수와의 만남을 통해 변화된 제자들이 곧 부활의 증거이듯, 지금 이 자리에서 부활의 삶을 산다면, 사실 모든 그리스도인들 스스로가 부활의 역사적 증거다.

 

[가톨릭신문, 2019년 4월 21일, 박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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